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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의 아마존' 쿠팡의 반독점 역설

[취재파일] '한국의 아마존' 쿠팡의 반독점 역설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21.09.14 09:10 수정 2021.09.15 16: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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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소비자


저는 쿠팡을 사용하는 소비자입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하는 날이 늘고, 점심과 저녁 약속은 줄어들면서 끼니의 상당 부분을 쿠팡이츠를 이용해 배달음식을 먹습니다. 쿠팡이츠가 나오기 전엔 배달의민족 앱을 이용했지만, 단건 배달을 해주는 쿠팡이츠를 써보니 배달 속도가 훨씬 빠르게 느껴져 갈아탔습니다. 전날 주문하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 앞에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쿠팡 새벽배송에 익숙해져 이틀 넘게 걸리는 기존 택배들은 이제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이병헌이 출연하는 SNL코리아를 오리지널 콘텐츠로 내놓았다는 소식에 쿠팡플레이도 구독을 해야 할 지 고민 중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저는 급속도로 '헤비 쿠팡유저', '쿠팡의 노예'가 됐습니다. 소비자인 저는 쿠팡 덕분에 삶이 편리해졌습니다. 소비자의 편익을 가져다주는 쿠팡은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좋은 기업일까요?

리나 칸 美FTC 위원장의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 미국 연방거래위원장(한국의 공정위원회 격) 리나 칸의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아마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설명한 이 논문이 32살의 파키스탄계 여성을 연방거래위원장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리나 칸은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비자의 후생을 높이는 기업이라도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리나 칸 美FTC 위원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리나 칸의 논문 내용을 간략하게 인용해 플랫폼 기업의 속성을 설명해보겠습니다. 1970,80년대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타고 미국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은 시카고 학파는 독점이냐 아니냐를 '소비자 후생'을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한두 개의 기업이 독과점을 통해 담합을 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 후생이 떨어집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 FTC 등 정부와 법원은 독점을 규제해왔고, 그 기준을 가격(소비자 후생)으로 삼았습니다.

리나 칸은 이러한 판단 기준으로는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을 규제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은 약탈적 가격 책정에서 나옵니다. 쉬운 말로는 적자보면서 팔기, 이익보다 성장 추구하기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전통적인 기업들은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수년간 적자를 보면서도 사업을 넓혀나가고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아마존식 비즈니스 모델


아마존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싼 가격에 편리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독점을 이용해 소비자에게 비싼 가격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존은 전통적인 독점 기준에서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리나 칸은 아마존이 소비자에게 싸게 물건을 파는 구조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과 계약한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한다고 봤습니다. 또 아마존은 점유율이 점차 높아져 경쟁업체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게 된 후에는 원래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에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수수료를 마음대로 인상할 수 있는 아마존의 힘은 싼 가격으로 이미 구축해놓은 시장 지배력에서 나옵니다.

아마존은 단기적으로 소비자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이익을 주지만, 자신과 계약한 생산자들에게 수수료를 점차 올립니다. 또한 아마존은 20여 년 넘게 '무노조 경영' 원칙을 통해 소속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즉, 계약 맺은 생산자와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아마존은 시장의 다양성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그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돌아온다는 게 리나 칸의 주장입니다.

〈아마존의 매출-순이익 그래프〉 (출처 : 리나 칸 논문 Amazon's Antitrust Paradox)
아마존식 성공 모델은 한국에도 수입됐습니다. 상당 기간 적자를 보는 프로모션을 공격적으로 활용해 시장을 점유해가는 방식은 쿠팡에서도 보입니다. 최근에는 혁신을 자처하는 기업, 스타트업들의 상당 수가 이런 전략을 사용합니다. 대규모 환불 사태가 일어난 머지포인트도 마찬가집니다. 머지포인트는 20% 할인을 해주면서 적자를 키워왔지만 고객 수를 빠르게 늘렸습니다. 많아진 고객 수를 토대로 구독 모델 등을 만들어 이익을 환수할 수 있었다는 게 환불 사태 전의 머지포인트 사업 전략입니다. 기존의 관점에선 말이 안 되는 사업 모델이지만, 아마존의 성공으로 이런 방식은 가능하고 또 우월한 전략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실패하면 '폰지 사기', 성공해서 궤도에 오르면 '혁신'인 모델인 겁니다. 아마존도 성공하기 전까지는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 혹은 '카드로 쌓아 올린 집(house of cards)'이라고 비판받았습니다.

쿠팡과 자영업자


다시 한국의 현실로 돌아오겠습니다. A씨는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쿠팡이츠가 사업을 시작하던 무렵인 2019년 8월 쿠팡이츠와 배달서비스 계약을 맺었습니다. 원래는 배달의민족을 이용했지만 쿠팡이츠 측이 싼 수수료를 제안했습니다. 배달비 또한 무료로 해준다고 했습니다. A씨가 매출을 점차 쿠팡이츠에 의존하게 되던 중, 올해 1월 A씨는 수수료 변경을 통보받았습니다.
▶ 처음엔 싸게…시장 장악하면 돌연 수수료 인상

쿠팡이츠 측이 제시한 수수료로는 도저히 장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법원에 소송까지 냈습니다. 기존 수수료 계약을 유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재판부는 식당 점주와 쿠팡이츠의 관계를 '자유로운 계약관계'로 봤습니다. 재판부는 쿠팡이츠가 올린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생각하면 A씨가 계약을 자유롭게 종료하고, 다른 배달서비스 앱을 이용하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1:1 계약으로 본 법원의 인식과 달리 A씨는 쿠팡이츠에 이미 매출의 80%를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사업 초기 프로모션으로 싼 수수료를 제안받은 A씨가 스스로 단골고객들을 쿠팡이츠로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A씨는 이제 쿠팡이츠가 수수료를 어떻게 바꾸든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자간 자유로운 계약이라기에는 수수료 변경에 대해 협상을 할 여지가 없는 겁니다.

