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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목숨 건 게임에 뛰어든 알리…현실이었다면 달랐을까

※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언급하며 최소한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보셨어요?"

저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이 질문을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오징어 게임 신드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몰입감 높은 전개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무척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선 현실 고증 100%에 수렴하는 이주 노동자, 알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징어게임 알리
"코리안 드림을 꿈꿨지만 꿈을 이루기는커녕 몸과 마음을 혹사당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산재를 당했지만 사장이 병원비는커녕 집으로 돌아갈 여비도 마련해주지 않은 채 그를 홀대하자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만다." - '오징어 게임' 알리 배역 소개 中

알리에게 오징어 게임 밖 세상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몇 개를 잃었지만 밀린 월급은커녕 치료비도 받지 못했습니다. 컵라면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알리는 게임에 참여하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달랐을까요? 현실 속 알리였다면 목숨을 건 게임에 뛰어드는 절박한 상황을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요?

오징어 게임 (사진=넷플릭스 제공, 연합뉴스)

① 허름한 컨테이너에서 어린 아내, 핏덩이 같은 아이와 함께 산다 : "과장 아님"

알리는 다닥다닥 붙은 컨테이너 한 동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공장에서 제공한 곳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드라마 속 알리의 숙소는 얼핏 봐도 누추하고 열악합니다. 그러나 현실도 별반 다를 게 없고, 어쩌면 더 심각합니다. 상당수의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정해주거나 제공하는 숙소에서 생활하는데 안전과 위생 등 기본적인 생활환경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2018년 '이주와 인권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에어컨(42.6%), 실내 화장실(39.0%), 화재대비 시설(34.9%), 잠금장치(19.9%)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숙소는 소음과 분진, 냄새가 심하고(37.9%) 관리자나 사장이 자주 드나들어 불편하다(20.7%)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한파 속 비닐하우스서 숨진 이주노동자

불과 몇 달 전에도 국내 이주 노동자 숙소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31살 캄보디아 이주 여성 노동자 누엔 속헹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겁니다. 속헹 씨가 머물었던 숙소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화장실은 숙소 밖 길 옆에 아무렇게나 놓인 고무통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인권 단체와 종교계는 "힘든 노동 조건,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 숙소라는 열악한 기숙사 환경, 제대로 진료나 치료를 받지 못했을 상황에서 영하 20도의 한파가 영향을 미친 산재 사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②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며 손가락 몇 개를 잃었으나 치료를 못 받았다 : "과장 아님"

드라마 속 알리처럼, 현실에서 이주 노동자가 산업 재해를 당했다면 어땠을까. 치료도 못 받고 일터로 복귀하는 것조차 요원한 드라마 속 설정은 현실에서도 과장이 아닙니다. 일단 이주 노동자 산업 재해는 내국인 노동자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납니다. 2018년부터 3년 동안 전체 산업 재해자 중 6.9%가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지난해 국내 전체 임금 근로자 중 외국인의 비중이 3.9% 임을 고려한다면, 실제 이주 노동자의 산업 재해 비율은 내국인보다 곱절 가량 높은 셈입니다. (자료 제공 : 윤미향 의원실) 특히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초기일수록 사고가 잦았으며, 안전 장구 미지급, 기계의 결함, 안전 교육 미실시 등 사업장의 안전 관리 소홀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경남 창원공단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33살 카자흐스탄 이주 노동자가 780kg짜리 기계에 맞아 숨졌다(2021.3.11 보도)"

"경기 화성시의 한 플라스틱 제조 공장에서 18시간 연속 일하던 이주 노동자가 압축기에 머리가 끼여 숨졌다(2021.7.28 보도)"

위험한 노동 환경에 처한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노동자의 책임 없는 사유'임을 직접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막상 산업 재해를 당했더라도 보험 처리나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주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의 통역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아서 산재 보험 처리 절차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간병의 문제, 통원치료 시 주거와 생활의 문제, 재활 치료와 장애로 인한 생계 곤란에 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③ 월급도 수개월 밀린 상황, 사업주에게 항의를 해도 소용없었다 : "과장 아님"

알리처럼 일한 만큼 임금을 못 받는 일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근로기준법」은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 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인 최저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초과근로 수당도 빈번히 누락당합니다. 앞서 언급한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처럼 취약한 곳에서 머물면서 월급 중 50만 원을 숙소비로 공제해 빼앗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심지어 이주 노동자가 수천만 원 대 임금 체불을 고발했더니, 역으로 사용자가 절도죄로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이주 노동자의 임금 체불 피해 사례는 더 늘었습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금 체불을 신고한 국내 외국인 노동자 수(미등록 체류자 포함)는 2017년 2만 3885명에서 2020년 3만 1998명으로 3년 만에 약 33.9% 늘었습니다. 체불 금액은 2017년 783억 원에서 2020년 1287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신고 방법을 모르거나, 문제 제기 자체를 꺼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액수까지 포함하면 실제 임금 체불 규모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진=넷플릭스 제공, 연합뉴스)

2021년에도 여전히 "사장님 나빠요"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어 "사장님 나빠요"가 등장한 게 벌써 17년 전입니다. 십 수년이 지났지만 이주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은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한국 사회 이주민은 2007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이래 매년 증가해 2019년 10월 기준 248만 1천 명으로 늘어, 대구광역시나 전라북도 인구를 웃도는 규모입니다. 특히 이주 노동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 현장에서 산업을 유지하는 공동체 필수 구성원이 됐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달고나'까지 드라마 속 모든 요소가 재조명을 받는 가운데, 알리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이주 노동자가 처한 현실도 다시 한번 톺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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