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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홀로서기 중인 컬투 김태균 "이젠 그냥 즐기려구요"

[그사람] 홀로서기 중인 컬투 김태균 "이젠 그냥 즐기려구요"

윤춘호(논설위원)

작성 2021.10.30 09:21 수정 2021.10.31 14: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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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람이 지금 위기다. 10년 넘게 라디오 전체 청취율 1위였던 프로그램은 그 자리를 내준 지 몇 년 됐고 이제 2위 자리 지키는 것도 쉽지 않다. 동료가 떠난 빈자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컬투는 해체된 것도 아니고 복원되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다. 혼자 활동한 지 3년 반이 지났지만 컬투가 아닌 '김태균'을 찾는 방송과 무대는 많지 않다. <영재발굴단> <안녕하세요> 두 개의 TV 프로그램이 막을 내린 뒤 화면에서 이 사람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나이는 어느 새 쉰 살이다. 연예인으로 치면 환갑을 지난 지 오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 때문에 자신에게는 공기이자 물 같은 방청객 없이 허덕이며 1년 넘게 방송을 이끌고 있다. 방청객 없는 스튜디오 안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 물 빠진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처럼 보였다.

지난 10월 26일 방송 시작 5분 전쯤 스튜디오 한쪽에서 이 사람이 급히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주말용 방송 녹음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중이라고 했다. 늘 이런 식으로 점심을 먹느냐고 했더니 이렇게라도 먹는 날이 얼마 안 된다고 했다. 점심을 거르는 날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양치할 틈도 없이 생수로 입을 헹구고 이날 스페셜 DJ인 유민상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스튜디오는 서서히 달궈지긴 했지만 방청객이 없는 SBS 목동 1층 컬투 전용 스튜디오는 다소 휑해 보였다. 방청객이 100명쯤 들어올 수 있는 이 스튜디오는 컬투의 요청으로 2012년 만들어졌다. 특정 프로그램을 위해 전용 스튜디오를 만든 것은 국내 방송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스튜디오는 SBS에서 이 사람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래 여기가 카메라 제작 부서가 사용하던 공간이었다고 들었는데 저희들이 1층에 스튜디오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어요. 1층에 스튜디오 만들어서 여기에 방청객들 많이 받고 싶다, 창문도 만들어서 오가는 분들도 볼 수 있게 하고…저희에게는 방청객이 중요하니까요. 그전 스튜디오는 좁기도 하고 방청객들이 바닥에 앉아야 돼서 방청객들에게 미안했거든요. 스튜디오 디자인이나 공사 과정에서 저희 의견을 많이 냈습니다"

지난 10월 18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김태균을 처음 만났다. 라디오 생방송 두 시간, 그 전에 주말 방송 녹음을 두 시간 한 상태였다. 네 시간 방송을 하고 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송을 하면 할수록 힘이 나고 방송을 하지 않으면 힘이 빠진다고 했다. 타고난 무대 체질, 방송 체질이다.

그사람_19편 김태균
2. 2006년 5월 방송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동 시간대 라디오 청취율 1위, 1년 만에 전체 라디오 청취율 1위에 올랐다. 2018년 TBS 뉴스공장에 1위 자리를 내줄 때까지 11년 동안 부동의 톱이었다. 대본에 의존하지 않는 정찬우, 김태균 두 사람의 자유분방한 진행과 청취자들이 보내는 사연을 읽어주는 능력이 탁월했다. 작가가 써준 오프닝 멘트는 무시하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음악도 미리 골라 놓은 게 있어도 그런 것도 즉석에서 바꿨다. 녹음 방송은 대놓고 녹음이라고 말했다. 진행자 두 사람이 멋대로 놀았는데 거기에 청취자들이 환호했다.

이 세상을 하직하겠다고 한강으로 가던 사람이 택시 안에서 이 방송을 듣고 배꼽 빠지게 웃다가 마음을 고쳐 먹은 사연이 있을 만큼 웃음이 넘쳐나는 방송이다. 하루에 수천 개의 문자와 사연이 오고 특별 이벤트 같은 것을 할 때는 두 시간 방송 동안 10만 통에 가까운 문자와 사연이 쏟아진다.

