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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북적북적]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9 :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에두아르가 미친 책벌레가 된 데에는 이러한 사연도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권의 책을 돌려 읽는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모르는 것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무식해져 있을 사나이, 내 남편 미친 책벌레 에두아르가 유식해질 날이 오기는 할까?"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가 독서량에 대한 본인의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필요해서 읽은 책'은 자신의 독서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교재여서 읽게 된 책이라면? 물론, 학점을 따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고 해도 깊은 영향을 받고 '인생책'의 반열에 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만난 책은 나 자신의 독서량에 대해 어림해 볼 때는 넣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순전히, '그냥' 읽은 책. 의무나 필요나 효용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읽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읽은 책만 '독서했다'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비록 이 기준에 비추어 계산해 보면 제 평생의 독서량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계산법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제목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이주영 작가의 '남편 관찰기'입니다. 이주영 작가님은 고등학교 문학교사인 프랑스인 남편 에두아르 발레리-라도 씨와 파리 근교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북적북적]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고 들으며 모이는 팟캐스트이지만, '프랑스인 책벌레 남편'이라니 뭔가 남다른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인들의 생활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반적인 한국인들보다 훨씬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책벌레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남자입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책을 펼치게 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경지를 엿보시게 될 것입니다.
 
"개떡같이 생긴 책이 또 한 권 도착했다. 너무 낡아 겉표지는 사라지고 없다. 다 떨어진 제본은 박스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이런 책을 파는 인간이나 사는 인간이나! 뒷말은 생략하자.

대체 무슨 책인가 들여다봤다. 내가 아는 언어가 아니다. 라틴어인 건 확실한데 무슨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해석 불가다. 책을 들여다보다가 '스키피오넴(Scipionem)'이라고 쓰인 곳에 눈이 멈췄다. '혹시 스키피오?' 깜짝 놀랐다. 아아! 나는 미친년이다! 미친놈하고 살다 보니 이제 나도 미쳤구나! 아니다! 미친놈을 시험한 나는 나쁜 년이다.

이야기의 전말은 내가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책을 읽은 것에서 시작한다.
…………(중략)
그리고 오늘, '스키피오'가 등장하는 누더기 같은 책이 도착한 것이다. 내가 놀란 이유는 알랭 드 보통이 '지적 부적절함에 대하여'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스키피오 아에밀리아누스를 언급하고 있어서다.

분명 한글로만 쓰여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에두아르가 어떻게 알았을까?" ('매일 더 무식해지는 사람' 中. 에두아르 씨가 아내가 읽고 있던 알랭 드 보통 한국어 번역본을 보고 어떻게 스키피오 가문에 대한 라틴어 원서를 (또) 주문하는 데 이르게 됐는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주영 작가의 남편 에두아르 발레리-라도 씨는 살면서 그냥 책을 즐겨 읽는다기보다 그냥 책을 읽기 위해 사는 분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읽고 읽고 또 읽고 또 사들입니다. 부부가 함께 거주하는 집이 그리 크지는 않다고 묘사되지만, 부부는 무려 1만 권은 될 장서를 보유하고 있고 그 규모는 오늘도 커져갑니다. 이 작가가 로마의 언어학교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슈퍼마켓에서 주는 비닐봉다리에 그날 읽을 책들을 가득 담아 들고 다니던 상습 지각생이었습니다. 열렬한 지적 탐구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실생활에는 살짝 소홀한 듯한 '생활치' 남편. 게다가 그런 지적 탐구를 거쳐 소화하고 발효시킨 바른말을 그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면전에서 톡톡 쏘아줘야만 하는 강직한 분이기 때문에 본인 뿐만 아니라 이주영 작가님을 종종 곤란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어!"

