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단독][취재파일] 베이징올림픽 홈페이지에 웬 마오쩌둥 선전

[단독][취재파일] 베이징올림픽 홈페이지에 웬 마오쩌둥 선전
<올림픽헌장 제50조 2항>은 올림픽 관련 시설 및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지역 안에서 정치적·종교적·인종적 시위 및 선전 활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혁명 정신을 선전하는 기사가 다섯 달째 계속 게재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둔 지난 6월 22일 베이징의 <수도체육학원> 학생들은 화상을 통해 <징강산 마오쩌둥 홍군학교> 학생들과 동시에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목적은 중국의 올림픽 역사를 통해 청소년의 민족적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마오쩌둥과 스포츠에 관련된 스토리를 공유하면서 중국공산당 100년간 올림픽운동의 여정을 공동으로 학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이징 수도체육학원-징강산 마오쩌둥 홍군학교 학생 동시 화상 수업

강의 내용에는 마오쩌둥이 젊었을 때 <신청년>(新青年)에 발표한 ‘체육의 연구’(体育之研究)라는 글과 함께 마오쩌둥이 63세부터 73세까지 양자강을 총 18번이나 헤엄쳤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징강산 마오쩌둥 홍군학교> 교장 샤오원웨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징강산은 중국 혁명의 요람이다. 최근 당(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징강산 인민들은 빈곤 탈피 전쟁에서 승리해, 인민의 생활 수준이 대폭 향상됐다.”
 
베이징의 <수도체육학원> 학생들이 화상을 통해 <징강산 마오쩌둥 홍군학교> 학생들과 동시에 이런 강의를 듣게 된 것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뉴스선전부가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조직위는 “전국 청소년들의 올림픽-패럴림픽 지식을 공유하고, 나라를 위해 분투하는 애국주의를 널리 선양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고취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실천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징강산(정강산, 井冈山)은 중국 장시성과 후난성의 경계에 위치한,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홍군의 탄생지로 유명합니다. 1927년 추수 봉기에 실패한 마오쩌둥은 남은 부하 1,000여명을 이끌고 천혜의 요새인 징강산에 근거지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이 산에서 세력을 키워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세울 수 있었는데 문화대혁명 때 이곳은 홍위병들의 성지(聖地)로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중국의 숱한 학교를 제쳐 놓고 하필 <징강산 마오쩌둥 홍군학교>를 선정해 베이징에 있는 학생들과 화상 수업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뻔합니다.
 
마오쩌둥 정신을 배우고 중국 공산당의 업적을 알리는 것은 중국 내부의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내용을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재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6월 25일 처음 게재한 뒤 지금까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마오쩌둥이 63세부터 73세까지 양자강을 총 18번이나 헤엄쳤다는 것과 당의 영도 아래 중국 인민의 생활 수준이 대폭 향상된 것과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실천하는 것이 지구촌 축제인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있을 필요가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마오쩌둥 선전을 대대적으로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작 있어야 할 성화 봉송 일정과 루트는 이례적으로 전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역대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적어도 1년 전에는 성화 봉송 일정과 경로가 공개돼 있는데 베이징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는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화 봉송에 나선 중국 쇼트트랙 올림픽 메달리스트 리자준(왼쪽)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는 지난 18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돼 어제(19일) 베이징 조직위에 인계됐습니다. 성화를 받았는데도 봉송 일정과 경로 등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성황 봉송 일정과 경로를 미리 공개할 경우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단체들이 기습 시위에 나서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도쿄올림픽 당시 중국 사이클 선수들은 ‘마오쩌둥 배지’를 가슴에 달고 시상식에 참석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이른바 ‘이순신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자진 철거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태극전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도 제게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한글 현수막을 제작해 선수촌에 내걸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며 문제 삼았고, 한 극우 단체는 한국 선수촌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를 흔들며 시위를 했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IOC는 한국 선수단 사무실을 찾아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고, 서신으로도 '현수막에 인용된 문구는 전투에 참여하는 장군을 연상할 수 있기에 <올림픽헌장 50조> 위반으로 철거해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일본계 미국인 IOC 고위 간부는 선수촌을 직접 방문해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IOC는 이에 앞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홈페이지에 게재됐던 독도 표기를 삭제하라고 평창 조직위에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게 유독 여러 차례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던 IOC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홈페이지의 마오쩌둥 선전에 대해서는 5개월째 수수방관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