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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또 염전 노예? 수사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문 : 경찰관이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정황, 형사사건화 될 수 있는 정황 없이 염전 사업장 운영에 관하여 함부로 조사하거나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답 : 예

문 : 따라서 아무리 범죄 예방 활동을 성실하게 하더라도 근로 관계에서 당사자 사이에 은밀하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파악하고 미리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답 : 예

위 문답은 2016년 9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62호 법정에서 진행된 국가배상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소송 대리인이,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에게 묻고 답한 내용이다. 2014년 2월 우리 모두를 분노하게 한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당시 전남 신안군 신의 파출소에서 근무한 4명의 경찰관 중 한 명이었던 증인은 재판정에서 '범죄 예방 활동의 한계'에 대해 토로했다.

'100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수십 년 동안 노예처럼 학대 받고 있는데 관할 파출소 경찰관이 어떻게 몰랐단 말인가?'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으로 시작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제1심 재판부는 범죄 예방 활동의 한계와 어려움을 호소한 위 경찰관의 증언을 신뢰하고 국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가 2009년 2월 신의 파출소에 부임하여 업무 인수인계 당시 '염전(양식장) 종사원 신상 면담부' 양식이 비치 되어 작성되고 있었고, 제가 부임한 이후에도 계속 작성을 하였습니다... 신의 파출소에 등록한 종사원 수가 100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목포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이 1박 2일 형식으로 입도 후 팀을 나누어 마을별로 염전이나 종사원들의 거주지를 찾아다니며 일제 조사를 분기에 1회 내지는 2~3개월에 한 번 씩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위 진술은, 2009년 2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신의 파출소에 근무한 경찰관이 2018년 9월 12일 국가배상 2심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서면 증언서에 담긴 내용이다. 특별한 정황이 없으면 염전을 함부로 조사할 수 없었다는 앞선 경찰관의 진술과 달리 인부들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신상 면담 기록부'가 존재했고 이를 토대로 1년에 3~4회 정도 목포경찰서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이 증언이 나온 뒤에야 전남지방경찰청은 '전국 보호시설 및 도서 지역 등 일제 수색 계획 하달'이라는 목포경찰서장 명의의 공문들을 법원에 제출했고, 그 공문에는 목포 해경과 함께 도서 지역 집중 수색 명령과 구체적인 수색 대상이 아래와 같이 담겨져 있었다.


최정규 인잇

일선 파출소가 섬에 들어오는 인부들을 면담하여 작성한 '신상면담기록부'를 가지고 목포경찰서는 1년에 3~4차례 일제 수색을 진행하였음에도 100명이 넘는 장애인이 노동력 착취 피해를 발견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서울고등법원은 제1심 패소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2018년 4월 5일 확정되었다.

2019년 전남지방경찰청장의 뒤늦은 사과…그러나 외면 받은 피해자들

"지역 경찰들이 염전 상황을 일부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비인간적으로 억울하게 노동력을 착취 당한 분들께 늦게 나마 사과드린다. 국민이 위험에 빠졌을 때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겠다는 말씀을 사과와 함께 드린다"

2019년 10월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김남현 전남지방경찰청장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국가배상 소송은 2014년 당시 염주들과의 유착 관계가 없었다는 감찰 결과를 발표하며 자신들의 법적 책임을 부정하던 경찰의 태도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국가배상 소송에서 승소하여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지급 받은 장애인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 전남지방경찰청이 전산으로 보관하고 관리했던 신상면담기록부를 2015년 7월 폐기했기 때문이다.

[인-잇] 염전 노예 국가배상 판결 이후…외면받은 사람들

필자는 국가배상소송대리인단의 일원으로 소송에 참여했던 변호사이자 염전 노예 사건 소식에 분노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2019년 12월 인-잇 기고글을 통해 국가에 제안했다. 그 폐기한 신상면담기록부를 포렌식 기술 등으로 복원하여 피해 장애인 전부에게 피해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조치하고, 대대적인 일제 단속에도 발견해 내지 못했던 이유를 철저히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에 대한 국가의 응답은 없었다.

또 염전 노예 사건? 재발 방지 대책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최정규 인잇

우리나라에서 인권 침해 사건은 몇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듯하다.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이후 7년이 지난 2021년 우리는 동일한 피해를 입은 피해 장애인의 증언을 듣고 있다. 아직은 피해 장애인의 규모가 밝혀지지 않아 '제 2의 염전 노예 사건'이 될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국가배상 패소 이후에도 유사 피해를 막아내지 못했던 전남지방경찰청에 이 사건 수사를 맡기는 것에 대해선 우려가 앞선다.

지난달 28일 시민단체는 이 사건 수사를 전남지방경찰청이 아닌 경찰청 중대범죄 수사과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수사 현실을 고려해도 지역에 정통한 수사팀이 사건을 맡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이와 비슷한 문제의 해결을 전남지방경찰청에 맡긴 바 있다.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맡겼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 그대로 '특단의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주요 외신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 세계에 보도했고, 세계의 시민들은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이런 인권 침해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7년이 흐른 2021년, 염전 노예 사건 재발 방지에 실패한 대한민국의 인권 현실이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폭로 될까 두렵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두려운 건 바로 이 질문이다.

"우리는 이번에 달라질 수 있을까?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건 얼마나 치밀하게 정부에 질문을 던지느냐에, 얼마나 치열하게 정부의 답변을 받아내느냐에, 그리고 얼마나 지독하게 그 답변이 지켜지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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