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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거돈 측, 항소심에서 구속 만료 노리나

- 오거돈 피해자 인터뷰③ - '오거돈 강제추행' 항소심이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끝난 줄 알고 있지만,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오 전 시장이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지만 곧바로 항소했기 때문이다. 항소심 두 번째 재판이 지난 13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렸다.

그러나 재판은 불과 14분 만에 끝났다. 앞서 지난 9월 15일 열린 항소심 첫 재판도 3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예정된 바였다"고 했다. 항소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거돈

오거돈 측, "피해자 PTSD 감정 다시 하자" 감정 촉탁 신청

재판이 빨리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오 전 시장 측 변호인이 요청한 '피해자 진료기록 재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날 재판에선 통상 3개월 정도 걸리는 감정 절차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재판부가 감정을 촉탁한 대한의사협회에서 관련 청구서를 법원에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경과를 알아보기로 하는 한편 다음 기일을 11월 3일로 잡았다. 항소심의 주된 쟁점이 사실상 진료기록 재감정 결과에 달렸다는 걸 감안하면, 다음 재판도 별 쟁점 없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시작은 오 전 시장 측 변호인이 피해자 진료기록 재감정을 요청하면서부터다. 오 전 시장은 1심에서 피해자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힌 '강제추행치상죄'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는데, 여기서 '치상죄' 부분을 다퉈보자는 게 오 전 시장 측 변호인의 항소 배경이다. 치상을 떼고 그냥 강제추행이 되면 형량이 확 줄어들고 집행유예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진짜 맞는지 다시 한번 감정해보자"는 게 오 전 시장 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문제는 오 전 시장의 구속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만료된다는 데 있다. 오 전 시장은 지난 6월 29일 1심 선고 당시 법정구속됐다. 아직 형은 확정되지 않았고 재판을 위한 구속기간은 심급별로 최대 6개월까지니까 오는 12월 말, 늦어도 1월 초면 구속기간이 만료된다. 진료기록 감정은 해야겠고, 만약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하면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오 전 시장은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측에서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피해자 진료기록 재감정 자체가 중대한 2차 가해"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에서 진료기록 감정 자체가 갖는 한계와 특수성에 있다.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신체적 상해가 아닌 정신적 상해를 입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신체적 상해는 엑스레이나 MRI, CT, 환부 사진 등을 통해 기록만으로 감정이 가능하지만 정신적 상해는 다르다. 피해자는 장기간 입원과 상담 치료를 통해 인제대 백병원 등 2곳의 대학병원 정신과와 1곳의 일반 정신과 병원에서 PTSD 진단을 받았다. 상담일지 등 진료기록이 완전히 잘못 작성된 경우가 아니라면, 기록만 보고 감정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게 정신과 전문의들의 설명이다(실제 재판부는 처음 대한정신과의사협회에 진료 기록 감정을 촉탁했지만 거부당한 걸로 알려졌다).

이 경우 그나마 제대로 감정을 받으려면 피해자를 다시 입원시켜서 관찰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통상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 측이 심신미약이나 정신질환을 주장하는 경우 감호소에 가둬 놓고 약 3개월 정도 관찰하고 진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다시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입원을 감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일각에선 결국 '판정 불가'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피해자 측이 "감정 촉탁 신청 자체가 매우 심각한 2차 가해이자 재판 지연 전략"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감정 촉탁 신청 과정에서 오 전 시장 측 변호인의 자료 제출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오 전 시장 측이 피해자 진료 기록 등을 재판부에 내면서 PTSD 진단서 등 피고인에 불리한 내용은 누락하고, 수사기록은 과도하게 제출했단 비판이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 사람들의 신상이 그대로 노출된 수사기록이 과도하게 제출되었다면서 "진료기록이 아닌 수사기록 감정이냐"고 반발했다. 의협 등 감정기관에 해당 자료가 넘어가면 피해자의 신원 노출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늘어지는 재판…"백신 접종 때문에" 공판 연기

