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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자연재해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삼킨다

[마부작침] 자연재해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삼킨다

안혜민 기자

작성 2021.09.10 16:11 수정 2021.09.10 16: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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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자연재해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삼킨다
"아 오늘 하늘 완전 파랗고 미세 먼지 제로잖아~ 어제 비 왕창 온 덕분에~" 뒷 좌석에서 친구와 통화 중인 연교의 말을 듣자, 기택은 운전대를 꽉 쥔다. 심신이 피로한 탓인지 기택의 표정은 굳어있다. 연교가 말한 그 비가 왕창 온 덕분에 기택의 반지하 집은 침수됐고, 기택은 긴급대피소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이어가던 연교가 좋지 못한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막는다. 연교는 운전석의 기택을 한 번 쏘아보고는 창문을 내린다. 아마도 그 좋지 못한 냄새는 반지하 집이 침수되면서 기택이 오물이 가득한 흙탕물에 있었던 탓일 것이다. 흙탕물 샤워를 한 기택은 새 옷으로 갈아입을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아침 일찍 운전대를 잡았으니까. 뒷 좌석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기택의 얼굴은 싸늘해진다.

갑자기 무슨 소설이냐고요?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을 글로 풀어봤습니다. 왜 갑자기 <기생충> 이냐고요? 오늘 마부뉴스가 다룰 이야기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거든요. 최근 미국을 휩쓴 허리케인 아이다는 특히 뉴욕에 큰 비를 내리면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는데, 이들 대부분이 지하층에 사는 저소득층이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역대급 폭염을 겪은 캐나다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재난 피해도 역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죠. 그래서 오늘 마부뉴스가 다룰 이야기는 이겁니다.

"자연재해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삼킨다"
 

"센트럴파크 서쪽은 홍수 피해가 없어요"


Up here on Central Park West no flooding issues with the heavy rain continues

허리케인이 뉴욕에 비를 쏟아붓던 날, 미국 폭스 뉴스의 기상 전문 PD인 그렉 다이아몬드가 트윗 하나를 올렸어요. "센트럴파크 서쪽에 폭우가 내리지만, 홍수 피해는 없어" 정도의 느낌인데, 이 트윗에 트위터리안들의 집중 포화가 쏟아졌죠. "부자들은 배수 문제가 없으니까", "고오급스러운 동네에서 정보 알려줘서 고마워", "좋은 기반시설은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등등... 시니컬한 댓글들이 그렉의 트윗에 가득 달렸습니다. 그리고 <기생충>을 캡처한 짤도 함께 올라왔습니다. 연교(조여정)를 뒷좌석에 태운 기택(송강호)의 표정이 싸해지는 바로 그 장면이 담긴 짤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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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들어 네 번째 허리케인인 아이다는 심각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집계된 피해 규모만 해도 500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50조 원), 역대 미국 내 허리케인 피해 규모로 6위에 해당합니다. 뉴욕시 기상관측 이래 152년 만의 폭우가 내렸는데요. 뉴욕시 사상 처음으로 홍수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이에 통행금지령과 비상사태가 선포됐고요.

인명 피해도 컸는데요. 9월 8일 기준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77명. 미국 동부 지역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뉴저지에서는 가장 많은 27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뉴욕 주에서도 1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목할 건 뉴욕 시의 희생자들입니다. 현재까지 13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불법 개조된 지하실이나 지하 아파트에서 살던 저소득층이었습니다.

뉴욕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층과 이민자들은 불법 개조된 지하실에 많이 거주하고 있어요. 시 조례에는 지하실의 천장이 적어도 7피트 6인치여야 하고 창문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그걸 지키는 곳은 거의 없죠. 주택 소유자 입장에서는 조례를 지키지 않고 지하실을 불법 개조해 비교적 싼값에 세를 놓습니다. 살겠다는 사람이 있으니 돈이 됩니다. 이런 불법적인 공간에 비상 탈출구가 있을 리 만무하겠죠. 미처 홍수 경보를 전달받지 못한 사람들은 꼼짝없이 수마에 휩쓸리게 된 겁니다. 이런 와중에 그렉이 센트럴파크 서쪽엔 피해가 없다고 트윗을 올린 거죠.
 
Q. 뉴욕에는 얼마나 많은 불법 증축 지하실이 있을까?

불법으로 개조한 건축물이다 보니 공식적인 집계는 되고 있지 않아요. 외신 기사에서도 추정컨대 수만 개의 불법 지하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정도죠. 지역 사회 지원 사업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뉴욕의 프랫 센터(Pratt Center for Community Development) 자료를 살펴보면 2008년 기준으로 11만 4천여 명이 뉴욕의 불법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보다 규모가 더 클 거라고 얘기했어요.
 