"제가 다른 유명한 라디오 프로에서도 일을 했는데 컬투 쇼는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사연의 질과 양이 확실히 달라요. 사람들이 긴 글 쓰는 것을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다 보니 긴 글 사연이 예전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었는데 여기는 그런 사연들이 꾸준히 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제 재미있는 사연이 있으면 우선적으로 컬투쇼에 보내는 거 같아요."/ 홍수정 <두시 탈출 컬투쇼> 작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같은 노래를 세 번, 네 번씩 틀어 주기도 했다. 많게는 한 시간에 여섯 번을 튼 적도 있다. 방송에서는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터부시했던 단어들, 똥이니 방귀 같은 말을 방송에서 편하게 하고 '방송국 놈들' 이라는 말도 태연히 한다. <컬투쇼>는 그런 식으로 파격을 보이며 방송 영역을 확장했고 그럴 때마다 담당 PD는 심의실에 불려 다니기 바빴다. 제작팀은 죽을 지경이었지만 청취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이 사람이 얄밉지가 않은 모양이다. 동네 아저씨 같고 삼촌 같고 오빠 같고 형 같다.

"생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잘 노는 거죠. 그 안에서 잘 노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싶어요. 더 나가면 안 되는 선이 있는데 그 안에서 잘 놀려고 하는 거 같아요. 지금은 찬우 형 없이 하지만 방송 안 해본 후배들을 데리고 방송을 해야 하는데 제가 균형을 잡아야 되잖아요. 어디까지 되는지 어디까지는 안 되는지를 잘 알게 된 거 같아요. 최대한 자유스럽고 편안해 보이고 소통하는 느낌이 들게 하려고 하죠."

오후 두 시 라디오 진행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수락하는 첫번째 조건으로 내세운 게 방청객이 있는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었다. 방송인 동시에 공연을 하겠다는 의도였다. 처음 방청객은 단 두 명이었다. 방송을 직접 본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이 났다. 지금까지 다녀간 방청객이 15만명이다. '쇼단원'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 프로그램의 큰 재산이다.

"처음 시작할 때 이왕 하는 거 좀 다른 방송을 하고 싶었고 그렇다면 방청객이 있어야 할 거 같다. 우린 늘 공연으로 잘 된 팀이었고 리액션이 없으면 너무 정적일 거 같았어요. 그래서 방청객 제안을 먼저 했어요. 방청객이 있어야 한다, 그럼 하겠다"

그사람_19편 김태균
방청객에 대한 이 사람 마음은 요즘 표현을 빌면 '찐'이다. 이십 몇 년을 같이 한 동료의 빈자리보다 방청객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끼는 듯했다. 물 빠진 어항 속 물고기 같던 이 사람에게 코로나 계엄 해제 소식은 말 그대로 단비 같은 소식이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돼서 다시 방청객을 모실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해보고 싶으세요.
"일단 첫날은 눈물이 날 거 같고요. 엉엉 울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그리웠기 때문에…계속 방청객이 없는 상황이라면 방송을 못할 거 같아요. 방청객이 돌아오고 분위기 좋아지면 가수들 모시고 콘서트 식으로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찬우 형 일주일 간 휴가를 간 적이 있는데 제가 혼자 진행을 했는데 그 때 이은미 누나, 이승환 형, 이소라 누나 등을 모시고 닷새 동안 매일 콘서트를 했어요. 그런 미니 콘서트를 열어보고 싶어요"

3. 1972년생, 우리나이 쉰 살이다. 쉰 살은 인생의 한 고비를 넘는 나이다.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근육이 이제부터 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나이,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전혀 달라지는 나이다. 반 백 년의 삶이 순탄했을 리 없고 그렇게 허덕이며 살아온 자신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난 해부터 한 자 한 자 글을 썼고 얼마 전 그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 이번 책이 처음은 아니다. 에세이집 두 권, 시집 두 권을 냈고 그 가운데 <태교는 즐겁다>는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어머니의 남자 친구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다른 것은 몰라도 솔직하게 쓴 것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연예인 신변잡기지만 이제 50줄에 들어선 한 중년 사내의 담담한 회고와 반성으로 읽어도 공감할 부분이 적지 않다.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결핍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느껴진다. 요란스럽게 쓸 수 있는 대목을 절제하며 말하는 것은 단순히 글 솜씨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가 주는 선물 같은 것일 게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너무 행복했던 거 같아요. 정리가 되더라고요. 아슬아슬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 때는 진짜 너무 싫었던 순간순간이 있었거든요. 솔직한 척하고, 자존심 때문에 모르는 거 아는 척하고 그런 나를 계속 끌고 왔던 거 같아요. 그게 너무 싫었고 편안하지 못한 거 같아요. 뒤돌아보면 민망하고…위험했던 순간도 꽤 많았거든요"

그사람_19편 김태균
이 사람 지인들이 책을 읽고 공통적으로 한 말은 김태균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이 사람 책의 한 대목.