피해자 측은 재판 진행에도 문제가 있다고 우려한다. 사실상 재판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감정 촉탁 신청을 피해자나 검사 측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비공개로 채택하고 기일도 미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감정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서둘러 감정 촉탁을 한 것"이라고 답했지만, 통상적으로는 양측의 의견을 다 수용해 감정 촉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월 18일로 예정됐던 항소심 첫 재판을 9월로 미룬 이유가 오 전 시장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지난 2차 공판에서 새롭게 공개됐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이 제출한 기일 변경 신청서에 8월 18일 오후 백신 접종이 예정돼 있다는 내용이 있다"며 "실제로 이날 백신을 접종했는가"라고 물었고 오 전 시장은 "예"라고 답했는데, 피해자 변호인 측은 "재판은 그날 오전이었는데 오후 백신 접종이 어떻게 연기 이유가 될 수 있냐"고 반박했다. 이 역시 고의적인 재판 지연 전략 아니냐는 주장이다.

부산 지역 법조계와 여성계 일각에선 오 전 시장 측이 새로 선임한 변호인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항소심에서 새로 선임된 이영욱 변호사는 오경미 대법관의 남편이자 항소심을 맡고 있는 부산고법 오현규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25기 동기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줄곧 지원해온 이재희 부산성폭력상담소장은 "변호인의 배경과 이력만 가지고 연관성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은 1심 재판부도 판시했듯 권력형 성범죄 사건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훨씬 더 큰 권력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거돈 전 시장, 실루엣

오 전 시장 초호화 변호인단, 1심에선 "피해자 PTSD, 검찰 개혁 필요 이유"

재판에 항소하고 피해자 진료기록 재감정을 신청하는 것은 오 전 시장의 법적인 권리일 수 있다. 구속기간이 만료돼 불구속 재판을 받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지난 1심 최후변론에서 "피해자가 일상으로 회복하는 데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항소심에서 변호인 측이 보여준 행보와는 반대다.

오 전 시장 변호인의 노력은 물론 눈물겹다. 구속만료든 집행유예든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해 노력하는 건 변호인의 본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피고인인 오 전 시장의 최후 변론 취지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변호인 측은 피해자 진료기록 재감정을 주장하면서 피해자가 '직장 복귀를 위해 애쓴 점'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 때문에 피해자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황장애가 왔다면서 어떻게 그 장소에 다시 갈 수 있냐"는 변호인 측 논리 때문이다. 심지어 변호인 측은 1심 최후 변론에서 피해자의 정신적 상해는 "검찰의 과잉수사와 언론 때문"이라면서 "이게 바로 검찰 개혁이 필요한 이유"라는 신박한 논리를 펼치기까지 했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피해자가 임시로 머물고 있는 숙소의 임대기간도 곧 만료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또 다른 숙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피해자는 오 전 시장의 구속기간 만료에 대해선 "상상해본 적도 없지만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구속 중에도 변호인들이 끊임없이 합의를 시도해왔는데 온갖 전략을 구사했는데 나와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싶어서 무섭다"고 답했다.

"월등히 우월적 지위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지켜봐야 하는 이유

피해자는 인터뷰 도중 요즘 자기 삶이 영화 <트루먼쇼>의 한 장면 같다고 말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사실은 24시간 관찰쇼의 주인공이었다는 걸 깨닫고 세트를 탈출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는 장면. 집채만 한 파도와 거센 폭풍우를 하나하나 뚫고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겨우 나아갔는데 결국 배가 꽝 하고 부딪힌 건 벽이었다는 이야기. 어떻게든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제 더 이상 도망갈 데도 없고 벽을 뚫고 나갈 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많이 울었다고, 그는 말했다.

권력형 성범죄가 개인 간 성범죄와 가장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가해자의 세력과 배경이 있고 그 건너편에 피해자가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세력의 크기는 가해자의 권력에 비례하며 피해자는 끊임없이 또 다른 가해자나 2차 가해와 싸워야 한다. 사건 당일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가해자의 측근들은 합의를 종용했고, 정치권은 약속을 외면했으며 오 전 시장의 호화 변호인단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오 전 시장의 범죄가 "월등히 우월적인 지위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재판을, 나아가 이 사건의 결말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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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파일] 오거돈 피해자에 선거 때 한 약속, 결국 안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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