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기들 틈바구니에서 조금 초라하면서도 눈에 띄는 무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형 4.5세대 전투기 KF-21용 국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입니다. 개발에 성공한 다른 신무기들과 달리 탐색개발, 즉 걸음마 단계입니다. 성공을 장담 못하는 탐색개발 과정인데 유례없이 대통령 앞에 선보인 것은 SLBM, 현무-4만큼 중요한 무기이고, 탐색개발에 성공했다는 의미일 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탐색개발은 예정대로라면 다음 달 끝납니다. 이어 본격적인 개발인 체계개발에 돌입하는데, ADD 대신 방산업체가 탐색개발의 성과를 이어받아 체계개발을 맡습니다. 재작년 말부터 방사청과 ADD, 업체들이 숱하게 머리 맞대 가장 성공 가능성 높은 개발 방법에 대해 논의한 결과로, 국방장관 주재 방위사업추진위에서 공식 의사결정된 방안입니다. 어제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기자들에게 "업체가 체계개발할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국내 업체들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KF-21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심리적 중압감과 미답(未踏)의 개발 난도라는 기술적 부담감을 잘 극복해 한국형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체계개발에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분리 성공 후 넘어야 하는 고산준령
탐색개발 중인 국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이 어제 보여준 것은 전투기 분리입니다. 1톤 안팎의 미사일이 전투기에서 분리될 때 전투기와 미사일의 비행 안정성을 유지하는 기술입니다. ADD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전투기 분리에 성공했습니다.
분리 이후가 진짜 승부입니다. 사실, 기본적인 분리 기술은 이미 공대지 폭탄 KDDX를 개발하면서 확보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분리 성공 이후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체계개발까지 소요되는 통상적인 기간은 10년 이상입니다. 미국 재즘이 13년, 독일 타우러스가 14년으로 알려졌습니다. 스텔스, 항재밍, 위성항법, 강화콘크리트 관통 등 난제들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10년여 기간에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체계개발을 끝내면 성공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정도의 여유가 없습니다. KF-21 1차 양산이 2026년~2028년 40대, 2차 양산이 2028년~2032년 80대입니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의 체계개발뿐 아니라 미사일과 전투기의 체계통합을 5년 후인 2026년까지 완료해야 합니다. 미국과 독일처럼 10년 이상 걸리면 KF-21의 1, 2차 양산분 120대에는 아예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달 수 없습니다. 몇백 km 밖 지상 표적을 때리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없는 4.5세대 전투기는 더 이상 전투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KF-21 사업은 실패입니다.
방사청은 1차 양산 KF-21의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장착은 애초에 포기했습니다. "2023년부터 2028년까지 6년간 개발한 뒤 2028년부터 시작되는 2차 양산 간 적용"이 방사청 계획입니다. 체계개발 완료 이후 체계통합이 또 2~3년 걸리기 때문에 방사청 계획도 KF-21의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장착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공군 고위 관계자는 "방사청 계획을 따르면 KF-21 사업은 100% 실패한다"며 "우선 F-15K용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KF-21과 공유하고, 호환되는 국산 장거리 공대지를 개발하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탐색개발 중 대통령 행사에서 공개할 정도로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은 중요한데 현실은 이와 같습니다.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체계개발은 방사청의 계획도, 미국과 독일의 기록도 뛰어넘는 획기적 성공을 거둬야 KF-21의 비상을 이끌 수 있습니다.
도전! 업체 주관 연구개발
재작년 9월부터 방사청은 ADD와 TF를 구성해 10차례 회의를 했고, 업체와도 7차례 회의를 거쳐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개발을 ADD 주관에서 업체 주관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방사청의 방안은 작년 6월 국방장관 주재 방위사업추진위을 통과해 공식 정책이 됐습니다. 방사청은 보도자료와 입장자료를 통해 "정책적 환경 변화로 인해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등의 연구개발) 주관기관의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탐색개발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업체에서 이를 이어받아 체계개발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다음 달이면 3년 일정의 탐색개발이 끝납니다. 대통령 행사 공개로 사실상 탐색개발 성공이 선포됐습니다. 국방부의 전력 담당 책임자는 어제 기자들과 만나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체계개발은 업체가 맡는다"고 재확인했습니다. 업체 주관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체계개발은 방사청 계획에 부합하는 때가 아니라, KF-21 성공에 부합하는 조기에 성공해야 할 것입니다.
방산업체들이 바쁘게 뛰고 있습니다. 제일 적극적인 주자는 ㈜한화입니다. 공대지 미사일 쏨을 개발한 터키 로켓산과 기술제휴해 한국형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체계개발한다는 구상입니다. ㈜한화와 로켓산의 협의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일의 타우러스사는 작지만 사거리가 늘어난 신형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한국과 독일이 공동개발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국내 유수 방산업체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방산업체들이 탐색개발의 성과를 토대로 가장 적합한 해외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입해 활용하는지에 한국형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과 KF-21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방산업체들은 간절하게 이윤을 추구하니 온 힘을 다해 훌륭한 기술을 경쟁적으로 찾을 테고, 그만큼 한국형 장거리 공대지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KF-21의 비상이라는 우리 국방과학의 귀한 목표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업체들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