"누가 뭐라고 하면 바로 들이 받지도 못하고 기분만 더러워져 아파트 지하 주차장 벽을 치고 또 치고 피 나고 찢어지고 또 치고…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김태균 에세이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 중

그 때는 사람들에게 "눈에 왜 그렇게 살기가 있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남에게 지적 받는 게 그렇게 싫었다.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 이야기려니 생각했는데 불과 10여년 전 이야기였다.

"저도 그 이야기를 읽고 너무 놀랐어요. 그 책에 보면 김태균 씨가 자신은 예전에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저도 그런 면만 봤나 봐요. 그런 면이 있었다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힘들었던 거를 이제 깨닫고 그동안 밖으로 보이지 못했던 것을 책에다 쓴 게 아닌가 싶어요"/홍수정 <두시 탈출 컬투쇼> 작가

주먹에 피를 흘리며 집으로 들어온 남편, 눈에 살기가 돌던 남편을 부인 이지영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안아주었다. 이지영에게 그 때 일을 물었더니 문자로 이런 답을 보내왔다.

"저렇게 혼자서 풀 수밖에 없어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이미 손에 피를 흘리며 온 상태라 왜 뭣 때문인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사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생각이 안나요~~"

어떤 점이 이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한 것일까. 누가, 어떤 지적질을, 어떻게 했길래 이 사람이 그렇게 울분에 차 주차장 기둥에 주먹을 날리게 했을까. 왜 그랬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말은 못하지만 가슴 속에 그런 울분은 한 두개쯤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책을 쓰기 시작한 지난 해는 이 사람에게 위기였다. 2018년 정찬우가 갑작스럽게 하차하면서 <2시 탈출 컬투쇼>가 기우뚱했고 2019년 말에는 이 사람이 진행하던 두 개의 TV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코로나가 터져 방청객 없는 방송을 해야 했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마음가짐을 정리한 책인데, 책만 보면 위기일수록 차분해지는 사람 같다.

김태균 그사람
4. 연예인 사관학교인 서울예대 출신이다. 유재석, 전도연, 예지원 등이 동기인데 대학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남을 웃기는 데는 타고난 소질이 없던 후천적 노력형이라고 자신을 표현했지만 날고 긴다는 연예계 천재들이 모이는 곳에서 오히려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남들도 별 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악착같이 살지 않더라고 했다.

"저건 남의 일일 거야 생각했던 일들이 조금만 하면 내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만 더 노력을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잠재적인 끼가 있을 수 있겠지만…좀 열심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렇게 막 뒤처질 거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MBC 개그맨 공채 시험을 통해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방송사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었다. 1년 반 정도 방송사 생활을 해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개그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과감하게 뛰쳐나갔다.

"방송국이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괴리가 심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이미 짜여진 것, 하라고 시키는 것만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우리가 하고 싶은 개그를 할 데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지 하다가 제가 제안을 했죠. 대학로 가서 우리가 하고 싶은 개그를 하자"

정성환, 정찬우와 함께 컬트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대학로 공연 무대에 도전했다. 고생을 사서 했고 무모한 시도로 보였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여름과 겨울방학 넉 달 동안 대학로에서 정기공연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지방을 돌았다. 좌석은 관객들로 만원이었다. 그때 돈을 많이 벌었다. 그 돈으로 대학로에 극장 세 개를 사고 건물을 사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세웠다. 한 때 소속 개그맨이 150명이나 되었다.

그사람_19편 김태균
-그 때 돈 좀 벌었습니까.
"벌긴 벌었는데 써본 적이 없어서 잘 쓸 줄 몰랐고 거의 다 날렸어요. 공연이 너무 잘 되니까 근처에 바도 차리고 가게도 차렸는데 잘 안됐어요. 그 때 투자를 잘못 받는 바람에 사기당하고 그 돈 갚느라고 몇 년 고생했어요."

