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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이후 북한 '인권침해' 처벌은 어떻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통일 이후 북한 '인권침해' 처벌은 어떻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작성 2021.11.03 09:37 수정 2021.11.03 09: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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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이라는 말이 다소 과격해 보일 수는 있지만 새로운 사회의 도래와 함께 과거청산은 어느 정도 필요한 면이 있습니다. 과거청산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이 저하되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동력이 약화됨으로써 국가발전에 저해가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노동자 / 안정식 취파용
 
북한 내에서는 정치범수용소로 대변되는 인권침해 외에도 즉결처형과 살인, 강간, 폭행, 고문, 강제낙태, 인신매매, 강제이주, 신념과 표현의 권리 박해, 종교 박해 등 수많은 인권침해가 존재하고 있음이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인권침해 범죄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 북한 체제의 특징입니다.

이런 인권침해 행위가 광범위하게 존재했음에도 통일국가에서 이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인권침해 가해자들이 거리를 버젓이 활보하고 다닐 경우 북한 주민들이 통일에 대해 협력적이기는 힘들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권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단죄를 진행하는 절차가 없다면, 북한 사회 내에서 통일국가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통일에 대한 회의감마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과거청산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청산작업이지만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와 사건들에 대한 해소과정을 통해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민족적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갈등 요소가 되었던 점이 과거청산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과거청산이 전 정권에 대한 보복의 장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덮고 넘어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과거청산

통일된 독일에서도 동독 지역에서의 과거청산이 주요한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동독 공산정권에 의한 인권탄압이나 불법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자 했습니다. 구체제에서 비난받을 일을 한 사람들이 아무런 단죄를 받지 않을 경우, 구동독 지역 주민들이 새 체제에 대해서도 불신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인들에 대해 발포와 사살을 한 국경수비대 재판은 많은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습니다. 통일독일은 발포와 사살을 한 국경수비대원 뿐 아니라 이런 지시를 내린 사령부 관계자, 그 위의 국방위원회와 정치국 위원에까지 책임을 물었습니다. 일선 부대원들은 상부의 지시를 이행할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기 때문에 상급자일수록 처벌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동독 시절 불법행위와 인권침해를 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생각만큼 강하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통일독일이 법치주의에 기반한 청산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통일독일은 어떤 행위에 대한 처벌은 그 당시 유효했던 동독법에 따라서만 가능하도록 하고 소급처벌은 금지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더라도 그 당시 동독법에 위배되지 않았더라면 처벌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또, 통일 뒤 연방헌법이 동독법보다 가벼운 처벌을 부과하는 경우 가벼운 처벌을 우선하는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역설적으로 법치주의에 의해 제약받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동독법에 위배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자연법 질서에 크게 위배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이 마련됐지만,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불만이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동독 권력자들에 대한 재판은 이들이 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아 느리게 진행되거나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독일통일 15년 후인 2005년 자료를 보면, 불법행위 혐의를 받은 동독인 10만여 명 가운데 기소율은 1.4%에 불과했습니다. 이 가운데 53.9%만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24.1%는 무죄, 20.1%는 사망이나 고령으로 재판이 중지됐습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92.3%는 2년 이하의 형에 불과했고, 실형 판결을 받은 사람의 92%는 집행유예로 석방됐습니다.

독일의 과거청산이 실질적 처벌을 했다기보다는 상징적 의미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동독 시절의 불법행위를 사후에라도 유죄로 인정해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웠다는 의미는 있지만, 피해자들이 보기에는 분노와 좌절감이 큰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정의였으나 우리가 실제로 얻은 것은 법치국가였다"라는 말이 이 당시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느꼈던 감정을 잘 대변합니다.
 

통일한국의 과거청산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통일한국 정부의 과거청산도 독일의 사례처럼 피해자들과의 인식의 괴리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국가는 사회통합과 발전을 위해 진실규명과 화해, 용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극악한 인권침해행위는 단죄하더라도 과거 행위에 대한 처벌이 또다른 갈등 요소로 발전하지 않도록 통일한국 정부가 적절히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질적인 과거청산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통일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통일이 급진적 방식으로 이뤄질 경우 과거청산도 즉시 강도 높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제의 패망으로 인한 해방, 히틀러 독일의 패퇴로 인한 프랑스의 해방, 대중시위에 의한 동독 정권의 붕괴 등과 같은 혁명적 방식으로 체제 전환이 이뤄질 경우, 과거사의 잔재를 청산하라는 요구가 즉각적으로 강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통일이 완만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과거청산의 시기는 늦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체제 통합이 완만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기존 기득권 세력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상황에서 체제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과거청산의 수준은 해당 시기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과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정식 취파용 / 평양거리
 
과거청산은 1차적으로 북한 주민 스스로에 의해 이뤄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별다른 요구가 없는데 외부에서 과거청산을 강제하는 경우, 주민들이 외부 세력의 간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의 경우 극악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당연히 과거청산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청산의 에너지는 북한 내부에서 분출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한 내에서 과거청산에 대한 요구가 일어날 때 통일정부가 이를 받아 구체적인 사법적 절차 등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독일의 과거청산도 서독정부가 주도했다기보다 동독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진행되다가 주된 역할을 통일독일 정부가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본격적인 과거청산 작업에 들어가면 청산 작업을 담당할 기구가 필요합니다. '과거사청산위원회'라는 명칭은 너무 과격하게 들리는 면이 있으므로, '인권침해청산위원회'(가칭)와 같은 명칭이 어떨까 합니다. 이는 과거 북한 정권에서 있었던 모든 행위를 들여다본다기보다 극악한 인권범죄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를 좀 더 명확히 한 것입니다.

과거청산이 보복을 위한 것은 아닌 만큼 처벌은 최소화하되 가해자들이 공직에 재임용되는 것은 방지해야 합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들이 새로운 통일국가의 주요 직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통일국가의 정통성과 피해주민들의 통일국가에 대한 신뢰감 형성에 막대한 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현재 과거청산을 위한 기초작업으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기록작업이 진행중입니다.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이같은 작업을 해 오기도 했고, 북한인권법 제정에 따라 통일부 내 북한인권기록센터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인권침해사례를 조사해 기록한 뒤 자료를 법무부로 이관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조사 작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돼야 하겠지만, 3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침해 조사자료도 통일 뒤 과거청산 작업의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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