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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두 아이를 잃은 엄마가 살아가는 법

[인-잇] 두 아이를 잃은 엄마가 살아가는 법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니스트 (radahh@gmail.com)

SBS 뉴스

작성 2021.09.19 11:02 수정 2021.09.19 11: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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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나라'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핀란드 사람들이지만 자살은 이들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자살은 핀란드 사람들에게 단순한 통계수치가 아니라, 체험에서 나오는 '아픈 단어'로 여겨진다. 가까운 친지 가운데 자살한 사람이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핀란드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맹렬히 진행되었던 1965년부터 핀란드의 자살률은 몇 배로 늘어나, 그 정점을 찍었던 1990년에는 10만 명당 자살률이 30명을 넘기며 당시 세계 2위의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그 뒤 국가적으로 주도한 '자살예방프로젝트' 성공을 계기로 핀란드의 자살률은 계속 낮아져 현재(2019년 기준)는 10만 명 당 15.3 명으로 반이나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10위로 낮은 편은 아니다.

특히 젊은 층의 높은 자살률이 큰 걱정거리다. 본인도 심한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는 핀란드의 젊은 의사 욘네 윤트라(Jonne Juntura) 씨는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핀란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30세 이하 젊은 층의 20%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2011년 통계), 유럽에서 핀란드 청소년 (15~24세)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2017년 통계). 15~24세 사인(死因)의 1/3 이상이 자살이다.

지난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 예방협회(IASP)가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다. 이날 아침, 카페에서 여느 날처럼 커피를 마시며 한가하게 온라인 뉴스를 읽기 전까지 나는 그날이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지도 몰랐다. 무심코 클릭한 기사 하나가 처음에는 눈물이 핑 돌게 하더니, 급기야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울음을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내 가슴을 이토록 무너지게 한 건 헬싱키에 사는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는 4년 전 첫째 아이를 자살로 잃어버렸다. 그리고, 1년 전 어느 봄날, 둘째로부터 이 같은 메시지를 받는다.

"엄마! 엄마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는 않은데…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엄마는 최고의 엄마였어요."

불길한 메시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당시 15세였던 이삭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차에 뛰어들어 삶을 마감했다. 누나와 자살한 나이, 장소, 방법이 똑같이 일치했다. 알리사와 이삭, 두 남매의 엄마였던 사리 핀네(Sari Finne) 씨는 이렇게 모든 부모가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 같은 현실을 경험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문제의 기차역을 배경으로 사진 찍은 사리 핀네(Sari Finne)씨, 멀리 오른쪽으로 작년에 만들어진 보호벽이 보인다. ⓒ헬싱긴사노맛지 캡쳐 사리 핀네(Sari Finne)씨 집에 있는 두 아이의 사진. 가운데 있는 조각상은 그녀의 텅 빈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 사리 핀네
남매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도 정이 깊었다. 첫째 알리사는 죽음을 선택하기 1년 전부터 우울증에 시달려 심할 때는 자해를 하기도 했다. 응급실에도 여러 번 실려 가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반복해서 입원도 했지만 끝내 삶 아닌 죽음을 택했다. 당시 핀네 씨는 숨도 쉬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큰 고통이었다고 토로했다. 아이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해왔던 터라 아이의 자살 가능성에 대해서 항상 걱정하던 바이기는 했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의 죽음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삭이 누나가 죽었을 때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생을 끝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죽은 후, 검게 변해버린 그의 SNS포스팅. ⓒ 사리 핀네(Sari Finne)씨 페이스북 캡쳐
보통 자살은 통계적으로 가까운 6명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에 더해 청소년이나 청년의 자살은 가까운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까지 트라우마로 몰고 가는 것 같다.

4년 전, 알리사가 기차역에서 생을 마감한 후 그 지역에 살던 두 명의 소녀들도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짧은 생을 던졌다. 그 이후 역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기차 도착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또 누군가가 희생될까 우려심 반 공포심 반으로 주변을 살폈다고 한다. 특히 아이를 둔 부모들은 선로 옆에 보호벽을 세우자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보호벽은 지난해 이삭이 죽은 다음 날,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선로변에 울타리를 세우며 결국 실현됐다. 그 이후 시 정부가 더 튼튼하게 보완해 이제는 적어도 같은 지점에서 선로로 뛰어들 수 없다.

남아있던 마지막 아이까지 잃어버린 지난 1년 반 동안, 사리 핀네 씨는 어떤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들이 이삭이 세상은 떠난 후죽 몇 주 동안 벌어진 일을 그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엄청난 쇼크에 빠진 그를 위해 많은 사람이 24시간 내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손을 잡아 주고 음식도 만들어주었으며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도록 곁에서 위로해주었다.

그녀에 의하면, 이삭이 죽고 난 뒤 자기에게 등을 돌린 친구는 단 한 명밖에 없다. 이때 그는 다른 사람의 상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행히 많은 가족과 친구는 그에게 위안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조금씩 정신을 차려가던 그는 불현듯 굳은 결심 하나를 하게 된다. 세상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부지런히 찾아서 하며 절대로 삶에 맞서 지지않겠다는 그런 결심이었다.
인-잇 이보영 잘 알지 못하던 한 지인이 그녀에게 선물해준 천사로 변한 아이들 모습이 담긴 그가 사랑하는 귀걸이. ⓒ헬싱긴사노맛지 캡쳐
특히, '핀란드 자살자 가족 협회'를 접촉하며 같은 경험을 한 부모들과의 만남은 그를 본격적인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침내 죄책감으로 자신에게 가했던 모진 채찍질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아이들이 살아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것들을 좋아할까 그리고 지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는 식으로 매일 아이들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씩씩하게 나머지 삶을 살아내려 한다.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은 '자살자 가족 협회'에 보은하는 심정으로 자신도 같은 경험을 한 부모들을 위해 또래 집단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얼마 전 직접 상담도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앞 세대만 해도 핀란드에서는 자살자들이 교회 공동묘지에 묻히지 못했다고 한다. 자살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고 자살자를 둔 가족들은 부끄러워 모두 '쉬쉬'했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가고 있으며, 그는 자살자의 언급에 대한 사회의 금기가 없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도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의 자살에 대해 숨기지 않고 얘기한다. 일부 사람들은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자식이 부모를 키운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다 자라는데 15년이면 충분했나 봐요"라고 블랙 유머를 구사하며 그는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그는 이제 다시 '삶'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 주: 핀란드 자살자 협회의 핀란드 명칭은 Surunauha ry (https://surunauha.net)로 1997년 처음 시작됐다. 현재, 핀란드 전역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운영하는 '또래 상담'이 활발히 운영 중이다.

* 이 글은 핀란드의 일간지 헬싱긴사노맛의 기사를 일부 번역 인용 https://www.hs.fi/kaupunki/vantaa/art-2000008228507.html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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