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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무방비 노출된 조선왕릉…사태 주시하는 유네스코

아파트에 무방비 노출된 조선왕릉…사태 주시하는 유네스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이 주변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오늘(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김포 장릉 근처의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아파트를 짓는 대방건설·대광건영·금성백조는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을 당했습니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7층 높이인 20m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면 반드시 받아야 할 문화재청 심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 3개 건설사가 검단신도시에 짓는 아파트 44개 동, 약 3천400가구 가운데 보존 지역에 포함되는 19개 동은 공사 중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건설사들은 2014년 땅을 인수할 당시 소유주였던 인천도시공사가 김포시로부터 택지 개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고, 2019년에는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를 거쳐 공사를 시작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이와는 별개로 아파트를 지을 때 문화재청의 별도 심의를 받아야 한다며 서구청 또한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문화재청은 건설사들로부터 개선안을 제출받아 이를 토대로 내달 재심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허가 절차를 어기고 왕릉 근처에 건축물을 지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내년 6월 입주를 앞둔 이들 단지는 모두 20층 넘게 지어졌으나 최악의 경우 다 지은 아파트를 헐어야 할 수도 있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더라도 공사 지연과 설계 변경에 따른 입주 예정자들의 피해는 불가피합니다.

김포 장릉은 조선 선조의 5번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년)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년)의 무덤으로 사적 20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택 공급을 이유로 조선왕릉 근처를 대규모 아파트 부지로 낙점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정부는 2018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서오릉 주변을 3만8천 가구가 들어설 창릉신도시로 지정했습니다.

서오릉은 창릉, 익릉, 경릉, 홍릉, 명릉 등 5개 무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또 정부는 지난해 태릉골프장 부지에 아파트 1만 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지난달 6천800가구로 공급 규모를 축소하겠다며 1년 만에 애초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태릉골프장 바로 앞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과 강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오릉과 태·강릉 인근 주민들은 문화유산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 문화재 경관과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발합니다.

조선왕릉이 자칫 세계문화유산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노원구 주민들로 구성된 '초록 태릉을 지키는 시민들'(초태시)은 지난해 9월 유네스코에 정부의 태릉 주변 개발 계획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유네스코는 같은 해 11월 초태시에 "해당 내용을 한국 관계기관(문화재청 등)에 전달했다"며 "이 사안과 관계된 국제기구들과 함께 해당 문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회신했습니다.

초태시는 "태·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당시 태릉선수촌 이전을 포함한 주변 원형 복원이 등재 조건이었다"며 "5천억을 들여 선수촌을 태릉에서 진천으로 이전해놓고, 근방에 아파트 6천800가구를 짓겠다는 것은 황당한 처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왕릉 주변 경관이 비자연 환경이나 비보존 가치 건물로 채워지면 그때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의 가치가 퇴색한다"며 "문화유산 주변에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야말로 미래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의 전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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