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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국소 마취 제외'…반쪽짜리 수술실 CCTV 법

[인-잇] '국소 마취 제외'…반쪽짜리 수술실 CCTV 법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SBS 뉴스

작성 2021.09.26 11:08 수정 2021.09.27 15: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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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잇] 국소 마취 제외…반쪽짜리 수술실 CCTV 법
변호사님, 저도 2년 전에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허리 통증이 더 심해졌어요. 혹시 병원 상대로 소송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지난 5월 인천의 한 척추병원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비의료진들이 의사 대신 허리 수술을 집도하는 현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폭로된 이후, 나에겐 이런 전화가 자주 걸려 온다. 내가 대리 수술 동영상을 수사기관에 공익 신고하고 언론사에 제보한 제보자의 '비실명 대리인'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수술받은 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행정 직원들이 허리 수술을 도맡아 했다는 언론 보도를 본 분들이라면 멀쩡한 사람이라도 수술 이후 괜찮았던 허리가 다시 아파졌을 법하다. 그런데 해당 병원에서 수술 후 후유증에 시달렸던 분들이라면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전화를 거는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열심히 무료상담을 해드리고 있지만, 그분들 마음을 시원하게 할 만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해 나 역시 답답하다.

그들에게 숨길 수 없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현재 수사기관에 제출된 '유령 대리 수술' 동영상에 담긴 환자들이 아닌 이상 대리 수술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허리 수술 이후의 통증 재발이 의료과실로 인한 것임을 입증하여 의료 소송에서 승소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사이다 답변을 기대하고 연락해 온 그들에게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안겨드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법률가로서 그들에게 근거 없는 희망을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더욱 더 이런 희망을 가져보았다.

'수술실 내 CCTV가 설치되어 의무적으로 녹화되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지난 8월 31일 드디어 수술실 내 CCTV 설치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법 통과에 애를 쓴 의료정의실천연대 이나금 대표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나금 대표는 2016년 성형외과 수술을 받다 사망한 고 권대희 씨의 어머니다.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경험한 후 대리 수술의 심각성과 수술실 CCTV 설치의 필요성을 세상에 알린 분이다.

그리고 대리 수술이 의심된다며 나에게 연락오거나 찾아 온 분들도 떠올랐다. 그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제 대한민국에서 이런 억울한 일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며칠 후 인천의 한 지역신문기자가 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변호사님, 국회에서 통과된 법은 척추병원에서 국소(부분)마취로 시행되는 수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데 그게 맞나요?"

"설마 그럴리가요...국회에 발의된 법률 3건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회를 통과한 법조항을 찾아보았고 실제로 그 속에 들어간 문구를 보는 순간 깜작 놀랐다.
 
의료법 제38조의 2(수술실 내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ㆍ운영)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는...
② ...의료기관의 장이나 의료인은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장면을...

이전에 발의된 법안 3건 어디에서도 촬영대상에 국소(부분)마취를 전부 제외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남국 의원안(의안번호 2102382)과 신현영 의원안(의안번호 2106456)에는 촬영대상을 '모든 의료행위'로 하였고, 안규백 의원안(의안번호 2102615)에는 국소(부분)마취라도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의 경우 촬영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그런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법안(의안번호 2112206)에 위 문구가 슬그머니 들어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논의가 있었길래 국소마취를 제외하는 이런 문구가 들어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국회홈페이지를 통해 회의록을 찾아보았다.

통과된 대안이 나온 지난 8월 23일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임시회의록에선 관련 논의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전 10시 7분부터 오후 12시 8분까지 두 시간에 걸친 회의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은 채 슬그머니 들어 온 이 문구가 같은 날 오후 진행된 보건복지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도 관련 언급 없이 그대로 통과된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전신마취나 국소(부분)마취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인천 척추병원 사례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전신마취가 아닌 국소(마취)수술이라고 하더라도 엎드려 누워있거나 수술포로 덮인 상태이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 '유령 대리 수술'을 자각하기는 어렵다. 그런 이유로 국소(부분)마취 수술을 CCTV 촬영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한 내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월 필자가 쓴 <법전에만 존재하는 법, 지금도 누군가는 죽어간다> 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법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법과 죽이는 법. 사람을 죽이는 법을 우리는 '악법'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살리는 법은 그 법이 잘 시행되도록 힘을 실어야 하고, 사람을 죽이는 악법은 폐지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2021년 새해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하고 허탈하게 하는 건, 사람을 죽이는 악법만이 아니다. 그건 바로 있으나 마나 한 법들이다. 법전에는 존재하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 우리는 이런 법이 만들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

'수술실 CCTV법'은 이제 법전에 존재하게 되었고, 2년 뒤 시행된다. 그런데 이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현실에 존재하는 법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 법안이 최초 발의된 법안과 달리 이렇게 반쪽짜리로 축소되어 통과된 이유를 국회에 물어야 한다. 그리고 대리수술에 취약하고 위험한 국소(부분)마취수술 또한 CCTV 의무촬영에 포함시키는 입법적 보완을 법 시행 전까지 이루어지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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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네임카드 최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