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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거돈 피해자의 고통은 진행 중이다

오거돈 피해자 인터뷰① - 부산시장 성추행 사퇴 사건의 전말

[취재파일] 오거돈 피해자의 고통은 진행 중이다
*SBS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사건 피해자를 최초로 인터뷰해 8뉴스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피해자 또한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은 오 전 시장은 항소했고 법정 다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7 재보선을 전후로 정치권이 피해자에게 한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권력형 성범죄에 뒤따르는 2차 가해의 고리를 끊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취지에서 방송에서 모두 다루지 못한 부분과 더 이야기해야 할 사실을 여러 편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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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창고에 가죽만 걸려 있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렵게 마주 앉은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해 그 일이 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고통과 2차 가해, 또 말뿐인 약속에 지쳐가던 어느 날의 감정에 대한 회상이었다. 처음 인터뷰에 나선 오거돈 전 부산시장 강제추행 사건 피해자 이야기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가족과 떨어진 채 임시로 마련된 숙소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나 예고도 없이 찾아와 합의를 종용하는 사람들 탓이다. 숙소에는 차량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는 수첩이 있다고 했다. 집 앞에 선팅된 낯선 차량이 보일 때마다 혹시 몰라 적어 놓은 수첩이다. 한때는 그토록 좋아했던 직장에 제대로 나가지 못 한 지도 오래다. 피해자의 시계는 그 일이 있던 1년 반 전에 멈춰 있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이 상처 받을까 봐 다 밝히지 않는 것"

오 전 시장의 강제추행 사건이 있던 지난 4월 7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상에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다. 이후 오 전 시장이 강제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퇴했지만 재판 과정에선 '강제추행'이 아니었다며 이를 번복했다. 오 전 시장 측의 말도 조금씩 바뀌었다. "강제추행은 아니었다, 우발적인 일이었다, 치매 증상이 있다" 같은 식이다.

피해자는 지금이라도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오 전 시장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했다. 그러면 여론의 화살은 훨씬 더 분명하고 강렬하게 가해자들을 향할 테고, 자신은 부당한 비난과 2차 가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게 걱정되어서다.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사랑하는 친구들이 알게 되면 더 괴로워할까 봐 본인은 그게 걱정돼서 그럴 수 없다는 말이었다.

모든 일의 시작인 오 전 시장의 범행뿐 아니라, 피해자를 끊임없는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2차 가해는 사건 당일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4월 7일 밤, 당시 오 전 시장의 측근이자 부산시 정무직 공무원이던 신 모 씨가 피해자의 가까운 지인을 불러냈다. 그 당시 피해자를 대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신 씨는 이 자리에서 사실상 합의를 종용했다. 피해자의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가 하면, 오 전 시장의 사퇴는 지금으로선 힘들다, 심지어 피해자의 직무와는 전혀 연관 없는 모 골프장을 언급하며 원한다면 그쪽으로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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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부터 시작된 2차 가해

피해자는 도저히 오 전 시장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퇴를 요구했다. 피해자인 자신이 가해자를 피해 직장을 옮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증을 받고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출근도 했다. 오판이었다. 시장은 시청의 왕(王)이었고, 시청은 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업무용 메신저에는 "시장님 어디 가신다"는 일정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계단만 올라가면 가해자인 시장이 앉아있고, 지나가다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손이 떨리고 물만 먹어도 구토가 나왔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오 전 시장 측은 '조속한 기일 안에 사퇴한다'는 문구를 가져왔다고 한다. 피해자 측 요구로 '이번 달 안에 사퇴한다'로 문구가 바뀌었다. 추후 피해자 측과 오 전 시장 측이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4·15 총선 후에 사퇴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알려진 건 명백한 오보였다. 논의 과정에선 '선거'라는 언급조차 없었다고 한다. 사건 다음 주가 총선이었다는 건 피해자도 알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낼 상황이 아니었다.
 
"저는 그때 변호사도 없었고, 상담소에도 가기 전이었고 친구와 둘이서 네이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는 상황이었어요. 다음 주 선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는 그냥 끼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온갖 정치인들이 유세 트럭에서 내 얘기를 떠들 테고, 선거가 끝나면 나는 그냥 버려지겠구나. 그래서 말도 안 꺼냈어요."

