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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북적북적]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북적북적]

심영구 기자

작성 2021.09.19 07:40 수정 2021.09.23 09: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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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8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나는 다음이 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내가 역사를 배우며 얻은 교훈이에요. 벽을 부술 수 있어요. 천장을 폭파할 수도 있고.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다 같이 공평하게 절멸할 수도 있어요. 바라는 모습이 그건 아니잖아요?"
-<하이 피버 프로젝트>에서

'이변'이랄 만한 기상 변화, 요즘 들어 체감상 자주 일어나는 듯합니다. 9월 초 미국 뉴욕에는 1시간에 80mm 넘는 집중 폭우가 쏟아지면서 한때 지하철이 끊기고 도로와 공항 침수 등 도시가 마비됐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저소득층 시민 10여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참사로 이어졌고 인근 뉴저지까지 합치면 사망자는 40명이 넘었습니다. 이 강수량은 열대성 폭풍 아이다의 영향에 따른 것이었는데 8월 폭풍 앙리가 세웠던 강수량 기록을 불과 2주 만에 경신했습니다. 사상 최악, 100년 만에 최대... 기상 소식을 전하면서 이런 수식어가 어디든 드물지 않습니다.

그저 저만의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세계기상기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 간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나 폭염 같은 재해 수가 5배나 증가했습니다. 체감 만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인류가 코로나를 극복한다고 해서 그 이전으로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기후 변화의 시대 또한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 변화 중에는 아마 사랑도 있겠죠.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은 김기창 작가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입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10편의 공통된 전제는 지금과는 다른 기후 상황이라는 겁니다. 지독한 폭염부터 끔찍한 추위, 빙하가 녹아버린다든가... 하지만 그 상황은 여느 SF처럼 머나먼 미래라든가 평행 우주의 지구 같은 게 아니라, 언젠가는 닥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책이 출간됐던 4월에 저는 북적북적에서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읽으면서 "7세대 앞을 내다보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2004년 개봉했던 영화 '투모로우'를 언급했습니다. 그 영화 내용이 17년 전엔 다소 황당했지만 2021년엔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고 제목도 의미심장하게 '내일'이었죠.
"서남극 빙상이 예상보다 더 빨리 녹아내린 것이 변화의 결정적 계기였다. 전 세계 136개의 해안 도시가 범람했고, 4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육지를 서둘러 바다로 편입시켰고, 사이즈가 커진 폭풍과 폭풍해일은 안전지대의 개념을 뿌리째 흔들었다. 학자들과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2미터 이상 더 상승할 것이라 경고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많은 도시들이 내륙 깊이 물러났다. 사람들은 빠르게 차오르는 수위를 대비해야 했꼬, 미세 먼지로 뒤덮인 공기를 정화해야 했으며, 열파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격론 끝에, 돔시티(DomeCity)가 대안으로 채택되었다."
-<갈매기 그리고 유령과 함께한 하루>에서

이 묘사들, 아주 낯설게 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영화든 만화든 소설이든 이런 설정이 넘치다 못해 조금은 진부한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그렇게 무감각해지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습니다. 닥쳐야, 겪어야만 알게 될 때는 이미 늦어버렸을 가능성이 크죠.

이 소설집에서 3편의 단편은 '돔시티'가 들어섰다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고온으로 살기 어려워진 곳에 돔시티가 세워지고 나니 돔시티 거주자와 여기서 밀려난 이들, 그리고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권력자들과의 갈등은 필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돔시티 내부자와 외부자, 경계에 있는 이들을 각각 등장인물로 내세운 세 편 모두 흥미진진하면서도 씁쓸하고 조금 섬찟하고 그렇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웃으며 뛰어가던 시절, 계절에 순응하며 곁에 다가온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시절, 폭서와 혹한이 찾아와도 견딜 수 있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있던 시절은 바다 저편의 등대 불빛처럼 희미했다."
-<하이 피버 프로젝트>에서

어, 이건 요즘 얘기와 별로 다르지 않잖아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더더욱 근미래로 여겨지는 사상 최장 기간의 폭염에, 많은 청춘이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현실까지 더해진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는, 벌써 어딘가에서 벌어졌던 일일까 싶기도 합니다.
"왜 하필 역사상 최악의 폭염이 들이닥쳤을 때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걸까?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는 수사는 매해 이어지고 있었지만 올해는 특히 심했다. 지구의 시스템이 사소한 수준으로 고장 난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용희는 첫 번째 업무인 만큼 잘해 보고 싶었지만, 일의 보람을 찾고 느끼고 싶었지만 지독한 폭염과 그만큼 악착같은 민원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한 것은 자신인데 오히려 호통을 들어야 하다니."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에서

코로나가 언제고 끝나면 그동안 억눌렸던 해외여행 욕구도 아마 폭발할지 모르겠습니다. 명절 연휴마다 반복됐던 '인천공항, 사상 최대 인파'가 사상 최대를 넘어 단군 이래 최대가 될 수도 있겠죠. 한때 신혼여행지 1순위로 각광받았던 몰디브도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겠지만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천국에서 맞이하는 초저녁 같이 아름다운 곳을 더 못 가게 되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는 아이러니함, 그걸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경민은 문제의 축이 몰디브로 여행을 가느냐 마느냐에서 몰디브 환경보호와 지구온난화 방지로 옮겨 간 과정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고, 다 때려치워!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경민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아직 생각지 못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지구온난화 따위를 걱정하지 않으며 천국의 초저녁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분명히 남아 있을 거라고."
-<천국의 초저녁>에서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만 누구 하나의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개방된 자원을 개인이 자신의 이득에 따라 무절제하게 사용하면 황폐화할 수 있다는 '공유지의 비극'이 딱 들어맞습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나 하나가 하는 게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바둥거려보자... 환경운동이나 시민운동이라는 게 이런 차원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도 필요할 마음가짐이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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