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정세의 '운전자'를 자임했지만 실질적 성과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어 온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를 6개월 남겨둔 시점에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9월22일(미국 현지 21일) UN연설을 통해 북한과 미국에 다시한번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이다. '다시 한번' 이라고 말한 것은 종전선언 제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다.
그날 이후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의 고위 외교당국자들은 전방위로 미국 설득에 나섰다. 북한은 여러 건의 -때로는 서로 상충되어 보이기도 하는- 담화를 내놓고 미사일도 쏘며 속내를 드러냈다.
![[뉴스쉽] 북한의 2021년 미사일 발사 일지](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56.gif)
[그게 뭐길래] 종전선언, 무엇을 하자는 것?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정전협정) 서명으로 일단락됐다. 정전(停戰)협정에는 유엔군 총사령관 미 육군대장 마크 웨인 클라크, 북한군(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팽덕회) 세 사람이 서명했다.

이런 애매한 상태가 이제는 끝났음을 '선언'하자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올해 9월22일 UN연설)이다. 골자는 이렇다.
- * 누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서
- * 무엇을: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자.
- * 언제 어디서 어떻게: 명시하지 않음.(추후 협의하여 정할 문제이기 때문에)
- * 왜: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종전선언의 효과] 정전체제는 어떻게 되나?
'정전'(전쟁이 멈춘 상태)이 '종전(전쟁이 끝났음)'으로 바뀌게 되면 이러한 체제는 어떻게 바뀌는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유엔군사령부는 존립 근거를 잃게 될 수 있다.
주한미군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한미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주한미군은 정전협정이 아니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서 주둔하는 것이므로 종전선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났는데 왜 안 나가느냐" 는 나라 안팎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가 이런 우려를 가장 잘 대변한다. 전쟁의 근본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 제안은 위험하고 마법에 취해 있는 듯한 사고방식이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공고히 할 것이고, 중국이 적극 개입해 북한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법적 구속력은] 정치적 선언일 뿐 취소하면 된다?
![[뉴스쉽] 문재인 대통령 2018 폭스뉴스 인터뷰, 종전선언은 구속력 없는 정치적 선언, 취소하면 된다](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65_1280.jpg)
![[뉴스쉽] 김여정, 그런 종전선언 아이고 의미 없다](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67_1280.jpg)
[어떻게 여기까지] 종전선언 제안, 이번이 처음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내용적으로나 인적 네트워크 면으로 보나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고 있는데, 종전선언 구상도 예외가 아니다. 2007년 10월4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문에서,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은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현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 2007.10.4 남북정상회담 합의서 중에서

종전선언 구상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열린 유화국면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에 종전선언을 하자고 명시했다.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 2018. 4.27 판문점선언 3조3항
[왜 꼬였을까?] 북핵 해결 없는 종전선언 거부한 미국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북한은 미국에 미군 유해를 송환해 주면서 종전선언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북한이 '핵물질 신고목록'을 먼저 제출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핵 신고는 핵 사찰의 전단계다.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한미 양국 정상은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구상에서, 종전선언은 터널의 입구에 해당했다. 일단 상징적으로 '전쟁 끝 평화 시작'을 분위기 좋게 선언해 놓고, 협상이 힘든 문제는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는 셈법이었다. 그러나 미국내에서는 종전선언을 일단 해 놓고 나면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해야 하는 반면 북한이 추가적으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제재를 가하기는 어려워지므로, 비록 구속력이 강하지 않은 선언이라 할지라도 '비핵화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섣불리 종전선언을 할 경우,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문제 없이 협상의 지형만 북한에 유리해진다는 것이었다.
![[뉴스쉽] 한미정상 동상이몽(2018)- 문재인 '종전선언 먼저' 트럼프 '비핵화 먼저'](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73_1280.jpg)
[북한의 요구 변화] 종전선언 → 제재 해제 → 적대시 정책 철회
2019년 2월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김정은이 제재 해제를 얻어내기 위해 벼르고 벼른 승부수였다. 당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댓가로 안보리 제재 해제를 트럼프에게서 받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게 가능하다는 얘기를 북한의 외교 당국자, 그리고 중재역을 자임하던 한국정부 인사들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에 나타난 트럼프는 김정은의 예상을 벗어난 요구를 했다. 이미 낡고 알려질만큼 알려진 영변시설 외에 다른 핵시설까지 내놓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김정은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은 이후 미국과 한국에 대한 관계를 본격적으로 경색시키며 '나 화났다'는 티를 낸다.
![[뉴스쉽] 김정은의 2019 요구 변화 : 적대시 정책 철회하라 (크렘린 북러정상회담 사진 활용)](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74.gif)
2020년 이후부터는 한국을 상대로 본격적인 '통신선 정치'에 나선다.
끊었다 이었다 제멋대로…'통신망 정치'는 주한미군/ 연합훈련 압박 수단?
그러더니 올해 7월27일(정전협정 기념일)에 느닷없이 통신선 복원을 통보해 왔다. 단절 13개월 만이었다. 그간의 일방적인 관계 악화 조치에 대한 유감표명 같은 건 없었다.
닷새만인 8월1일, 김여정은 담화를 내고, 그렇지않아도 축소된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던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8월5일,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4명이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전시작전권 회수 일정을 고려해서라도 이미 취소할 수 없는 훈련이었고,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
- 김여정 8월10일 담화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 제안을 띄운 9월하순 UN 연설은 이런 맥락 위에서 나왔다.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 이례적인 '연거푸' 성명
"조선반도와 주변의 지상과 해상,공중과 수중에 전개되여있거나 기동하고 있는 미군 무력과 방대한 최신 전쟁자산들 그리고 해마다 벌어지는 각종 명목의 전쟁연습들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날이 갈수록 더욱 악랄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부상 9월24일 담화 중에서
"지금과 같이 우리 국가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과 편견, 적대시적인 정책과 적대적인 언동이 지속되고있는 속에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종전을 선언한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중략) 서로 애써 웃음이나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이나 찍는 그런것이 누구에게는 간절할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가 없고, 설사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여정, 9월24일 담화 중에서
그러면서,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선결조건'을 내건다.
![[뉴스쉽] 김여정이 내건 '선결 조건'](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78_1280.jpg)
북한이 말하는 '이중 기준'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력 강화를 문제삼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게 '이중기준 철폐하라'는 요구의 속뜻이다.
올해 9월15일에는 이 문제와 관련한 공방이 남북간에 있었다.
이날 북한은 평안남도 양덕의 열차 발사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비행거리는 800㎞, 고도는 60여㎞로, 안보리 결의 위반이었다.



