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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 충돌 막는 투명창 '점' 표시…법 제정 서둘러야

작은 점 등 문양으로 충돌 피해 90% 이상 감소

충남 서산 649번 도로는 3년 전인 2018년 말 개통됐다. 천수만 간척지와 인공호수인 부남호 근처에 있다. 도로 양쪽에는 방음벽이 곳곳에 설치돼있다. 높이는 2m 가량 되는 비교적 낮은 방음벽이다.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투명창이다 보니 새들에겐 위험천만한 장애물이다. 숲으로 날아가던 새들이 투명창을 알아채지 못하고 충돌해 죽는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용식 기자 취재파일용 사진 리사이징

서한수 씨는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방지 활동가다. 도로가 개통된 뒤 방음벽 아래에 죽어있는 새를 보고 매달 초 피해 조사를 하고 있다. 부석면 창리에서 서산 읍내까지 20km 도로 중 고잠교차로, 칠전교차로 등 9개 방음벽 구간이 모니터 대상이다. 2019년 1월부터 조사한 결과 방음벽 충돌로 죽은 새는 3백66마리에 이른다. 오색딱따구리, 물까치, 박새 등 흔한 텃새부터 천연기념물인 참매와 새매 등 28종의 새들이 무심코 하늘을 날다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

이용식 기자 취재파일용 사진 리사이징

새 피해가 심각하자 녹색연합 및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투명 방음벽에 사각점을 붙였다. 6mm 크기의 점을 세로 5cm, 가로 10cm 씩 규칙적으로 붙이는 게 중요하다. 작은 새들도 투명창에 표시된 점을 장애물로 인식하고 피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용식 기자 취재파일용 사진 리사이징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탁월했다. 충돌 방지 표시를 한 뒤 투명창에 부딪혀 죽은 새는 2019년 7월부터 지난 8월까지 33마리에 그쳤다. 애정3교차로에서는 사각 점 부착 전 충돌피해 78마리에서 부착 후 5마리로 줄었고, 옻밭 2교차로에서는 충돌로 죽은 새가 47마리에서 1마리로 줄었다. 칠전 2샛길에 있는 방음벽에서는 충돌 방지 시설을 설치하기 전 충돌 피해가 13마리였는데 설치 후엔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서한수 씨는 밝혔다.

국립생태원이 2년 전에 진행한 대전 반석동 투명방음벽 새 충돌 모니터 결과에서도 사각점 표시 효과가 입증됐다. 사각점을 붙이기 전 4백1일간 발견된 충돌 피해는 1백33마리였는데, 사각점을 붙인 뒤 3백52일간 모니터 결과 방음벽에 충돌한 새는 4마리에 불과했다.

이용식 기자 취재파일용 사진 리사이징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복지실장은 "비록 작은 점이라 하더라도 새들은 거기가 비어있지 않고, 뭔가 차 있는 공간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맹금류 스티커가 붙어있는 곳에서도 충돌피해가 발생하는 걸 보면 새들이 맹금류 모양을 인식해 피해 가는 게 아니다. 맹금류 스티커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붙이지 않고 투명창에 달랑 1장 붙여 놓으면 충돌을 막기에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5X10의 규칙으로 점이나 선 등 문양을 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용식 기자 취재파일용 사진 리사이징

환경부는 2018년 10월부터 투명방음벽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 부착 비용 지원을 하고 있다. 방지테이프 구매 비용으로 연간 1억5천만 원을 지원한다. 구매 비용만 지원하고 테이프 부착 비용은 기관이나 단체 등 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곳에서 부담해야 한다. 새 충돌 저감사업에 참여한 곳은 18년 1개소, 19년 6개소, 20년 19개소, 21년 17개소 등 모두 43곳의 공공기관과 아파트 등이다. 건축물 유리창 시설이 24곳이고 방음벽은 19곳이다. 환경부에 신청을 하면 연간 예산 한도에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투명창에 조류 충돌 저감시설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3월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른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기준 고시를 개정했고, 지난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도로가에 새로 방음벽을 설치할 경우 새 충돌 방지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 법을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 조항이 빠진 게 한계지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조례 제정을 통해 새 충돌 방지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 구로구가 2018년 8월 조류충돌 저감 조례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년에 경남 창원, 충북 청주, 충주가 참여했다. 올해는 광주광역시, 광주 남구와 북구, 충남 서산, 부산 남구, 경남 진주, 충남,경기, 경기 시흥, 울산, 대구 동구 등이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금까지 15개 기초, 광역 자치단체가 새 충돌 저감 노력에 참여했다.

하지만 건축물 투명창에 대한 법규정이 없어 지자체들이 조례를 제정해도 방음벽과 달리 건축물의 경우 충돌방지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민주당 허영 의원이 건축물 등 인공 구조물에 충돌방지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야생생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3월 발의했다. 지자체 조례의 효력을 높이고, 건축물 투명창 새 충돌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입법을 서둘러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용식 기자 취재파일용 사진 리사이징

하루 2만 마리의 새들이 방음벽, 건축물 유리창 등 투명창에 충돌해 죽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알고 있을까? 의원들에게 잠깐 짬을 내 도로가나 아파트 주변 방음벽 아래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하늘을 날다 인공구조물에 부딪쳐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죽어가는 새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달라질 걸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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