결혼 전 내 생활은 오롯이 내 삶의 일부였다. 지금의 내 생활은 삶과는 거리가 먼 그저 매일 '반복되는 행위'일 뿐인 듯 하다. 결혼 전과 후, 내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덜렁이 남편'이 생긴 것이다. 남들은 재혼할 나이에 초혼을 한 나는 쉽게 남편을 버릴 수조차 없다. 그를 고쳐서 데리고 살아야겠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번 동네 쌈닭에게 써먹었던 '책벌레에게는 책 작전'의 재개시다!

남편의 심장병 약 속에 비소량을 조금씩 늘려 천천히 죽이려 했던 여자의 이야기,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를 사용하자. 당장 청소를 멈췄다. 오늘이야말로 현장 보존은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테레즈 데케루]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가 내 메시지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을 찾아야 한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속독했다. 찾았다!

"그의 큼지막한 털북숭이 손은 초조하게 물컵에 파울러 용액을 떨어뜨리고 있었다……(중략)"

찾은 부분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했다. 에두아르가 퇴근하면 보존된 현장을 함께 검증한 후 이 책을 들이밀 것이다. 물론 그를 죽일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은 반드시 밝힐 것이다. 응용력이 부족한 그가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가 퇴근했다. 저녁을 먹인 후 작전을 개시했다.
다음 날 아침, 에두아르가 포스트잇으로 표시해 둔 책을 건네주곤 서둘러 뛰쳐나간다. 건네받은 책은 [테레즈 데케루]가 아니다. 같은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밤의 종말]이다. 이 소설은 테레즈 데케루의 15년 후의 이야기다 그가 표시해 놓은 부분은 내 메시지에 대한 답인 것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테레즈, 대체 이게 무슨 짓이니?'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왜 오늘 저녁에는 다른 때보다 더 큰 모욕감을 느꼈을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테레즈는 하루 저녁, 하룻밤의 외로움 앞에서 그녀가 마주한 첫 번째 사람에게 매달렸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 대화를 나누는 것, 젊은 사람의 숨소리를 듣는 것…. 테레즈가 바라는 것은 단지 이런 것이었지만, 이제는 이조차도 사치였다."

뭣이라?!" ('생활과 삶의 경계를 허물다' 中)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사회문화적인 차이들을 소통해 나가는 이야기이자, 좀더 책에 열광적인 남편과 (실은) 그에 못지 않지만 약간 더 현실감각이 있는 아내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보고이기도 합니다. 이 부부가 갈등과 소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복을 나날이 새롭게, 은근히 즐겁게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대화가 각종 문학작품을 인용하면서 이뤄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의 대화는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신, 함께 읽었거나 내가 먼저 읽어서 들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구절들, 오싹하거나 강력한 구절들, 곱씹을수록 의미가 우러나는 구절들을 인용함으로써 소통의 폭을 넓힙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제대로 말을 걸고 싶어서 고르고 고른 문학작품의 구절들을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부부 두 사람이 느꼈던 감정, 생각, 속마음들이 읽는 사람에게까지 깊게 배어듭니다. 맛깔스러운 상황 묘사와 위트가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책이라 많이 웃으면서 읽어 내려가다가, 문득, '그렇지. 문학에는 이다지도 힘이 있지.' 훅, 공감하게 됩니다.
 
"몇 해 전, 바티칸미술관을 방문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에두아르는 당장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엽서를 보내야 한다고 난리였다. 몇 걸음만 나가면 로마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엽서를 보내면 한국 도착까지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모른다. 에두아르가 불어로 글씨를 쓰고 나는 그가 쓴 글을 번역해서 그 밑에 조그맣게 썼다.

램프 불빛 아래의 세상은 얼마나 거대한가!/추억 속 세상은 얼마나 작은가!/이곳에는 모든 것이 호사롭고 침착하며, 즐거움과 아름다움, 정연함 뿐.

