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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대권→구속…진상규명엔 침묵한 노태우

쿠데타→대권→구속…진상규명엔 침묵한 노태우

백운 기자

작성 2021.10.27 01:44 수정 2021.10.27 01: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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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노태우 씨는 전두환 씨와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이끈 뒤 이를 계기로 정치권에 진입했습니다.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라는 기록, 또 헌정사상 처음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백운 기자입니다.

<기자>

노태우 씨는 12·12 군사반란을 함께한 육사 11기 동기 전두환 씨가 집권한 뒤, 정치인으로 변신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서 정무2장관을 시작으로 초대 체육부 장관을 거쳐 집권 여당 민정당의 대표에까지 올랐습니다.

노 씨는 1987년, 국민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한 전 씨의 4·13 호헌조치를 "고뇌에 찬 역사적 결단"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는데, 국민의 저항이 전국으로 번지자 6·29 선언을 내놓으며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습니다.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표 (1987년 6월 29일) : 우리나라의 장래 문제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직선제 개헌 이후 첫 대선에서 야권 분열을 등에 업고 '보통사람'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13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노태우/당시 민정당 대선 후보 (1987년 11월) : 여러분의 보통사람 노태우 인사드립니다.]

집권 기간 북방외교를 추진해 소련, 중국 등 공산권과 수교했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 올림픽 성공적 개최 등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1995년, 후임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면서 반란 중요임무 행사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당시 전두환 씨는 일명 '골목 성명'을 낸 뒤 검찰 소환에 불응했지만, 소환에 응했던 노 씨는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구속됐습니다.

이후 1997년 4월,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최종 선고받았고, 같은 해 12월 사면받았습니다.

2011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썼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그 뒤로는 침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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