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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땅 분배받아도 먹고살기 힘든 시대…북한 지역 '토지 사유화'의 고민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땅 분배받아도 먹고살기 힘든 시대…북한 지역 '토지 사유화'의 고민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사유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던 지난 글( ▶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사유화 : 북한 주민들이 개인 재산을 갖게 된다면…)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사유화의 각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유화의 대상을 얘기할 때 크게 토지, 주택, 기업을 거론하는데 오늘은 먼저 토지 사유화에 대한 부분입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땅이란 재산의 거의 전부였고 농민들이 땅에 갖는 애착도 남달랐던 만큼, 토지 사유화 논의의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농민들의 토지 소유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해방 이후 토지 개혁이 '유상몰수 유상분배'(남한)든 '무상몰수 무상분배'(북한)든 자영농 육성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도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애착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땅이 갖는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사회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이제는 내 땅을 갖게 됐다는 것에 연연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앞으로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지 사유화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농사지을 사람이 땅 가져야?

통일 이후 북한 지역 토지 사유화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진행돼왔습니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땅을 소유하게 하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경제적 측면과, 실질적인 경작자에게 소유권을 넘겨줌으로써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대거 이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정치적 측면입니다.

먼저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토지는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온 사람에게 소유권을 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경작자가 계속 경작하는 조건으로 장기 임대 후 싼 가격에 매매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습니다. 토지를 단순 무상분배하면 토지를 분배받은 사람이 바로 토지를 팔고 떠나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작 의사가 있는 사람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측면을 감안한 방안입니다.

다음, 정치적 측면의 토지 사유화는 토지 소유권 분배를 통해 통일 후 발생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대거 남한 이주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측면과 연관됩니다. 경작을 하는 현 거주자에 한해 토지 소유권을 분배받을 기회를 줌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거주지에 그대로 머물도록 유도하자는 것입니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토지 사유화가 혼란스러운 대거 이주를 막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경작을 하는 조건으로 땅을 살 수 있는 매입 우선권을 주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경우 매입 우선권을 박탈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세농 양산되면 대규모 파산 사태 일어날 수도

하지만 이 같은 토지 사유화 방안이 현실적인지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해보입니다. 21세기인 지금은 땅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농사만 열심히 짓는다고 해서 편안히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또 해방 이후처럼 내 땅을 한 번이라도 갖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시대도 아닙니다. 지금은 대규모 영농을 하거나 특화된 작물을 재배하지 않는 한 농사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단순히 경작자에게 토지 소유권을 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영세농들이 대규모 파산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경작자에게 소유권을 넘겨줌으로써 정착을 유도한다는 정치적 측면의 토지 사유화도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을 현 거주지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 북한 지역 안정화와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냐의 문제와 연관됩니다.

북한 토지 / 안정식 취파용

먼저 안정화란 측면에서 보면 북한 주민들을 거주지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의 대거 이동 없이 현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 지역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 주민들을 거주지에 그대로 머물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게 해 북한 경제 개발에 활력이 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통합 초기 북한 지역의 경제 개발은 건설 경기가 주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농촌 지역 인구가 개발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곳으로 이동해 필요한 노동력 공급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철도와 도로, 항만, 공항 등 남북한 교통망 연결을 위한 건설과 주요 도시의 인프라 구축 현장이 주요 대상이 될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북한 지역 내에 머물도록 하는 방안을 찾되 꼭 고향에 머물게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앞선 글( ▶ 연방제는 통일국가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통일 직후에는 남북한 지역을 한시적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필요해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 주민들의 남한 이주가 제한되므로 북한 주민들이 북한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해도 됩니다.
 

기계화 통한 대규모 영농해야 승산 있어

북한의 농업 인구를 개발 현장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은 농민들의 영세화를 막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농업 인구 비율은 2008년 북한 인구 총조사 당시 36.8%(2013년 기준 남한 농업 인구 비율은 5.7%)에 이를 정도로 과다한 상황인데, 이 많은 농민들이 개별적으로 토지를 사유하게 되면 북한 지역에는 수많은 영세농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통일 이후 영세농의 양산은 북한 농민들에게도, 경제의 활력을 찾아야 하는 국가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북한 지역 토지 사유화는 대규모 부지에서 기업형 영농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과다한 농업 인구는 구조조정을 통해 개발 현장으로 이동하게 하고, 농촌 지역에는 기계화를 통한 대규모 영농이 이뤄지게 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에서 토지를 갖게 된 사람들이 자기 땅을 팔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개발 이익을 노린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진출하게 될 경우 세상 물정 모르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될 우려가 있는 만큼, 남한 사람들에 대한 토지 매매는 제한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남한 사람에게 토지를 매매하는 것은 일정 기간 제한하면서 투자 목적의 토지 매매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투자 목적의 토지 매매라 하더라도 통일 이후 북한 지역 땅값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는데 시세 차익을 노린 명목상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만큼, 남한 사람이 토지를 매입할 경우 10∽20년 동안은 다시 팔지 못하게 하고 토지 매각 시 얻게 되는 시세 차익의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해보입니다. 정말로 투자를 할 목적이 아니라면 토지의 시세 차익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게 규제하는 것입니다.
 

국토종합개발 차원에서도 바라봐야

토지 사유화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북한 지역 전체의 국토종합개발이라는 차원에서 토지 사유화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유화가 정착돼 있는 남한에서는 국가적 필요에 의해 어느 지역을 개발하려고 해도 해당 지역의 소유권 문제 때문에 개발이 쉽지 않습니다. 토지에 대한 보상도 보상이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면 이를 무릅쓰고 개발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국가가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필요한 지역에 대한 정책적 개발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자산은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였던 만큼 국가가 필요한 부지는 국유지로 먼저 정해 놓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 토지 사유화를 진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철도나 도로, 댐,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 개발지나 대규모 산업단지, 관광단지, 공원 부지 같은 곳은 국토종합개발 차원에서 미리 국유지로 설정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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