쿠팡 이츠
이 소송을 보며 리나 칸이 논문에서 언급한 아마존 관련 소송을 떠올렸습니다. 법원은 아마존의 '적자보면서 팔기' 전략이 독점이 아니고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리나 칸은 아마존의 이런 전략이 결국 시장을 지배하고,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걸 법원이 놓쳤다고 비판합니다. 법원이 전통적인 독점 규제에 대한 이론으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새로운 사업방식을 바라봤기 때문에 맹점이 생겼다는 겁니다.

쿠팡과 노동


플랫폼 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축은 노동자입니다. 쿠팡은 코로나19 위기에 수많은 고용을 창출했습니다. 하지만 혁신적인 일자리라기보다 배달라이더와 택배 기사, 물류센터 직원 등 기존에 존재했던 직업들이 주를 이룹니다.

지난 3월 2일, 쿠팡이츠가 최저 배달 수수료를 3,100원에서 2,500원으로 낮추면서 라이더유니온 소속 일부 배달기사들이 반발했습니다. 최저 배달 수수료는 배달기사들의 임금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를 일방적으로 삭감했다며 라이더들은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근로자의 경우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또 노조를 만들어 임금에 관해 회사와 협상을 벌이거나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달기사들은 사실상 기업의 지휘와 감독, 평가를 받는데도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취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쿠팡은 미국 나스닥 상장을 위한 증권 신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를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로 판정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해당 사안에 대해 판단한 바 없다고 밝히면서, 쿠팡이 희망사항을 증권신고서에 반영한 게 아닌지 비판이 나왔습니다. 실제 고용노동부는 배달기사들의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을 법내 노조로 승인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배달기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달 17일 쿠팡이츠 오토바이 무보험 정책 변경 촉구하는 노동단체의 기자회견
코로나19 집단 감염과 대규모 화재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도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쿠팡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에 따르면 부천 물류센터 노동자 중 2.6%만 정규직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97%는 일용직부터 3개월, 9개월, 1년 계약직, 무기 계약직으로 나뉩니다. 비정규직을 계약 기간별로 승진체계처럼 나눠 내부 성과를 관리한다는 게 조사단의 주장입니다. 혁신을 내세우며 성장한 쿠팡이 만들어낸 일자리 중 많은 부분은 질 좋은 정규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쿠팡은 지난 3월 경총에 가입의사를 타진했습니다. 여기서 쿠팡의 노동현안 대응 방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의 경우 배달라이더와의 노사문제를 코리아스타트업포럼(배달의민족, 마켓컬리, 직방 등이 주도. 이하 코스포)이라는 스타트업 이익단체를 통해 해결해왔습니다. 코스포의 경우 지난해 민주노총, 라이더유니온과 함께 협상을 벌여 '플랫폼 노동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을 열고 플랫폼 배달업계 최초로 노사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쿠팡은 코스포가 아닌 경총을 통해 노사관계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배달의민족과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즉, 협조적 노사관계보다는 경총의 전통적인 투쟁적 노사관계 대응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총 가입을 타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나오자, 쿠팡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현재까지 가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쿠팡과 정치


리나 칸은 플랫폼 기업을 필수적인 공익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논문에서 주장합니다.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은 다리, 도로, 항만처럼 사회의 필수 기반 시설에 맞먹기 때문에 공익사업으로 보고 규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규제 방법 중 하나로 정부가 수수료 인상을 제한하는 방식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플랫폼 기업의 '적정 수수료'를 계산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플랫폼 기업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개별 노동자나 생산자에 대한 수수료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마존처럼 적자를 보면서 성장하는 전략을 유지해온 기업의 경우, 적자를 메운다는 명목으로 '적정 수수료'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을 제한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 등 10명은 지난 6월 "대형 플랫폼의 시장 독점이 과도한 소비자 요금 인상과 소상공인,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수수료 기준을 강요하고 있다"며 정부의 이용약관심의위원회가 수수료 인상을 심의하는 법안(전자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쿠팡에 집중해서 서술했지만 쿠팡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생 플랫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미 독점적 지위를 갖춘 카카오와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의 폐해는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국회에는 앞서 말한 전자통신사업법 개정안뿐 아니라 플랫폼노동자 보호법, 온라인플랫폼법 등이 발의돼 논의 중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아마존 저격수'를 연방거래위원장에 임명한 미국처럼 한국의 정부 여당이 제대로 플랫폼 기업 독점을 막을 의지가 있는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형 플랫폼 업계가 혁신을 이끌고 있는 나라, 자본주의의 첨단에 있는 나라의 대통령은 빅테크 규제 필요성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그건 착취입니다." - 조 바이든
(Capitalism without competition isn't capitalism. it's exploitation. - Joe Biden)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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