피해자는 기다렸다. 총선이 끝났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그즈음 오 전 시장 측의 기류가 바뀌었다. 연락을 보내도 답이 오지 않거나 늦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이번 주 안으로 결정하겠다'는 시장 측 연락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4월 22일 저녁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시장 사퇴 전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00(피해자) 씨? 한번 만날 수 있겠습니까?"

부산 사투리를 쓰는 중년 남성의 굵은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왔다. 한사코 자기 이름을 밝힐 수 없다던 남성은 십여 차례 피해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만남을 요구했다. 그저 오 전 시장과 가깝고, 이 사건을 아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하나라고만했다. "소프트하게 사건을 해결하자"며, 거듭 만나자는 말만 반복했다. 막무가내였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당시 부산시 고위직이자 오 전 시장 핵심 참모로 분류되는 남성에게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무작정 만나자는 요구가 12분 이상 이어졌다.

오거돈 측근 피해자에 회유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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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는 끊어졌지만 피해자는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에 휩싸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온 중년 남성이 이 사건을 잘 알고 있고, 시장 사퇴가 답이 아니라며 만남을 요구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십여 차례 부르며 만나자고 하는 그 목소리 자체가 피해자에겐 공포였다. 주변과 상의한 끝에 결국 그날 저녁, 바로 다음 날 사퇴해달라고 오 전 시장 측에 전달했다. '일신상의 이유'가 아닌 '강제추행'이라는 사실도 공개하라는 요구와 함께였다. 이제는 숨긴다 해도 의미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22일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오 전 시장 사퇴의 방아쇠가 된 셈이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저는 결정을 못 하고 있었어요. 왜냐면 강제추행 사실이 알려지면 언론이 가만있지 않을 거고 제 일상도 망가질 거고, 출근도 못 할 거고. 재판이 진행되면 돈 많은 가해자가 선임할 변호사들 그런 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경찰이나 검찰은 내가 100% 신뢰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 전 시장이) 그냥 일신상의 이유라고 사퇴하면 저는 제 직장을 지키고 일단 가해자만 책임지고 나가는 거니까, 그게 좀 더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그 전화를 받고 나서 아, 이거 알 사람들은 다 알았는데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구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고 나 혼자 닭처럼 모래밭에다가 머리 묻고 나만 안 보인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겠구나. 그래서 사퇴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처음 피해자 측과 오 전 시장 측이 합의한 건 23일 오후 부산시 부시장이 정례 브리핑에서 오 전 시장 사퇴를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전, 갑자기 속보 알림이 떴다. 오 전 시장이 긴급 발표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15분 후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발표" 같은 구체적인 내용이 속속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놀란 피해자는 잠옷 바람으로 택시를 타고 상담소로 향했다. 도저히 혼자 있기 힘든 상태였다. 상담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오 시장 사퇴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그동안 조율했던 세부 내용, 이를테면 2차 가해 방지 약속 같은 것들은 온데간데없이 "부산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해달라"는 오 전 시장의 비분에 찬 변(辯)만 맴돌았다. 피해자는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오거돈 사퇴 후, 지옥이 된 직장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이후에도 고통은 이어졌다. 아니, 또 다른 시작이었다. 시장이 물러나면서 정무 라인이 동반 사퇴하거나 자동 면직됐지만 배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합의를 종용했던 신 모 씨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시청으로 돌아왔다. 당시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시정에 필요하다"며 복귀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논란이 일자 당시 변 권한대행은 신 씨가 "도의적인 것 외에 다른 책임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사실상 2차 가해의 주범으로 지목한 이가 신 씨였다. 앞서 밝혔듯 사건 당일부터 합의를 종용한 것도, 피해자 주변 동료들에게 사실상 '입단속'을 지시한 이도 신 씨였다. 당시 피해자가 신 씨, 그리고 동료들과 주고받은 SNS 메시지와 문자 내역 등에 따르면 신 씨는 피해자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동료를 불러내 이른바 '면담'을 실시했다. 그리고는 팀장 등을 통해 피해자와 나눈 SNS 대화 내역이나 문자 등을 모두 삭제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피해자 측이 이미 변 전 시장대행에게도 여러 차례 전달한 바였다.

