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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병영 불만 속 고개 드는 '모병제' 공약…"성급하지 아니한가"

올해 초대형 사건들이 쓰나미처럼 육해공군을 번갈아 휩쓸었습니다. 해병대만 상대적으로 조용했습니다. 시작은 육군의 격리 병사 부실 도시락 사건이었습니다. 이어 5월 말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 그리고 6월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과 7월 해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사건이 뒤따랐습니다.

공군과 해군의 성추행 사망사건은 대대적 수사와 함께 군 사법체계 개혁을 통해 뒷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도 장병들과 문무대왕함이 무사 귀환했고, 이제는 백신 미접종 장병의 파병은 불가능해 사태 해결이 다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부실 도시락이 잊을만하면 튀어나오고, 최근엔 조종사 양성 과정의 공군 초급장교들의 불만도 불거졌습니다. 오늘, 내일 어떤 부조리 폭로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크게 넘는 윤택한 선진사회와 총 들고 훈련장에서 뛰고 굴러야 하는 55만 군인 사회의 조화가 참 어렵습니다. 바깥 사회와 다름없는 풍요와 자율을 군에 전면 허용하면 좋겠지만 한반도 안보 환경과 예산의 제약으로 쉽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마침 대선이 다가오고 있어 이른바 '이대남'과 군심을 달래려는 국방 공약이 쏟아질 터. 들리는 이야기로는 각 캠프가 '이대남'을 위한 모병제의 각종 변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주자가 확정되고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모병제는 뜨거운 대선 이슈가 될 전망입니다.

공약은 표를 의식하기 마련이어서 엄정하고 객관적이기 어려운데, 모병제도 표에 휘둘려 포퓰리즘적 공약으로 탄생할까 걱정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병제는 남북 대치 상황에서 전투력 유지를 절대 명제로 걸어놓고 청년 인구 감소의 난제를 연착륙시키는 정치 중립적 고도의 계산을 통해 도출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모병제가 표에 좌우되는 대선 바람에 올라타면 안보를 그르치는 제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육군 초급 부사관들이 강원도 인제 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경계를 하며 이동하고 있다.

고개 드는 모병제 공약


육해공군의 대형 사건들로 인해 장병들의 불만이 현상적으로 극에 달했고, 청년 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현행 55만 병력을 상당 폭 줄이면서 동시에 건전한 병영 환경과 높은 전투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산발적으로 논의되던 모병제가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대선의 국방 분야 공약도 모병제가 최우선 고려사항입니다. 여야의 대선캠프에 합류한 예비역 장성들의 급선무가 모병제 공약 창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SBS 취재를 종합하면 완전한 모병제를 도모하는 캠프는 없습니다. 대체로 단계적 모병제, 혼합형 모병제의 방식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징병제의 골격은 현역병 복무기간 18개월을 조금 더 줄이는 한도에서 축소해 유지하고, 별도로 제한적 모병제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함께 실시하는 절충적 방안으로, 캠프마다 징병제와 모병제의 디테일은 각각 다릅니다. 징병제는 전역 후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겠다는 방향은 비슷하지만, 징병제 병사의 복무 기간 단축의 수준과 입대 방식 등에서 캠프별 차이가 많습니다. 모병제는 첨단 장비 운용을 맡는 5년 안팎 단기 복무 초급간부를 확대하는 방향인데, 모병제의 대상 병과와 복무기간, 급여 등에서 캠프별 공약의 디테일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병제의 절대 명제는

미군은 탈레반에 쫓겨 아프간에서 철수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내전에 휩쓸리며 실패로 끝났습니다. 첨단 무기가 넘쳐 나는 모병제의 미군이 21세기 전쟁에서 거둔 성적표는 참담합니다.

대선 공약으로 물 밑에서 논의되고 있는 우리 모병제도 미군처럼 첨단 무기 위주의 군과 이를 운용하는 전문 병과의 간부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징병제는 제한적으로 운용해 머릿수로 버티는 보병 전력을 최소화할 태세입니다.

그런데 아프간의 탈레반처럼 북한도 첨단 무기만으로 제압할 수 없습니다. 첨단 무기의 외과수술적 타격은 북한의 전쟁 지휘부와 핵 미사일, 각종 비대칭 무기를 쓸어버릴 수는 있어도, 정규군 110만 명과 예비 전력 762만 명의 북한군 병력을 무력화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군은 첨단 무기 운용과 별도로 숙련된 일반 전투 보병을 일정 규모 이상 보유해야 합니다. 특전사, 해병대, 그리고 각 군의 특수부대 등 최고의 전투력을 대표하는 병력은 최악의 경우 현상 유지하고, 최선은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대북 억지력은 첨단 무기와 장병들의 전투력이 합쳐졌을 때 완성됩니다. 우리가 모병제를 도입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선은 북한을 압도하는 강군입니다.

육군 초급 부사관들이 강원도 인제 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드론 공격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모병제 필요한지부터 논의해야

청년 인구는 급감하는데 복무기간까지 줄이면 병력 감소 속도는 배가됩니다. 각 대선캠프들이 '이대남' 표심을 얻으려고 섣불리 복무기간을 더 줄이면 일반 전투 보병뿐 아니라 특수부대 병력도 덜어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바라건대 모병제 대선 공약은 구체적인 안은 접어두고, "모병제를 적극 검토하겠다" 정도에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모병제는 몇몇 장군들이 캠프에 모여 앉아 표심 계산하며 결정할 정도로 간단하지 않습니다. 대선캠프와 무관한 한 예비역 장성은 "모병제가 필수라는 공감대도 없지 않느냐"라고 지적했습니다.

우선 한반도 안보 환경과 청년 인구 감소 추세에서 모병제가 필요한지부터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합니다. 모병제가 좋은 대안이라는 결론에 닿으면 그때부터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백지 상태에서 남북 대치와 청년 인구 감소라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한 모병제의 구체적 방안을 치열하게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모병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는데 대선 공약으로 모병제를 내놓은 것은 성급하고 무책임한 정치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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