-그렇게 갚은 돈이 얼마나 됩니까
"꽤 많았죠"

-액수를 못 밝힐 정도인가요.
"한 20억원은 충분히 넘었을 거 같아요. 그 때 대학로에서 벌었던 거 거의 다 날리고 남은 게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죠"

돈 잃고 사람 잃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연예인이 된 이후만 보면 비교적 순탄했다. SBS <웃찾사>에서 '그때그때 달라요' 같은 코너가 대박을 쳤고 <두시 탈출 컬투쇼>는 라디오에서 레전드급 위상을 구축했다. 사업에서 부침이 있었지만 연예 활동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5.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여섯 살에 돌아가셨다. 군수 장교 시절에도 집에 모포 한 장 가져온 적이 없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겨준 것이 별로 없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보험 일을 오래 했다. 형 한 명, 누나가 두 명, 가난한 4남매 가정의 착한 막내였다.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을 날리고 일가족이 일년 동안 여관살이를 한 적도 있다. 어머니는 마음의 보루 같은 존재다.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했던 것도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4년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가 남긴 "인생 허무하다. 즐겁게 살라"는 유언을 늘 가슴에 안고 산다.

김태균 그사람
"어머니랑 둘만 산 적이 꽤 되거든요. 어머니가 먼저 나가시면서 편지를 써 놓곤 하셨어요. '엄마가 김치찌개 데워 놓았다. 어제 술 많이 마시고 온 것 같은데 속 잘 풀고 다녀. 오늘도 파이팅' 하고. 어머니가 차려 놓은 밥 먹고 나가면서 저도 편지를 써놓고 오곤 했죠. 어머니 옷이나 유품은 태워서 올려 보내 드렸는데 그 편지 쓴 것은 아직도 갖고 있어요"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 중일 때 2년 동안 방송이 끝날 때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이제 어머니를 생각해도 슬프지는 않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를 생각하지만 눈물이 터져 나오는 일은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개신교 집사지만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 교회에 못 나가고 있다. 교회에만 가면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게 지겹고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착한 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어머니 이야기만 들어도 이 사람 심성이 착한 것은 틀림없다.

가족들 이야기를 망설임 없이 털어놨다. 이 사람이 꽤 길게 말했지만 줄여서 이야기하면 성격이 여린 작은 누나는 단호하지 못해 삶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형은 목사 안수를 받고 해외 선교사로 일한 적도 있는데 사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어머니와 갈등이 꽤 심했다. 가족사가 다소 복잡했고 돌봐야 할 가족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이 사람 선택 중에서는 제일 잘한 일인 듯싶다. <컬투쇼> 시작할 때 태어난 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친구 같은 아빠다.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태교 일기를 썼고 그것을 책으로 내기도 했다. 남들 보기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가족에 집착한다. 이 사람에게 가족 이상의 소중한 가치는 없어 보인다.

"남편으로 나랑 잘 맞는 사람. 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아빠. 장모님과 장인 어른께 최고 사위!! 대부분 개그맨들이 집에선 다르다지만 집에서 더 웃겨주려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부인 이지영>

베트남 전쟁 고엽제 피해자인 아버지의 국가 유공자 지정 관련 소송을 직접 했다. 1심과 2심 재판에 필요한 준비 서면을 직접 썼다. 1심에서는 이겼고 2심에서는 졌다. 3심까지 갔고 마침내 이겨서 아버지를 대전 현충원에 모실 수 있게 됐다.

"아버지 국가 유공자 지정 소송을 변호사 없이 제가 다 준비를 했어요. 주변에서는 변호사 없이 안된다고 조언을 했는데 저는 그냥 제가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변호사도 나만큼 절실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1심에서 이긴 거예요. 그 때 어머니랑 부등켜 안고 펑펑 울었어요"

6. 정찬우라는 사람을 빼놓고 이 사람 인생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신의 반생을 정리한 책에서 정찬우의 이름은 딱 한 번 나온다.

"찬우 형은 제게 큰 사람이기도 하고 제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같이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만약 활동을 같이 하고 있으면 당연히 책에 썼을 거 같아요. 그런데 그 형이 나름대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상처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제 생각만 가지고 쓰면 그게 아닐 수도 있고…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여질까 싶어서 (언급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을 만나기 전 취재한 바에 따르면 두 사람 관계가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말은 다른 사람 입이 아니라 본인에게 직접 제대로 물어보는 게 좋다.