(신 씨는 SBS기자와 통화에서 골프장 취업 제안 등 합의를 종용한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문자 삭제 지시 등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한 지역 언론 기자가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내 연락을 해 온 적도 있었다. 당시 언론을 담당하던 또 다른 시청 직원이 피해자 신원과 연락처를 알려주다시피 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유출 경위를 시인하고 "미안하다"던 이 직원은 시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자 "모르는 일"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시 관계자들도 감싸기에 급급했다. 늑장 조사에 징계 보류를 거듭하다 7달 뒤에서야 1개월 감봉의 징계가 내려졌다. 해당 기자는 두 달 쉬고 다시 시청 출입으로 복귀했다가 피해자 측의 항의로 다른 출입처로 전보됐다. 2차 가해를 막고 중징계하겠다던 변 전 시장 권한대행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차 가해

피해자는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옮겨두었는데, 읽어본 기자의 느낌은 '직장 성범죄 2차 가해의 나쁜 사례'로 그대로 써도 될 수준이었다. 한 시청 관계자는 피해자 보호지원책으로 피해자와 함께하는 'With You'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제안했는데 구체적인 내용도 계획도 없었고 어이가 없다고 느낀 피해자가 "차라리 제 연락처를 공지에 띄우고 응원 문자를 보내라고 하세요"라고 말하자 돌아온 답변은 "아, 그래도 되나요?" 였다고 한다. 2차 가해 신고를 어디에 할지 묻자 '청렴소리함'에 하라거나 입원 중인 피해자에 "병가 계산을 잘못했으니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등의 말들도 이어졌다. 피해자는 온 시청과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는 자랑스럽던 직장이, 지옥으로 변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오 전 시장 사퇴 이후에도 그의 측근들이 들어앉은 시청에서, 오 전 시장의 존재감은 공고했다.
 

오거돈 피해자 "일상을 되찾고 싶을 뿐"

피해자는 이후 극심한 불면과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다 동이 트면 겨우 잠에 들었고 조금 전 있었던 일도 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매일 열 세 종류의 신경정신과 약을 먹었다. 어쩌다 집 밖을 나서는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모험이었다. 한 번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중년 남성과 신체접촉이 있은 후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집 밖의 선팅 된 차량을 보면 번호를 기록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시간이 지나며 일상을 회복하고 싶어도, 이른바 2차 가해와 폭력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피해자를 덮쳐왔다. 자주 가던 식당에서 아버지와 밥을 같이 먹고 있을 때 일이다. 옆 자리에 앉은 두 남성이 오거돈 강제추행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입에 담지도 못 할 천박한 표현과 함께 '여자애(피해자)가 원래 그렇다더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듣기 싫어도 들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아버지도 들었을 터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슬프고 괴로웠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안주처럼 떠들었을까. 왜 하필 내 옆에 앉았을까. 피해자는 이 대목에서 슬프게 울었다.

기자가 만난 피해자는 평범한 한 여성이었다. 기자의 주변에도 있고,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나라도 옆에 한두 명 있을 법한 그런 사람이었다. 월급 타면 적금 붓고,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가끔 커튼 바꾸고 이불 바꾸며 집 꾸미는 걸 좋아한다던 이였다. 그러나 그가 1년 반째 머무르는 임시 숙소는 지금 엉망진창이라고 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혀진 공간이, 때로는 자신의 삶과 같다고 느낀다고 했다.
 
"왜 하필 가해자가 부산시장이었고 하필이면 왜 선거 전에 그랬는지 저는 몰라요. 왜 그랬는지 제가 제일 궁금해요. 진짜. 제가 제일 궁금해요."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몇 백 번을 바랐는지 모른다. 피해자는 그저 평범하던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가 필요하다. 가해자의 단죄와 책임 있는 조치. 그리고 약속을 한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는 일. 그러나 1년 반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모든 희망과 기대를 앗아가는 일의 연속이었다.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는 절망에 몸부림쳐온 시간이었다.

-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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