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은 "고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께도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변 하사 사망 이후 총장의 첫 입장 표명이었습니다. 참모총장의 공식 조의는 육군이 1심 판결을 수용하는 제스처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 총장은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항소를 할지 말지 결정되지 않은 것입니다.
변 하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각하면 항소 따위는 시원하게 포기해도 그만이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항소 포기로 1심 판결이 확정되면 트랜스젠더 입대의 길이 열리고, 관련 법령도 개정돼야 합니다. 트랜스젠더의 입대는 군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트랜스젠더 군인과 함께 씻고 자야 할 여군들의 의견은 어떤지, 충돌하는 법령은 없는지 깊이 따져서 결정할 일입니다. 대단히 민감한 정치적, 종교적 이슈입니다. 무작정 항소 포기하라고 군을 재촉하기에 앞서 사회적 토론과 공론화, 그리고 의사결정이 우선으로 보입니다.
항소 포기의 압력들
이에 남영신 총장은 "군의 특수성과 국민적 공감대, 성소수자 인권 문제, 관련 법령을 가지고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항소 포기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벌어졌습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회' 등 시민들 모임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공동대책위는 "법원에서 명확한 판결이 나왔고, 국가인권위와 유엔 특별보고관까지 강제 전역이 차별로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소송 진행은 변 하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또 다른 가해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의 인권위, 여당, 시민단체, 유엔이 한 목소리로 항소 포기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형국입니다.
정치 속으로 등 떠밀리는 軍
성소수자의 인권은 당연히 보호해야 하겠지만 덜컥 항소 포기하고 병역법을 개정했다가는 반대편의 종교적, 정치적 파상공세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군이 어떤 선택을 해도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는 구조입니다. 항소 포기 여부, 즉 트랜스젠더의 입대 여부를 군이 결정하라는 것은 정치의 한복판으로 군의 등을 떠미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밤낮없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여군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합니다. 같이 자고 씻어야 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어설프게 밀어붙였다가 여군의 불만, 여군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남영신 총장은 "국방부와 협의 후 구체적 방향을 설정하겠다"고 했는데, 트랜스젠더 입대는 육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군, 공군, 해병대가 모두 고민해야 하고, 국방부를 넘어 정부 차원에서 협의해 답을 내놓아야 할 높은 수준의 과제입니다. 정치 중립의 군이 알아서 빨리 결정하라고 압박하면 안 됩니다.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서 숙의한 뒤 방향이 정해지면 군은 뒤를 따라가는 것이 순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