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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미로를 함께 걸을 책 - 카프카 '성' [북적북적]

평생의 미로를 함께 걸을 책 - 카프카 '성' [북적북적]

권애리 기자

작성 2021.10.17 07: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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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미로를 함께 걸을 책 - 카프카 성 [북적북적]
평생의 미로를 함께 걸을 책 - 카프카 '성' [북적북적312]

"K가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때였다. 마을은 깊은 눈 속에 묻혀 있었다. 성이 서 있는 산은 안개와 어둠에 휘감겨 전혀 보이지 않았고, 거기에 커다란 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희미한 불빛 한 점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단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주문이지만- 저는 아무래도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을 대야 할 것 같습니다. 의리 때문에라도 다른 사람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카프카는 일종의 정신적 궁지에 몰려있던 10대 후반에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 평생의 친구 같은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카프카의 글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 '성'입니다.
 
"여기 멀리서 바라본 모습대로라면, 성은 K의 예상과 대체로 일치했다. 오래된 기사의 성도 아니었고, 새로 지은 호화 건축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2층짜리 건물이 드문드문 솟아 있고 수많은 단층 건물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광대한 구조물이었다. 만일 그것이 성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하나의 조그만 도시쯤으로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K의 눈에 탑은 하나만 보였는데, 주거용 건물의 일부인지 교회에 속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까마귀떼가 탑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두 눈으로 오직 성만을 바라보며 K는 계속 걸었다. 다른 어떤 것도 그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다가갈수록 성은 그를 실망시켰다. 그것은 시골집들을 끌어모아 놓은 정말이지 초라하기 그지없는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설은 알파벳 'K'라고만 표시되는 한 남자가 '성'을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무슨 '성'이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아무도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K는 성을 둘러싼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은 성의 주인인 백작이 부른 토지측량사라고 말하고,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갖은 애를 씁니다. 이 이야기에선 은근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주인공 K는 성을 둘러싼 마을에 머무르기 시작한지 며칠 만에 다양한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만나고, 약혼에 파혼까지 경험합니다.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역시 대답하기 참 힘듭니다. 어쩌면, 정말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K는 '성'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기는 커녕 점점 더 튕겨져 나오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바르나바스가 하는 일이 과연 성을 위한 일인지 묻게 되죠. 그 애가 사무처로 가는 건 분명한데, 사무처가 정말 성일까요? 그리고 사무처가 성에 속해 있다 해도, 바르나바스가 출입해도 되는 곳이 진짜 사무처일까요? 그 애는 사무처에 들어가지만, 그것은 전체 사무처의 일부일 뿐이에요. 거기엔 목책이 있고, 또 그 뒤에는 다른 사무처가 있어요. 그 애가 계속 나아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애가 자기 상관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그 애에게 심부름을 시켜 내보내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지요. 더구나 그곳에선 누구든 내내 감시당하고 있다고, 적어도 그렇게들 믿고 있어요. …..(중략)….. 그 목책을 어떤 특정한 경계선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돼요. 그 점을 바르나바스도 나에게 몇 번이고 일깨워 주었죠. 목책은 그 애가 들어가는 사무처들 안에도 있어요. 그러니 그 애가 통과하는 목책들도 있다는 건데, 그것은 그 애가 아직 넘어 본 일이 없는 것과 모양이 다르지 않아요. 따라서 바르나바스가 아직 못 넘어 본 목책들 뒤에는 그 애가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무처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사무처들이 있을 거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죠. 다만 예의 그 우울한 때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의심은 자꾸 커져가고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되지요. 바르나바스는 관리들과 이야기를 하고, 심부름할 전갈을 받아요. 하지만 그건 어떤 관리들이고, 어떤 전갈들일까요?"

나중에는 읽는 사람도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성이라는 게 실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그러나 부재한다고 하기에는, 마을사람들에게나 K에게나 이 '성'이 너무나도 강력한 족쇄이고, 규율이고, 핵심이며, 인생과 관계를 지배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래도 그건 성을 위한 일이에요. 어쨌든 성을 위한 봉사 같은 거죠. 적어도 그렇게 믿어야 해요."

도대체 '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좀더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펴든 사람이 마침 느끼고 있던 어떤 거대한 부조리가 있다면. 영혼을 짓누르는 어떤 모순 또는 문제에 허덕이다가 문득 이 이야기를 만난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그가 느끼고 있는 고통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이 안고 있는 그것이 '성'이 자아내는 모든 부조리와 놀랄 만큼 겹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 앞에서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헛발질을 반복하는 K와 마을사람들에 자기 자신이 겹쳐 보이는 오싹한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바르나바스는 사무처에 가서 하인들이나 그런 부류와 어울리다가 멀찌감치서 드문드문 관리들을 보기도 하고, 제법 중요한 서신이나 심지어 구두로 전해야 하는 통지를 맡기도 하는데, 정말 대단한 일이죠. 어린 나이에 벌써 그만큼이나 출세한 것을 우리는 대견하게 생각해요." K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 제복도 가지고 있지?" K가 물었다. "그 웃옷 말인가요?" 올가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건 그 애가 아직 심부름꾼이 되기 전에 아말리아가 만들어준 거예요. 하지만 아픈 곳을 건드리시는군요. 그 애는 이미 진작에 제복이 아니라 –성에는 제복이 없거든요- 관의 정식 정장 한 벌을 받아야 했어요. 확약도 받았지만 성에서는 그런 일을 매우 더디게 처리해요. 그런데 문제는 이 더디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점이에요. 그건 일이 관의 사무적인 절차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절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따라서 이를테면 바르나바스를 여전히 시험해 보겠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절차가 이미 끝났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확약이 취소되어 바르나바스가 옷을 결코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뜻할 수도 있고요."

