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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그분'은 누구인가? 조금씩 바뀐 남욱의 발언

[월드리포트] '그분'은 누구인가? 조금씩 바뀐 남욱의 발언

나흘간의 기다림

대장동 '키맨' 남욱 변호사를 찾으러 샌디에이고로 날아갔다. 남욱 변호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였던 남 변호사 가족이 다니던 한인 교회는 홈페이지도 닫혀 있었다. 샌디에이고의 한인단체들과 부동산 중개업자들을 수소문하는 등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남 변호사의 집이 어딘지 찾았다. 온 가족이 이미 샌디에이고 집을 떠났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찾아가 보니 남 변호사의 부인인 전 방송기자 정 모 씨와 아이들이 집에 있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 벨을 눌러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나서야 남 변호사의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현관문을 열고 나온 남 변호사의 부인 정 전 기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집에는 아이들과 자신밖에 없고, 남편인 남 변호사와는 본인도 연락을 끊은 지 오래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어디에서 머무르고 있는지, 언제 한국으로 들어갈지 자신도 언론 보도 내용을 보고야 알 수 있다는 게 정 전 기자의 주장이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의혹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대장동 사업은 물론 위례신도시 사업 역시 모두 남편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아무 상관이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도 강변했다.

취재진은 이후 남 변호사 집 앞을 수시로 오가며 남 변호사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전혀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 남 변호사가 LA총영사관에 여권을 반납했고 곧 한국으로 들어갈 거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린 자녀들을 반드시 한 번은 보고 귀국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취재진은 남 변호사의 출국일 하루 전날 저녁, 무작정 다시 남 변호사의 집 앞을 찾았다. 혹시 집에 벌써 와 있으려나 초인종이라도 한 번 눌러보려 차에서 내렸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깜깜한 어둠 속 검은 실루엣이 점점 취재진 쪽으로 가까워지면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 머리에 마른 체형, 피곤한 듯 초췌한 얼굴, 남욱 변호사였다.

기다림이 길어서였을까. 마치 연예인을 본 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인사를 하고 다가갔다. 이 늦은 시간까지 집 앞에 기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남 변호사는 처음에는 다소 놀라는 눈치였지만, 금세 여유를 찾았다. 이내 환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인터뷰를 거절하던 남 변호사는, 나흘을 기다렸다는 기자의 말에 그러면 궁금한 사안 몇 가지만 답을 하겠다며 발길을 멈췄다. 그렇게 1시간 반이 넘는 남욱 변호사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남욱 변호사 미국에서 취재

'그분'에 대한 답변이 바뀌다

남 변호사는 앞서 JTBC와의 첫 언론 화상 인터뷰에서 했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이어갔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2015년 이후 전혀 개입을 하지 않아 그 이후 일은 알지 못하고, 그 이전에도 자신이 한 일은 제한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 변호사의 발언에 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김만배 회장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JTBC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그분'을 묻는 질문에 남 변호사는 '김만배 회장이 가장 연장자였으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는 '형 동생' 호칭을 사용했지, '그분'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다'고 했었다. 김만배 회장이 말한 '그분'이 유동규 전 본부장은 아니라고 해석되는 이 대답은 여운을 남겼고, 이튿날 그렇다면 이재명 후보가 아니겠느냐며 정치권에 큰 논란이 됐던 터다.

