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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나이 든 소녀, 소년 같은 감독을 만나다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니스트 (radahh@gmail.com)

나이 든 소녀, 소년 같은 감독을 만나다!

이번에는 '어쩌다 핀란드'가 아닌 '어쩌다 부산'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가끔 생긴다. 90년대 초, 폭파할 것 같던 내 청춘을 그대로 옮겨 담은 듯했던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레오스 카락스 감독을 부산에서 10m 정도 앞에서 볼 기회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처럼 독특하고 솔직했다. 처음에 인사말을 해달라는 주최 측의 요청에 뭔가 좀 더 긴 인사말 할 줄 알았는데. 간단히 'Hi'로 끝났다. 어떤 질문에는 "I have no idea(전혀 모르겠습니다)"라며 '대답을 위한 대답'을 하지 않았고 마지막에도 포토타임 없이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아네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그가 부산 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는 <아네트>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은 그의 최초의 뮤지컬이다. 그가 뮤지컬을 만들었다는 것에 처음에는 고개를 조금 갸우뚱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영화를 사랑하기 훨씬 이전인 어릴 때부터 음악을 배웠고 사랑했지만, 음악에는 큰 재능을 가지지 못해 ("음악이 나를 버렸다Music rejected me"고 표현) 영화로 전향했다고 한다.

지금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영화감독보다는 뮤지션이라며 음악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대부분의 영화에 출연해서 그의 페르소나처럼 여겨지는 배우 드니라방과 관련된 질문에는 너무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I don't know him (저는 그를 모릅니다)"

집이 근처여서 거리에서 만나면 "Saying Hello"라고 인사는 하는 사이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배역을 정할 때, 배우를 만나지 않고 대본부터 보내는 경우는 없다며 배우가 흥미로운 사람이어야 자신은 같이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은 '배우'가 아닌 '사람'을 먼저 본다고 말했다. 유명한 배우 중에서도 "boring people(흥미롭지 못한 사람)"이 많다며.

16세 때부터 무성 영화를 많이 보며 영화에 빠지기 시작해 25세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영화를 봤던 그는 요즘에는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그래서 사실상 배우들도 잘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자신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며 어릴 때 봤던 영화가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고 했다. 대신 요즘은 독서를 상당히 많이 하고 음악 그리고 개와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이 많지는 않으며, 혹시 나쁜 영화를 보게 되면 인생을 허비하게 될 것 같은 것도 영화를 안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영화 만드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모든 창작 작업이 다 그렇듯 혼돈(chaos)에서 시작하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 (배우나 스태프) 2~3명이 함께 모이게 되면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없으니") 그 이후에는 예산과 시간이 정해진 대로 정확하게' 영화를 만들어 간다. 돈이 모자라면 상상력은 사실 더 자극된다고도 했다. 자신은 운이 좋아 초기에 맘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그만 체구에 인터뷰 내내 단 한 번도 웃지 않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는 누군가가 그의 손등에 있는 문신이 대해 묻자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 '땡땡의 모험'에 나오는 그림이라며 그 밑에 자신의 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새겨 놓았다고 했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 손등에 새겨진 문신. 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새겨 놓았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인터뷰 내내 유난히 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가 20대 초반 처음 만든 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는 자살을 생각하는 여자친구를 둔 소년이 나온다. 실제로 10년 전 그의 여자친구도 자살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딸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그의 신작 <아네트>는 나쁜 아빠에 대한 이야기이며 스스로도 자신을 "나쁜 아빠"로 이야기했지만, 그가 얼마나 좋은 아빠이고 싶어하는지...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나 다 느꼈을 것 같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누구보다도 일찍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지만 60세가 될 때까지 단 6개의 작품만 세상에 내놓은 그는 다작 아닌 과작(寡作)의 감독이 됐다.

순수해서 다른, 혹은 다르기를 선택한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의 1시간 동안 대화의 시간을 마치고 나오는 길은 마치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배우보다 사람이 먼저"라던 그의 말처럼 영화보다 사람이 먼저일 수 있다. 

▶ 레오스 카락스 감독 PIFF 인터뷰 영상 보러가기

인잇 이보영 네임카드
#인-잇 #인잇 #어쩌다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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