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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책 읽는 당신, 오늘은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인-잇] 책 읽는 당신, 오늘은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표정훈 | 비문학 작가, 책 칼럼니스트

SBS 뉴스

작성 2021.09.11 10:54 수정 2021.09.14 16:5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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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을 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혀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이런 식으로 침묵 속에서 독서에 빠진 그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절대로 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지 않았다."
 
4세기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책 읽는 모습을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묘사했다. 10세기까지 서양에서 소리 내어 읽지 않는 묵독은 드문 일이었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 낭독이었다. 손끝으로 글자를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었던 것이다.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시절 정인지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을 넘어 방으로 뛰어들었다. 정인지는 절차를 밟아 혼인하겠노라 달래어 처녀를 돌려보냈다. 이튿날 정인지는 이사가버렸고 처녀는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광조, 심수경, 김안국, 상진 등도 젊은 선비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처녀가 담 넘은 전설의 주인공들이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저서 <책 읽는 소리>에 소개된 일화다.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등은 낭송하는 음까지 자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이슬람의 꾸란은 혼례나 장례, 국경일, 각종 공식 모임 등에서 낭송된다. 전문적으로 꾸란을 낭송하는 독경사(讀經士)를 초빙할 때도 있다. 유대인들도 다양한 악센트와 리듬으로 각 지역 특유의 정서까지 반영시켜 성경을 낭독했으며, 역시 독경사들이 활동했다. 전통 사회에서 성립된 텍스트 대다수는 낭독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문학 낭독회는 1920년 2월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폐허」 동인들의 시 낭독회였다. 역사학자 이병도가 사회를 맡았다. 목덜미 덮도록 머리 기른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독했다. 시인 황석우는 취기에 몸을 덜덜 떨면서 시를 낭독하여 청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문학 동인회 파스큘라가 1925년 2월 경운동 천도교기념관에서 연 '문예 강연 및 시, 각본 낭독회'도 화제였다. 이상화, 김기진, 박영희, 김억, 연학년, 안석영, 박종화, 민태원 등이 강연하고 작품을 낭독했다.

18세기 프랑스의 개인 살롱에서는 책을 낭독하고 그것을 감상하는 모습이 흔했다. 조선의 선비 집안 규방에서 부인들은 전문적인 낭독가인 전기수(傳奇叟)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작가 찰스 디킨스는 1850년대부터 자기 작품의 주요 대목을 연기하듯 낭독했다. 그는 영국, 미국, 캐나다에서 순회 낭독회를 열어 큰 인기를 모았다. 이렇게 독서의 역사에서 낭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낭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는, '공동 독서'에서 '개인적 독서'로의 변화이기도 했다. 나 홀로 책 읽는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눈과 머리로 읽는 묵독에 비해 낭독은 온 몸으로 읽는다. 오늘날 크게 바뀐 독서 환경 속에서 낭독 문화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을까? 디지털 기술에 바탕을 둔 오디오북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이나마 늘고 있다. 오디오북은 물론 내가 직접 낭독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낭독하는 것을 듣게 된다.

나는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과 만나면 소리 내어 읽는다. 한 문장일 때도, 한 문단일 때도, 한 페이지일 때도 있다. 그러면 좋은 문장의 울림이 몸에 남는 느낌이 든다. 책은 눈이 아니라 몸으로 읽는 것, 육독(肉讀)하고 체독(體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차원의 물건이라는 책의 물질적 조건은, 2차원 화면인 테블릿이나 스마트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나의 몸과 책이라는 몸이 만나는 사건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거의 무의식중에 내가 지금 책의 어디에 있는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가늠하고 있다. 책을 손으로 쥐어들고 페이지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넘기고 하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 이에 비해 모니터에서는 내가 지금 접하는 지식정보의 자리나 위치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이라는 전체 그물을 한꺼번에 끌어당기는 일과 비슷하다. 이에 비해 모니터에서 읽는 것은 그물의 한 그물코에 집중하는 일에 가깝다.

종이책을 읽는 독서는 두뇌는 물론이거니와, 오감(五感)과 온 몸을 동원하는 매우 복잡한 행위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거나 접어놓기도 하고, 밑줄을 긋고 여백에 손글씨로 글을 적어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온 몸을 쓰는 행위를 통해 받아들인 지식일수록 내 안에 깊이 스며들어 더 오래 남는다. 물론 최근의 디지털 기기에서도 필기나 밑줄 긋기 등이 가능하지만, 종이라는 물건에서 이뤄지는 것과는 감수성이 다르다.

글을 써서 퇴고할 때, 나는 반드시 종이로 출력하여 읽어보며 글을 고친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오류가, 종이에 찍힌 활자로 읽으면 드러나곤 한다. 종이에 수정 사항을 적어두었다가 노트북에서 파일을 불러내 수정한다. PC와 노트북이 일반화되면서 종이 소비가 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오히려 종이 소비는 늘어나기만 했다.

원고지 50매가 넘는 긴 글이 아니라면 나는 종이로 출력하여 소리 내어 읽어본다. 퇴고의 1단계가 눈으로 읽기라면 2단계는 소리 내어 읽기다. 눈으로만 읽을 때는 미처 보이지 않던 어색한 문장이, 소리 내어 읽으면 드러난다.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역시 소리 내어 읽어볼 때 더 잘 드러난다. 문장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면, 읽다가 반드시 걸리게 되어 있다. 요컨대 좋은 글은 소리 내어 읽기도 좋고 그것을 귀로 듣기에도 좋다.

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선생님은, 학생들의 번호를 지목하여 국어 교과서를 돌아가며 낭독하도록 했다. 읽다가 실수하지 않으면 그 학생이 계속 읽게 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일종의 읽기 게임이 되니 학생들은 더욱 집중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훌륭한 독서 교육이었다.
 
 
표정훈 인잇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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