김정은 본인 등장…'중대과제' 제시
북한은 8월10일 단절 이후 55일만인 10월4일, 다시 우리측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통신연락선 재개의 의미를 깊이 새기라'면서 남측에 제기한 '중대과제'는 3가지로 요약된다.
![[뉴스쉽] 김정은이 제시한 중대과제 3가지.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81_1280.jpg)
[그게 뭐길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란?
김정은 위원장도 10월11일 국방발전전람회(자위-2021) 기념연설에서 "미국이 최근 들어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빈번히 발신하고 있지만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는 행동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노동신문 보도)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는 뭘 하라는 걸까? 이는 백두혈통 김 남매보다 좀 더 실무적인 얘기를 하는 외교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한 9.22 UN연설에 상응하는 북한의 연설은 김성 UN대사가 맡았다. 김성 대사는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 걸음을 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쉽] 김성 북한 UN주재 대사- 북한이 말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82_1280.jpg)
"조선반도와 주변의 지상과 해상,공중과 수중에 전개되여 있거나 기동하고 있는 미군 무력과 방대한 최신 전쟁자산들 그리고 해마다 벌어지는 각종 명목의 전쟁 연습들은 미국의 대 조선 적대시 정책이 날이 갈수록 더욱 악랄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주한미군, 그리고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는 일본이나 괌 등의 미군 전략자산 모두가 '대북 적대시 정책'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여러 담화나 연설에서 이런 입장이 거듭 표출된다는 것은 이것이 북한 수뇌부의 정리된 인식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김여정도 지난 8월 한미연합훈련 취소요구 당시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뉴스쉽] 김여정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 (8월10일 담화, 한미연합훈련 취소 요구하며)](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84_1280.jpg)
[왓 김정은 원트]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뉴스쉽] 한반도 주변 미군 전략자산 배치](http://img.sbs.co.kr/newimg/news/20211015/201600786.gif)
다시 말하면,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수 없는 전략적 상태'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가 되면 북한은 굳이 힘들여 무력남침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의지를 남쪽에 관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무기를 전략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남조선은 우리 무장력이 상대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김정은의 지난 10월11일 발언 (자위-2021 무기전시회)은 어느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쉽게 달성될 것이라고는 북한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전쟁이 정전상태에 들어간 1953년 7월 이후, 한 순간도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때로는 유화 제스처를 통해서, 때로는 무력도발을 통해서 혼란을 조장해 왔지만, 어떻게든 한미동맹을 갈라놓고 한반도를 온전히 제뜻대로 요리하고자 하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바람이다.


나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인지라, 나라간의 복잡한 일도 결국 사람간의 일을 닮게 마련이다. 개인간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아쉬운 쪽, 마음 급한 쪽, 매달리는 쪽이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대선이 이제 넉달 반 남았다. 한반도 정세에 미지의 실험을 하기에 과연 좋은 시기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