-정찬우 씨와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고요. 사이가 안 좋을 수는 없는 거죠. 그렇게 오랫동안 해왔는데…"

정찬우와의 관계를 오래된 부부로 비유했다. 부부가 맨날 살갑게 대화를 나누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살다 보면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방송할 때 카메라 안 들어올 때 둘이 대화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사이가 안 좋다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지요. 둘이 싸웠냐는 문자가 올라오기도 해요. 이십 몇 년째 팀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제 뭐 했냐고 맨날 그럴 수도 없잖아요. 다 아는데…물론 일 때문에 싸울 때도 있죠. 돈 받고 공연하는 사람들이니까 좋은 콘텐츠를 올려야 되니까 그런 것에 대한 의견이 부딪힐 때는 아무리 형 동생이라도 싸울 수 있죠. 성격도 완전히 달라요"

-불화라는 말까지는 쓸 필요는 없다는 거네요.
"그럼요. 그런 적은 없어요."

-지금도 두 분이 컬투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의 공동대표를 하고 있는 건가요.
"대표는 원래 따로 있었고 저희가 그 회사의 지분을 절반씩 갖고 있는 것뿐이에요. 지금은 형이 일을 안하고 있으니까 붕 떠있는 회사죠. 전 따로 1인 기획사를 차렸고요"

더없이 좋은 형이자 동료였지만 일과 관련해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모양이다. 정찬우 입장에서는 내가 형이고 리더라는 생각을 바꾸려 들지 않았던 거 같고.

"정찬우 씨를 진짜 친형처럼 따랐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는 의견을 좀 더 나누고 싶었던 거 같고 정찬우 씨는 좀 보수적이라 형은 형이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주체성이 강한 김태균 씨가 조금 곤란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정태익 <SBS 라디오 센터장>

정찬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질문하는 사람도 편치 않았고 답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을 아끼려는 기색이 역력했고 대답을 할 때 단어를 조심스럽게 골라 썼다. 그런 표정과 태도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야기를 그쪽으로 몰고가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이야기가 자꾸 그 방향으로 흘렀다. 문자만 보내고 통화를 하거나 얼굴 본 지는 좀 되었다고 했다.

김태균 그사람
MBC 개그맨 시절부터 한 팀을 이뤄 방송을 같이 하고 공연을 같이 했다. 사업도 같이 하면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경험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이십 년이 훌쩍 넘는다. 성격이 다르고 두 사람 방송 스타일도 확연히 다르다. 정찬우가 공격수라면 김태균은 수비수였다. 정찬우가 팍팍 내지르며 청취자에게 무심한 듯 방송하는 스타일인데 비해 김태균은 뒷받침을 하면서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는 잘 어울리는 단짝이었다. 불화설 같은 게 불거진 적도 별로 없다. 이 사람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정찬우의 갑작스런 하차의 피해자였다. 빈 자리를 자신이 메워야 되는 부담이 작지 않았고 당장 공연이 중단되었다.

"혼자 남으려고 의도한 것은 아닌데 혼자가 됐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막 뒤에서 무슨 짓을 해서 그 사람이 일을 못하게 한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돼서 초반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어요.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니까요. 잘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특히 공연을 못하게 되었으니까. 그 형이 아파서 그런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왕이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찬우 형이)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사업도 잘 됐으면 좋겠고"

-정찬우 씨의 빈자리도 크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역량을 풀어낼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진 측면도 있겠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팀으로 있었기 때문에 못했던 것들을 앞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해야 하기도 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이왕이면 해보고 싶었던 것 위주로 해보고 싶기는 해요."

홀로서기는 이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 사람은 도전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도전'이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대학 가요제에 도전했지만 심사위원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입도 한 번 뻥끗 못하고 쫓겨났다. 탤런트 시험에서 당당하게 낙방했고 개그맨 시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도전했다. 군대에서 쓴 시들을 묶어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 게 시집으로 나오기도 했다. '안 되면 말고' "해보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도전해온 사람인데 이번에는 꽤 절실해 보인다. 정찬우의 복귀와 컬투의 재결합은 많은 팬들이 원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방송국을 때려 치우고 대학로 공연장으로 향할 때처럼 비장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컬투가 아닌 김태균이라는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승부할 때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 5월 처음으로 혼자서 공연을 했는데 그렇게 좋았단다.