보들레르의 시를 급하게 번역하면서, 이 뜬금없는 시가 친정부모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바티칸우체국 우체통에 엽서를 넣으며 나는 차라리 몇 걸음 더 걸어가 로마의 우체통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로마에서 엽서를 보내면 엽서가 분실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여행에서 돌아와 친정엄마와 통화를 했을 때, 엄마는 우리가 보낸 엽서를 읽으며 아빠가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칠십 평생 아빠에게 시를 써서 보내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며 울먹였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어색해할 거라고 오해했던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 모임에서 '시 낭독'하는 게 우리 문화가 아니라고 단정을 지어 생각하고 위화감을 느꼈던 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 시詩집살이' 中)

무엇보다 이 에세이집은 '그냥 책을 읽는 삶, 어때?' 우리에게도 대화를 걸어오는 책입니다. 프랑스 책벌레 남편 에두아르 씨가 한국인이라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효용을 추구하는 독서, 수단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그냥 알고 싶어서' 끊임없는 지적 탐구를 인생의 다른 그 무엇보다도 앞세워서 해나가는 에두아르 씨가 아마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하고 괴로운 일들을 많이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시 프랑스는 달라' 따위의 결론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에두아르 씨가 에두아르 씨로 자라 에두아르 씨로 살아갈 수 있는, 에두아르 씨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는 프랑스는 프랑스 나름의 역사와 시간과 과정들이 모여서 지금 같은 사회가 된 것입니다. '빨리빨리'와 효용성이 다른 많은 가치들보다 인정받는 우리나라엔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간과 장점들이 있습니다. 표면적인 인상만 가지고 어느 한쪽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아마도 양쪽 모두를 결국 오해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주영 작가님도 이런 부분을 상당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게 느껴집니다. '유럽에서 살아보니 말이야' 류의 책으로 받아들여져서 정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축소되거나 왜곡돼 버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있는 책입니다.

다만, 장인장모에게도 시를 써서 마음을 전하는 정도의 배려와 그 정도 배려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한 교양을 내 삶 속에 한 뼘 더 키우는 것. 그냥 알고 싶고 들여다보고 싶고 내 마음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어서 읽어나가는 시간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늘려보는 것. 이렇게 살아보려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더라, 는 정도는 프랑스든 한국이든 어디서든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 유머라는 유기농 양념을 듬뿍 쳐서 저자가 우리에게 대접하고 싶어한 '메인디시'는 바로 이같은 제안입니다.
 
"내가 말끝마다 '안 유명한 사람'이라는 말을 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명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사람들이 읽지 않은 책을 쓴 철학자가 뭐가 유명한가? 고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하지 않다.
잘나셨다.

잠깐만! 아까 그가 내게 호텔 이름을 기억할 수 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지 않았던가? 이것은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지 않았을 거라 자기 멋대로 생각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인간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완전 빈정 상한다. 물론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지 않았다. 심지어 읽고 싶었던 적조차 없다. 열은 받지만 마땅히 받아칠 말도 없다. 얼른 샤워나 하고 오라는 말밖에 못한다. 어흐, 성질나!
………..(중략)
"아는 것이 많다고 반드시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충분히 실생활에 활용하려고 노력하며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란다. 이 유명하지 않은 철학자의 말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더 나쁘지만, 몰라서 못하는 것도 자랑은 아니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하지 않다' 中)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의 맺음말 2편 중 첫번째는 남편 에두아르 씨가 썼습니다. 이주영 작가님이 남편의 글을 번역해 실었습니다. (라틴어부터 시작해 온갖 유럽언어들을 섭렵한 에두아르 씨는 지금 한국어까지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내 번역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주영 작가가 책 전체에 걸쳐 남편을 흉보는 척 하면서 애정 깊은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데, 남편도 지지 않습니다. 사려 깊고 사랑이 묻어나는, 멋진 맺음말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자신의 '인생책'들을 꼽는 것으로 아내에 대한 지지와 응원까지 보내고 있는 글인데, 모두 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품들입니다.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소설들을 여러 권 인생책으로 꼽으셔서 호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어마어마한 책벌레 남편이 삶 전체를 통틀어 마음 깊이 남아있다고 고백한 '인생책'들이 궁금하시면! 이 책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를 꼭 한 번 열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나비클럽'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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