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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망명국에서 인술 펼치는 '아프간 난민' 여의사

[취재파일] 망명국에서 인술 펼치는 '아프간 난민' 여의사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여성 의사가 올해 UN난민기구의 난센 난민상 아시아지역 수상자로 지난 달 선정됐습니다. 아프간 부모님의 망명으로 29년 전 파키스탄 아톡 지역 난민촌에서 나고 자란 살리마 레흐만 (Saleema Rehman) 씨입니다. UN난민기구는 레흐만 씨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난민은 물론 파키스탄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도 헌신해왔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레흐만 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중증 합병증을 치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의료 환경을 지켜보며 의사의 꿈을 꾸게 됐습니다. 그녀는 '난민 소녀가 공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맹목적 비난을 받는 어려운 현실을 극복한 끝에 매년 단 한 명의 아프간 난민이 입학할 수 있는 파키스탄 펀자브 주의 한 의학대학에 합격한 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됐습니다. 파키스탄 아톡 난민촌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첫 여성이자, 아프간 투르크멘계 출신의 첫 여의사가 됐습니다.

이후 그녀는 최근까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난민들과 파키스탄인 환자를 돕는 데 주력했습니다. 펀자브 주의 라왈핀디에 있는 공립 병원에서 하루에 5명 이상의 아기 출산을 돕고, 매주 파키스탄 여성 수 백 명을 진료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6월, 자신이 자란 지역인 아톡에 개인병원을 열고 난민과 파키스탄 주민 모두에게 인술을 펼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다녔던 난민 학교를 수시로 찾아가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레흐만 씨는 최근 SBS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이 의사가 된 이후 난민촌 이웃들의 교육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점이 매우 뜻깊다고 말했습니다. 레흐만 씨는 "한때 저를 비판했던 이웃 어른들도 제가 그들의 어머니들과 딸들, 자매들을 돕는 것을 보며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며 "이제 그들은 딸들을 학교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고, 심지어 '레흐만 의사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에겐 매우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태어난 제가 의사가 되어 난민은 물론 파키스탄 지역 주민들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난민들이 난민수용국에서 기회를 얻는다면, 그 국가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며 "더 많은 난민들이 교육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탈레반에 대한 질문에는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이를 통해 아프간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다음은 레흐만 씨와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난센 난민상 수상 영광…많은 소녀들 영감 얻길 바라"

Q. 올해 유엔난민기구 난센 난민상 아시아 지역 수상자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A. 난센 난민상 아시아 지역 수상자가 된 것은 저에게는 물론이고, 제 가족, 그리고 제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 수상을 통해 저는 더욱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많은 소녀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현재 파키스탄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 중인데,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파키스탄의 지역사회와 난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진료가 있는지 말씀 부탁 드립니다.
A. 저는 파키스탄의 가장 큰 공공 병원 중 한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 실습을 하기도 했던 이 병원은 지난해 코로나19 대응 병원으로 지정됐는데요. 파키스탄의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심각했을 때, 저는 그 병원, 즉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서 난민 뿐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에게도 도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병원에서 출산을 돕고, 산모를 살리고, 특히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산모들의 생명도 구했습니다. 저는 당시 저의 일이, 저에게 망명을 허용한 파키스탄을 돕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난민 여성 교육에 대한 편견"

 Q. 난민 여성으로서 의사가 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A. 난민 수용 국가에서 난민으로 살면서, 난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재정적, 사회적, 경제적 분야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저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소녀로 산다는 것이었는데, 지역사회에서 소녀들에게 교육을 받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파키스탄 아톡 난민촌에 사는) 소녀들은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며, 스스로 어떠한 선택도 내릴 수 없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를 위한 선택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 자신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고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난민 소녀가 교육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공부에 전념한 레흐만

심지어 이웃들은 저와 제 아버지를 (제가 공부한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제 아버지에게 딸을 교육 시키는 이유, 특히 고등교육을 시키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실질적으로 지지해준 분은 저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아버지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저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제 곁을 지켜주시고 응원해주시며, 공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의사가 되기까지 겪었던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여성의 교육을 전혀 중시하지 않는 지역 사회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수시로 난민 초등학교 찾아 소녀 교육 독려"

Q. 의사로서의 삶 뿐만 아니라 난민촌 소녀들을 위해서도 많은 일들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A. 저는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또 그들에게 상담을 해줍니다. 또한 제가 자란 지역사회에서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소녀들의 교육을 독려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역사회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나아가 의사가 된 첫 여성이었다 보니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뿐 아니라, 소녀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 교육을 받았던 난민 학교에 수시로 방문해 동기를 부여해주는 연설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학생들이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그들의 삶의 목표를 세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여성들의 교육을 장려할 뿐 아니라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게 제 목표이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김혜영 취파 살리마 레흐만

물론, 의사로 생활하는 게 매우 바쁘고 쉽지 않지만, 사람들이 저를 찾고 조언을 구할 때도 저는 최대한 시간을 냅니다. 왜냐하면 저는 과거에 그 어떤 조언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조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날 비난했던 이웃들도 이젠 딸들에게 교육 받게 해"

Q. 당신에게 조언이나 연설을 들은 소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소녀들은 저를 보면서 영감을 얻고, 기뻐했습니다. 스스로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저에게 "저는 나중에 커서 의사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래요"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것은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의미입니다.

김혜영 취파 살리마 레흐만

또, 한때 저를 비판했던 이웃 어른들도 인생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그 이웃 어른들의 어머니들과 딸들, 자매들을 돕는 하나의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그 분들의 마음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제 그들은 딸들을 학교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합니다. 심지어 저는 그 분들이 "나중에 커서 살리마 의사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 라고 딸들에게 말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뜻 깊은 순간이었습니다.
 

탈레반 여성 인권 탄압에 "여성도 사회 전면에 나서야"

Q. 새로 들어선 탈레반 과도정부는 당초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공언과 달리 실제로는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조처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A. 여성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교육은 기본적인 부분이기에, 이는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이를 통해 아프간에 평화와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된 저는, 파키스탄이 더 많은 의사들을 필요로 할 때 앞에 나서서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여성 의사, 여성 선생님 등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여성들을 필요로 합니다. 더 많은 여성들이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아프간 평화·발전을 위해 여성에게 기회를 줘야"

Q. 탈레반의 위협 속에서도 여성 운동가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꿋꿋이 일터와 학교로 가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 저는 모든 분야 여성들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습니다. 사회 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이 없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나라의 평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여성들은 교육을 받고, 의미 있는 사람이 되며,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망명 신청, 인류의 기본적 권리…포용적 태도 필요"

Q. 2010~2020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로 G20 국가 중 18위입니다. 난민에 대한 정서적 벽이 높은데요. 이와 관련해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평화로운 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망명을 신청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지역사회가 포용적인 태도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난민들이 기회를 얻는다면, 그들은 난민 수용 국가에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파키스탄에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난민들은 물론이고 지역사회 주민들도 치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사례를 통해 난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난민 교육 기회, 지역사회에도 도움…국제기구 난민 장학금 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A. 저는 다음 세대가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환경과 조건에서 사는 것을 보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인정하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삶을 변화 시키는 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혜영 취파 살리마 레흐만

그리고 저는 난민들에게 생계를 비롯한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민들은 난민 수용 국가의 평화·발전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난민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민들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자선가와 국제기구들에 난민들을 위한 장학금을 줄 것을 촉구합니다. 이는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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