"예전에 컬투로 공연할 때는 대본을 안 썼어요. 왜냐하면 둘이 할 때는 일일이 대본을 토씨까지 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토씨까지 대본을 썼어요. 한 시간 40분 분량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 시간 반을 했더라고요. 너무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나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형과 함께 했던 오랜 시간에 대한 해방감에서 나오는 생각일 수 있지만 워낙 제가 무대를 좋아하는 거죠. 무대가 그리웠고 어떤 식으로든 무대에 서는 게 좋고"

8. 이 사람 방송을 소시민적인 방송이라고 하면 글쎄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컬투쇼가 처음 시작할 때 셀럽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약간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컬투 본인들도 개그 프로그램에서 '미친소' 같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적도 있지만 개그계 주류 출신은 아니었어요. 자신들의 그런 출발점을 잊지 않고 평범함 청취자들을 위한 방송, 그런 사람들을 후련하게 해주는 방송을 한 거죠" <정태익 SBS 라디오 센터장>

지금까지 컬투쇼 방청객이 대략 15만 명, 대학로 공연 등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더하면 몇 십 만명을 직접 얼굴을 대하고 이야기를 한 셈이다. 대중의 정서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본인이 연예인이라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사실 연예인들 가운데는 혼자서는 동사무소도 못 가는 분들도 있는데 태균이 형은 전혀 그런 게 없어요. 연예인보다는 그냥 좀 유명한 일반인 같은 느낌이죠" 김동하/빅바 콘텐츠&랩 기획실장

정치권에서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고 청와대 행사에 몇 차례 다녀왔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만 컬투쇼를 밀어내고 라디오 청취율 1위 자리를 차지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한 평가를 보면 정치 뉴스는 열심히 보는 듯싶다.

"뉴스공장은 너무 정치적이죠. 그리고 공평하지도 않고 한쪽에 치우쳐 있잖아요. 이쪽 이야기도 하고 저쪽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너무 한쪽 입장만 이야기하다 보니까. 장르가 전혀 다른 방송인데 같이 평가하는 것도 좀 그렇고…"

성실한 사람이다. 15년 넘는 세월 <컬투쇼> 방송을 한 번도 펑크 낸 적이 없다. 공연 준비도 늘 철저하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이 사람 활동 폭이 커질 거 같다. 그런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컬투 김태균이 아니라 김태균만으로 서려는 노력이 어떤 성과를 낼지 자못 궁금하다. 성공한다면 그 힘은 평범한 사람들의 정서를 읽어내는 능력과 성실함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김태균 그사람
"공연장에서 대충 하는 법이 없어요. 공연을 십 몇 년 이상 하고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 조명, 음악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체크를 해요. 토크쇼 같은 것도 다 애드립으로 하는 거 같지만 사전 대본을 보고 또 봐서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해요. 데뷰 30년이 다 돼 가는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김동하/ 빅바 콘텐츠&랩 기획실장

김구라가 이 사람을 SBS 공무원이라고 했는데 어느 한 조직에 순응하고 거기에 깊게 뿌리내리려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평범한 월급쟁이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사람이고 천생 연예인이다. 주고받는 것이 정확할 듯도 싶고 남에게 구차한 부탁을 할 거 같지도 않다.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필자에게만 털어놓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살짝이라도 이 사람의 민낯을 엿보고 싶었는데 무망한 기대였다. 이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누가 물어도 이 사람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페셔널 연예인이다. 

알리자고 하면 알릴 만한 미담이나 선행이 없지 않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책에 쓰지도 않았고 인터뷰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과장해서 말하는 법이 없었고 자랑을 하지도 않았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면도 별로 없었다. 악플에 대해서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악플이 무섭고 화나는 것이 아니라 사연이 재미없으면 화난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라디오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고 했다. 전에는 하기 싫었던 적이 있었고, 방송국에 오기 싫기도 했고,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일종의 사명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를 전망해달라는 말에 지금처럼 변함없이 컬투쇼를 진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답답할 거 같다고 했다. 하게 되면 좋겠지만 매이고 싶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그래도 오후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 이 사람 목소리를 오래 듣고 싶은 청취자들의 기대를 쉽게 저버리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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