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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재명 '화끈한 vs 확 끄는', 해프닝의 전말

이재명의 '젠더 리스크', 불안한 그림자

[취재파일] 이재명 '화끈한 vs 확 끄는', 해프닝의 전말
어제(3일) 늦은 오후 여의도 정가에선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말 한 마디를 둘러싸고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 '만화의 날'을 맞아 웹툰 작가들과 간담회를 가진 이 후보가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한 웹툰 제목을 보고 "화끈한데"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자칫 부적절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재명 후보 캠프 내부에서조차 "대형 사고"라는 반응이 나왔다. (해당 웹툰은 싱글맘의 사내 연애를 소재로 한 로맨스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워딩을 놓고 어느 언론사는 "확 끄는데요"라고 쓰고, 다른 언론사는 "화끈한데요"라고 쓰면서 난데없는 '워딩 진위 논란'이 불거졌다. 후보 캠프에서 찍은 영상에는 해당 부분이 없었다. (장소가 협소해 중간에 퇴장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당시 현장에 동행한 기자 2명 가운데 1명은 '확 끄는데'로 듣고 다른 1명은 '화끈한데'로 들었는데, 이 두 가지 버전을 함께 배포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비슷하게 들리긴 한다.) 급기야 민주당 공보국 당직자들과 기자들이 함께 녹취파일을 들어보고 나서야 "'확 끄는데'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민주당 출입기자들에게도 수정된 워딩이 배포됐다. 그야말로 해프닝이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현장 복기본을 덧붙인다.)
* 민주당 공식 풀 현장 복기본
(스튜디오 벽에 전시된 웹툰 작품들 구경 중)

이재명 후보 : ('오피스 누나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 보더니) 오피스 누나? 제목이 확 끄는데요?
관계자 : 성인물은 아닙니다.
이재명 후보 : 이런 선들은 기계로 그리는 겁니까 사람 손으로 그리는 겁니까?
관계자 : 사람 손으로 그리는 겁니다.

웹툰 작가들 만난 이재명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사실 '화끈한데'가 아니라 '확 끄는데'라고 해도 이야기의 맥락이나 분위기 자체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성인물은 아니다"라는 관계자의 답변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화끈하다'는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의 차이와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 해당 발언은 일단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관련 논란을 기사화한 매체는 어젯밤 9시를 기준으로 서너 곳 정도였다. 이 가운데 한 매체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전형적 남성 중심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썼다. 이재명 캠프 사람들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는 않아 보인다.
 

'하필 이재명'이라서? 여전한 '젠더 리스크'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날 이재명 후보 쪽에선 '억울하다'는 기류도 감지됐다. 이 후보가 아니더라도 논란은 됐겠지만, '하필 이재명이라서' 더 손해를 본다는 뉘앙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젠더 감수성 문제는 특히 이 후보에게 시한폭탄이자 아킬레스건과도 같다는 게 캠프 안팎의 평가다. 이 후보 특유의 순발력으로 경선 정국을 잘 헤쳐왔지만, 가끔 예상치 못하게 툭툭 나오는 발언이 곧바로 설화(舌禍)로 연결될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잠재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선 초반 TV 토론에서 나온 '바지 발언'이 비슷한 예다.

이런 리스크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유독 이 후보의 취약층으로 분류되는 '20대 여성 표심'이다. 지난달 2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19~21일, 전국 유권자 1천 명,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오차 범위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에 따르면, 4자 가상대결(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후보)에서 이 후보의 20대 지지율은 20%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여성 지지율 또한 31%로, 38%인 남성보다 7%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비호감도 항목에선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 후보에 대한 20대의 비호감도는 69%로 전 세대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여성 비호감도는 60%로 역시 남성(59%)보다 1%포인트 높았다.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특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재명의 젠더 리스크,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더 큰 문제는 이런 젠더 리스크로부터 탈출할 출구도, 당 차원의 노력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선 단계에서 권인숙 의원을 캠프에 영입하고 여성미래본부를 설치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제 출범한 민주당 대선 선대위는 사실상 남성에 중진 의원 일색으로 구성됐다. 여성본부장을 맡은 서영교 의원은 중진 의원으로 봐야지 여성계를 대표하는 인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 여성 중진 의원들은 앞서 박원순·오거돈 사태를 겪으며 사실상 모두 소진되거나 상징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도 있다. 여성 초재선 의원을 대상으로 한 추가 인선이 남았다지만 딱히 묘안이 보이지 않는다.

한 이재명 캠프 핵심 관계자는 "20·30대, 특히 여성은 내 삶에 영향을 줄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정책으로 리스크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까지는 아직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 사이 어떤 돌발상황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 후보뿐 아니라 캠프 관계자들의 '젠더 리스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화끈한데, 확 끄는데' 해프닝은 차라리 애교 수준일 수 있다. 이번 일을 단순히 해프닝으로만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다. 전조(前兆)가 될지, 예방 주사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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