하지만 기자가 '그분'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다시 묻자 이번엔 답이 바뀌었다. 김만배 회장도 유동규 전 본부장도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에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을 부를 때 '이재명 시장, 이재명 시장' 이렇게 불렀지 '그분' 같은 높임말은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앞선 JTBC의 화상 인터뷰에서는 '그분'이 유동규 전 본부장은 아니라고 해석되는 답을 했다면, 이번에는 이재명 후보는 아니라고 읽히는 답을 한 것이다. 다만 '이재명 후보가 아니다'라고 확실히 말하지는 않았다. 우선 그 녹취가 이뤄지던 자리에 자신이 없었기에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이 이렇게 커진 건 유력 대선 주자와 연관이 됐기 때문이 아니냐며, 그렇기에 자신이 정치인 이름을 직접 언급해 정치에 연루되는 것 자체가 겁나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남 변호사의 '그분' 관련된 답변은 SBS와의 이 대화 바로 다음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또다시 바뀐 것으로 보인다. JTBC 보도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취재진이 물어보기도 전에 '그분'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한 이재명 후보와 관계없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귀국이 다가오면서 '그분'에 대한 남 변호사 발언의 뉘앙스가 바뀌는 듯하더니, 급기야 정치인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겠다던 이전 입장을 깨고 '이재명 후보는 아니다'라며 매우 적극적으로 부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행 비행기 탑승 위해 공항 찾은 '대장동 핵심' 남욱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남 변호사는 집 앞에서 나눈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일개 업자'라며, 대장동 의혹이 대선판을 요동할 정도로 커져 겁이 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검찰이 자신을 "어떻게든 '골인'(구속)시키려 한단 얘기를 들었다"며, 솔직히 들어가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했다. 특히 김만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점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김 회장의 죄까지 뒤집어쓰는 건 아닌지를 걱정했다. 남 변호사는 자신의 신변에 대한 걱정도 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재명 후보가 자신을 찾으려고 미국에 사람을 보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라며, 자신이 지은 죄는 처벌받겠지만 자신이 짓지 않은 죄까지 처벌받을까 겁이 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남 변호사는 자신이 언론과 한 인터뷰를 보고 검찰에서 연락이 왔었다며, 오늘 한 이야기도 보도가 되면 자신이 불리해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분'에 대한 남 변호사의 답변이 귀국일이 다가오며 바뀌어 간 이유는 남 변호사만이 알 것이다. 다만 검찰 조사 직전 취재진을 만난 남 변호사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답을 했을 것이란 점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사장 될 것'이라고 말해"

취재진이 남욱 변호사를 만나기 직전, 남 변호사의 녹취가 공개돼 논란이 됐었다. 남 변호사가 2014년 대장동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 시장이 재선되면 사업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고, 유동규 본부장이 다음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이 될 것이다"라고 한 내용이다. 왜 이런 말을 했느냐고 묻자 남 변호사는 이게 왜 논란인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반문했다.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민관 공동개발 사업 모델을 확정한 시장이 바뀌게 되면 전혀 다른 업자가 선정이 될 텐데, 전임 시장이 재선되기를 바라는 게 너무 당연한 게 아니냐는 답변이었다.

그 부분은 그렇다 쳐도 "유동규 본부장이 사장이 된다"는 발언은 왜 했느냐고 묻자 남 변호사는 "본인이 그렇게 말을 했으니까. 본인이 되고 싶다고 하고 다녔으니까" 라고 답했다. 당시 유동규 본부장이 자신이 차기 사장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기자가 "그렇다면 유동규 전 본부장이 당시 자신의 인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였느냐"고 되물었고, 남 변호사는 다소 당황한 듯 "그거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본인이 친하다면 친한 줄 알고, 안 친하다면 안 친한 줄 알고 그런 거지"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후부터는 당시 상황을 재차 묻는 기자의 질문에 더 이상 답을 하지 않고 회피했다.

최윤길 당시 성남시의회 의장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남 변호사는 자신을 많이 도와준 분이라고 답했다. 혹시 최 의장에게 금품 등을 건넨 사실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그건 검찰에 가서 진술할 내용"이라고 답을 했다. 사실상 인정을 하는 듯한 답변이라고 느껴졌다. 이후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가 최윤길 의장을 찾아 시의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보도도 나왔는데,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 보이는 부분이다.
 

요란했던 귀국…지지부진한 검찰 조사

전 언론사가 따라붙었던 '키맨' 남욱의 귀국 현장, 그리고 공항 도착 즉시 긴급체포한 검찰.

공항에서 체포된 남욱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일견 소란스러워 보였던 남 변호사의 검찰 조사는 그러나 구속영장 청구도 없이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검찰이 남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보이고는 있지만, 행여 김만배 회장 때처럼 기각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있는 듯하다. 남 변호사는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해 귀국 전부터 검찰 조사에 대응해왔다. 남 변호사는 가족이 있는 샌디에이고 집을 떠나 모처에 홀로 떨어져 사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시차에 맞춰 밤새 변호사들과 전화 통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 변호사는 본인이 먼저 언론을 찾아간 적은 없지만, 자신을 찾아온 언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 기회에 자신이 말하고픈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욱 변호사의 조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키맨'이라는 수식어처럼 대장동 의혹을 풀 열쇠가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 [단독] 남욱 "유동규 본인이 사장 될 거라고 직접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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