폭염도 약자를 먼저 노린다


올해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미국과 캐나다에 엄청난 폭염이 휩쓸었던 것 기억나시나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데스밸리의 기온은 무려 54.4℃까지 올랐어요. 캐나다의 상황도 심각했어요.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리턴 마을은 이번 폭염 때 무려 49.6℃까지 올라갔어요. 리턴 마을은 폭염으로 인한 산불로 마을의 90%가 불탔을 정도였어요. 이번 북미 폭염을 두고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로 이번 여름 같은 극한의 기후 현상이 나타날 확률이 이전보다 150배나 높아졌다고 경고했죠.

폭염 역시 허리케인 아이다처럼 약자들이 가장 큰 희생자였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수석 검사관 이야기를 들어보면 폭염이 덮친 7월 첫째 주 일주일간에만 719명이 돌연사를 했는데,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환기가 잘되지 않는 집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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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정말 저소득층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지 수치적으로 분석한 논문도 있어요. UC 샌디에이고 대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을 살펴보면 한 카운티 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가장 부유한 지역보다 76% 더 뜨겁다는 결과가 있더라고요. 교육 수준을 두고 비교해보면, 가장 낮은 교육 수준의 지역이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의 지역보다 54% 더 뜨거운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 인구 비율이 높은 동네는 백인과 비 히스패닉 지역보다 더 뜨거웠고요. 한 마디로 말하면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이민자로 대표되는 소수민족 집단들이 폭염에 더 큰 고통을 받는다는 겁니다.

잘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 교육 수준이 높은 동네와 그렇지 못한 동네의 차이점은 뭐였을까요?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건 인구 밀도와 식물의 밀도였습니다. 초목의 경우 많으면 많을수록 그늘을 드리워 햇빛이 지표면을 달구지 못하도록 보호막 역할을 해 줄 겁니다. 게다가 식물 밀도는 불투수 면적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불투수 면적은 콘크리트나 시멘트처럼 포장된 땅, 즉 물이 침투할 수 없는 토지를 뜻합니다. 포장된 땅은 낮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을 흡수했다가 밤에 다시 뿜어내면서 도시의 온도를 높이거든요. 식물의 밀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열을 흡수할 수 있는 토지 면적이 적다는 뜻이니까 이것 역시 폭염 피해에 영향을 주는 거죠.
 

재해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라


우리나라도 2018년에 엄청난 폭염을 겪은 바 있죠. 서울은 39.1℃로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고, 강원도 홍천은 41.0℃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로 전국 최고기온을 경신했습니다. 당시 온열질환 환자가 급증했고,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요. 역시, 폭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의료급여 수급자와 상위 5분위 고소득층을 구분해서 온열질환 발생률을 시각화한 겁니다. 2018년, 저소득층에선 만 명당 21.2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고소득층은 7.4명만 발생했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연평균으로 살펴봐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차이는 4.8명 대 13.8명. 거의 3배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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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면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고, 추우면 보일러를 튼다."

당연한 말이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 있습니다. 냉난방기를 구입할 수도, 마음껏 전기료를 낼 수도 없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런 저소득층은 여름엔 더워도 참아야 하고, 겨울엔 추워도 견뎌야 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여름엔 덥고 습하고, 겨울엔 춥고 외풍이 드는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은 주택에 살 가능성도 높겠죠. 이른바 '에너지 빈곤층'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복지 정책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에너지 바우처'제도로, 전기, 도시가스, 지역난방, LPG, 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에요.

하지만 매년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 바우처 금액이 적지 않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제공된 에너지 바우처 금액은 181억 8,800만 원 규모인데 이 중 실제 사용이 된 건 141억 정도예요. 전체의 77.8%만 사용된 겁니다.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가 크다는 거죠. 실제 에너지 빈곤층에게 혜택이 가도록 제대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죠. 게다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 빈곤층의 정확한 규모를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어요. 관련된 통계도 제대로 집계하고 못하고 있고요.
 

양극화를 막기 위한 노력


재해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정책들이 필요합니다. 당장 태풍과 허리케인과 같은 수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배수시설을 개선해야 할 거고요, 폭염을 막기 위해 녹지를 더 많이 늘리는 식의 정책을 생각할 수 있겠죠. 이런 제도는 실제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거주 환경을 개선하는, 어찌 보면 큰 규모의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들고 개선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죠.

좀 더 긴급하게 지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은 피해를 본 분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원금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에너지 바우처도 한 사례가 될 수도 있고, 재난지원금도 포함될 수 있겠죠. 한 손엔 장기적 대책을 들고, 다른 한 손엔 긴급 대책을 무기 삼아 사회적 약자를 재해로부터 보호해야 할 겁니다. 기후변화를 일으킨 원죄 아닌 원죄로 앞으로 폭염과 태풍 피해는 이보다 더 심하면 심할 거지 적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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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가 준비한 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허리케인 아이다부터 2018년 우리나라에 닥쳤던 폭염까지... 자연재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데이터를 보고 다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본 기사는 마부작침 뉴스레터를 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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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혜민 디자인 : 안준석 인턴 : 김선경, 주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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