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사실은] "전자발찌 재범률이 줄고 있다" 따져보니

[사실은] "전자발찌 재범률이 줄고 있다" 따져보니
지난주 대한민국은 '전자발찌' 논란으로 뜨거웠습니다.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 사건 이후, 한 남성이 전자발찌를 차고 자신의 집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던 일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전자발찌를 차고 같은 범죄를 또 저질렀습니다. 전자발찌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법무부는 강윤성이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2명을 살해한 끔찍한 일이 벌어진 직후,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관련 이미지
보도자료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 이른바 '전자감독 대상자'가 성폭력 범죄를 다시 저지른 현황을 공개하며, 재범률이 지난해 대비 0.11% 감소했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훼손율도 낮아졌다고 했습니다. 관리가 나름 잘 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법무부의 통계가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법무부가 제시한 통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통계에 담긴 다른 행간을 고민해보려 합니다.

사실은

전자발찌 재범 피해, 한 해 수십명


2008년 전자발찌가 도입된 이후 재범률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도입 이전 재범률은 5년 평균 14.1%였지만, 그 이후에는 1~2%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자발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관련 이미지


전자발찌 훼손율도 마찬가집니다. 지난해 실시 사건 기준 6,196건 가운데 13명으로 0.46%였습니다. 외국의 경우 훼손율이 잘 공표되지는 않지만 미국과 호주의 경우 훼손율이 1~3%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은 0.3~0.4%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특히, 미국은 우리 전자발찌의 초창기 모델인 실리콘 재질을 사용해 훼손율이 더 높습니다. 우리나라 전자발찌는 2008년 시행 이후, 2009년 강화필름 삽입, 2010년 철선 삽입, 2012년 스테인리스 강판을 삽입하며 강도를 키워왔습니다. 

통계는 분명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계속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전자발찌 재범률 1~2%는 작은 수치처럼 보이지만, 재범 피해자가 한 해에 수십 명에 달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피해 규모가 어떻든 피해 당사자는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삽니다.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범행한 2012년 서진환 살인사건, 지난달 강윤성 살인사건 같은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위 그래프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2008년 전자발찌 제도 시행 이후, 이듬해 재범 사건은 0건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3건(0.65%)이 발생하더니, 2011년에는 15건(2.19%)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2012년 21건(2.4%), 2013년 30건(1.72%), 2014년 48건(2.3%)입니다. 전자발찌 착용하고 다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2010년 이후에 2%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년 수십 명의 피해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2010년 이후 재범율이 0에서 2%로 늘어난 배경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2010년 전자발찌 부착을 3년 소급 적용할 수 있는 전자발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정안은 이 법이 시행된 2008년 9월 1일을 기준으로, 형 집행 중이었거나 출소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았던 성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착용 기간도 현행 10년에서 30년까지 크게 늘렸습니다. 소급 적용은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법무부가 2018년 펴낸 <2008 : 한국 전자감독 10년사>를 보면, 2010년대 재범율이 2% 대로 늘어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2008년 9월 1일 이전에 제1심 선고를 받아 징역형 등이 종료된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도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소급적용 규정이 2010년 7월 16일 시행됨에 따른 것으로, 이들의 경우 소급 적용에 대한 저항과 반감이 심하고, 부착기간도 장기간인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재범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법무부, <2008 : 한국 전자감독 10년사>, 2018년

범죄자들을 강력히 처벌하기 위한 소급적용 입법이, 되레 재범률을 높였다는 분석인 셈입니다.
 

처벌 강화의 역설


기자는 늘 범죄 현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뉴스에서 차마 전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범행 수법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누구보다도 범죄자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처벌 강화'는 기자들이 기사에서 자주 쓰는 수사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사건 기자 시절 트라우마에 가까운 끔찍한 기억이 몇 개 있습니다.

<사실은>팀은 통계의 망원경으로, 제도를 어떻게 보완해야 할 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잔인무도한 범죄자에 대한 '분노'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우선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 사례처럼 처벌 강화의 반작용이 거세져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면, 결과적으로 처벌 강화만으로는 그 효용이 별로 높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발찌를 차고서 또 범행하는 사건, 발찌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의 실패, 제도 무용성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두려워했으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부착 기간 연장, 일대일 전자감독 실시, 착용자의 편의성보다 훼손 가능성을 고려한 전자발찌 견고성 강화 등으로 처벌 수위는 높아져 왔습니다. '3년 소급 적용 입법'도 이런 처벌 강화 정책의 한 사례입니다. 

전자발찌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 왔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지선 선임연구원은 사실은팀과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외적, 상황적 통제나 강화된 처벌은 전자발찌 대상자의 저항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저항이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로 읽힙니다.
 

감시와 치료의 균형


전자발찌 감시 한계

전자발찌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주관 부서인 법무부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범죄자 관리는 쉽지는 않습니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됐지만 인력도 부족합니다. 관리에는 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강화된' 전자발찌 정책으로 전체적인 재범률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혹시 모를 단 한 명의 피해자를 막는 방식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처벌 강화 일변도 정책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의 재범률 1~2%를 낮추기 어렵습니다. 한 해 수십 명이 여전히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즉, '감시'와 '치료' 간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법무부의 <2008 : 한국 전자감독 10년사>는 "전자감독 대상자의 20%가 정신질환자이거나 정신질환 의심자로 파악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전체적인 재범률은 전자발찌로 현격히 낮추돼, 그 공백을 치료를 통해 상쇄하는 방식입니다. 전자발찌를 통한 '감시'로 방향을 잡고, '치료'를 통해 완결해야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자발찌 정책의 성공 관건은 '의무적인' 치료 요건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효과적인 심리 치료로 재범률을 낮추는 건 비용 면에서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산 절감 효과입니다. 
 
"형사제재를 받는 범죄자에게 치료처우가 적절하게 시행됐을 때 재범의 수는 현격히 줄어들 수 있으며, 미래의 피해자를 감소시킨다. …… 캐나다 정부가 연간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비용은 20만 캐나다 달러이며, 성범죄자 60명을 치료하는 비용은 1년간 성범죄자 1명이 발생하는 비용과 맞먹을 정도로 국가 재정 절감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 William L. Marshall, PhD , Liam E. Marshall , Geris A. Serran, <Rehabilitating Sexual Offenders : A Strength-Based Approach>, 2011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10년 펴낸 <범죄의 사회적 비용 추계 보고서>는 범죄 발생 한 건 당 드는 사회적 비용으로 강간 2억 원, 살인 173억 원, 약취유인 850억 원, 강도 4,500만 원으로 산정했습니다. 심리 치료 비용은 회 당 10만 원 안팎입니다.

(인턴 : 권민선, 송해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