'성'은 '종교'일 수도 있고, 그저 '이 놈의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성'은 끈질기게도 사라지지 않는 '구습'이나 '악습', '체제' 또는 '관료제'일 수도 있습니다. (보험공단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기도 했던 젊은 카프카의 업무와 조직 경험이 '성'에 대한 묘사에서 빛을 발합니다.) 어쩌면 '성'은 벗어날 수 없는 혈연, 가족, 또는 정체성의 굴레일 지도 모릅니다.
'성'만 음산하게 드리운 그림자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하면 뭔가 명쾌하지 않고 의문투성이입니다. 주인공 K부터 묘하게 투명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K는 왜 어느 날 갑자기 성을 찾아와서 이토록 성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가 정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백작이 초빙한 토지측량사'라는 자기소개도 어딘가 미심쩍게 들리게 만드는 대목이 불쑥 나오지만, 이야기는 아무 설명 없이 그 대목을 쓱 지나쳐 버립니다. '성'에 들어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K의 모습이 나 자신에 겹칠 때마다 K가 안타까워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기도 하지만, 정작 K는 책을 읽어갈 수록 어딘가 비정하고 이해타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인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마을사람들도 사실 대부분 K와 비슷한 인상을 줍니다. '성'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여성 인물인 K의 (며칠 간만) 약혼녀 프리다, 관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묵는 여관 주인, 어딘가 꼬여있는 역할과 신분이 햄릿의 두 시종 로젠크랜츠와 길덴스턴 듀오를 연상시키는 K의 두 조수 아르투어와 예레미야스…. 이들을 비롯한 많은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성에 눌려 살아가느라 발버둥치는 불쌍한 민초들이지만, 어떻게 보면 스스로 탐욕과 계산 뿐인 징그러운 인물들입니다. '성'은 나를 내리누르는 것들을 이해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을 샅샅이 헤짚어오는 손길 같기도 한 책입니다.
"그렇게 그는 다시 걸어 나아갔지만 길이 아주 멀었다. 이 마을의 중심 도로인 그 길은 성이 있는 산으로 뻗어 있지 않았다. 산에 가까이 다가가긴 했지만 길은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옆으로 휘었으며, 성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K는 걷는 내내 이 길이 결국엔 성으로 접어들고야 말 거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으며, 그 기대 때문에 계속 걸었다. 한편 그가 그 길을 단념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은 피로 때문임이 분명했다."

저는 10대 후반에 이 책을 처음 만났습니다. '책'이라는 물건에 역겨움을 느낄 때였습니다. 종종 '문자중독증' 같은 걸 보이는 꼬마들이 있습니다. 뭐든지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꼬마들 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성장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그때까지 자신이 씹어 삼켰던 모든 문자들에 갑자기 체하는 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책, 이라는 물건이 쓸어 담아다 주는 문명의 세계를 마구잡이로 아무거나 빨아들이기만 하다가, 머리가 좀 굵기 시작하면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책의 세계, 문명의 세계라는 게 사실은 나 같은 존재는 배제하거나 거부함으로써 형성돼 온 것이 아닌가. 그런 깨달음인지 착각인지 별안간 강타해 올 때 선뜻 도움을 청할 대상이 없습니다. 문자중독적인 꼬마들이 대개 그렇듯이 저도 어려서부터 독서를 체계적으로 했던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아주 단순하게는 (이런 표현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제3세계 여자아이가 갑자기 맞닥뜨릴 법한 소외에 고립되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 시기를 벗어나 다시 책이라는 물건에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작가가 카프카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변신'을 접하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후에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과 편지들까지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책장이 찢어지도록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었던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제 사춘기였던 것 같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어디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았던 카프카의 문학이 지난 100년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 제게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커다란 안심이 되어주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카프카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것 같은데- 저 역시 K가 나의 '타아(他我)' 같다고 느끼며 남몰래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해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얻을 수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들과 함께 스스로의 마음을 조금씩 정리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멋진 작가들, 멋진 책들을 여럿 접해왔지만, 그래서 제 의리는 역시 카프카를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위의 성은 이상하게도 벌써 어둑어둑했다. K는 오늘 중으로 도달하고 싶었지만 성은 다시 멀어져 갔다. 당분간의 작별을 위해 무슨 신호라도 해야 한다는 듯 그곳에서 밝고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왔다. 적어도 한순간만이나마 마음을 흔들어 놓은 그 종소리는 마치 아련히 갈망하던 것을 실현하겠다고 위협하는 듯도 했다. 그 울림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커다란 종소리는 곧 울림을 멈추고서 약하고 단조로운 작은 종소리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종소리는 위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을에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기 위해 '성'을 오랜만에 꺼내 들었습니다. 다시 읽으니 느낌이 달라진 부분들도 있지만, 그 변화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래, 카프카가 내게 참 제때 나타나 줬었지'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이미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이 책에 저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많이 들어보았는데 이 참에 한 번 읽어볼까 하시는 분이 지금 혹 있다면 (기쁘지만) 한 가지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미완성입니다. 카프카는 '성'을 집필하다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성'은 별안간 시작되는 것처럼, 별안간 끝나버립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다다르셨을 때는 이미 ('열린책들' 버전으로) 500페이지도 훌쩍 넘게 주인공 K와 함께 '성'의 바깥을 빙빙 맴도신 다음일 것이고, 기분이 정말 찝찝해져 있긴 하지만 이상하게 후회는 되지 않는 마음의 여정을 시작하신 다음일 것이라고 괜히 호언을 한 번 해봅니다. 어쩌면 그 미완성의 마지막 페이지야말로 가장 '성'다운 마무리입니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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