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 게임' 보셨어요?"
저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이 질문을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오징어 게임 신드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몰입감 높은 전개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무척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선 현실 고증 100%에 수렴하는 이주 노동자, 알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지만 꿈을 이루기는커녕 몸과 마음을 혹사당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산재를 당했지만 사장이 병원비는커녕 집으로 돌아갈 여비도 마련해주지 않은 채 그를 홀대하자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만다." - '오징어 게임' 알리 배역 소개 中
알리에게 오징어 게임 밖 세상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몇 개를 잃었지만 밀린 월급은커녕 치료비도 받지 못했습니다. 컵라면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알리는 게임에 참여하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달랐을까요? 현실 속 알리였다면 목숨을 건 게임에 뛰어드는 절박한 상황을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요?
① 허름한 컨테이너에서 어린 아내, 핏덩이 같은 아이와 함께 산다 : "과장 아님"
불과 몇 달 전에도 국내 이주 노동자 숙소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31살 캄보디아 이주 여성 노동자 누엔 속헹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겁니다. 속헹 씨가 머물었던 숙소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화장실은 숙소 밖 길 옆에 아무렇게나 놓인 고무통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인권 단체와 종교계는 "힘든 노동 조건,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 숙소라는 열악한 기숙사 환경, 제대로 진료나 치료를 받지 못했을 상황에서 영하 20도의 한파가 영향을 미친 산재 사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②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며 손가락 몇 개를 잃었으나 치료를 못 받았다 : "과장 아님"
"경남 창원공단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33살 카자흐스탄 이주 노동자가 780kg짜리 기계에 맞아 숨졌다(2021.3.11 보도)"
"경기 화성시의 한 플라스틱 제조 공장에서 18시간 연속 일하던 이주 노동자가 압축기에 머리가 끼여 숨졌다(2021.7.28 보도)"
위험한 노동 환경에 처한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노동자의 책임 없는 사유'임을 직접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막상 산업 재해를 당했더라도 보험 처리나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렵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주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의 통역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아서 산재 보험 처리 절차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간병의 문제, 통원치료 시 주거와 생활의 문제, 재활 치료와 장애로 인한 생계 곤란에 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③ 월급도 수개월 밀린 상황, 사업주에게 항의를 해도 소용없었다 : "과장 아님"
코로나 19 이후, 이주 노동자의 임금 체불 피해 사례는 더 늘었습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금 체불을 신고한 국내 외국인 노동자 수(미등록 체류자 포함)는 2017년 2만 3885명에서 2020년 3만 1998명으로 3년 만에 약 33.9% 늘었습니다. 체불 금액은 2017년 783억 원에서 2020년 1287억 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주 노동자가 신고 방법을 모르거나, 문제 제기 자체를 꺼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액수까지 포함하면 실제 임금 체불 규모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1년에도 여전히 "사장님 나빠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