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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노력으로 '하늘을 나는' 거북이, 김병만

[그사람] 노력으로 '하늘을 나는' 거북이, 김병만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spring84@sbs.co.kr

작성 2021.09.04 08:08 수정 2021.09.05 09: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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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검 두 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길이 1미터 남짓한 칼은 생각보다 묵직했고 푸른 빛이 도는 칼날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칼로 종이를 자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칼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진검 베기를 배웠지만 쓸 일이 없어 가끔 수박이나 잘라먹는다고 농담을 했지만 이 사람 삶은 언제나 진검승부였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낙하산 하나에 매달려 뛰어내리고 시퍼런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정글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이 천대받기 일쑤인 세상에서 이 사람은 온 몸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온 사람이다. 몸을 써서 일하는 것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달인 김병만을 만났다.

그사람_16편 김병만 사진
2. 아버지는 거의 말이 없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잠시도 쉬는 법이 없었다. 부지런했지만 부지런할수록 가난은 징그럽게 가족을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큰 병을 앓았고, 큰누나는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했고, 여동생 두 명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가난, 빚, 빈농 같은 말들이 이 사람을 오래도록 지배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낙천적이고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들에게 가난 때문에 힘들어도 고개 숙이며 살지 말라고 했다. 그런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연예인이 된 듯한데 이 사람 몸 안에는 아버지의 피가 더 많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산골 동네에서 이 사람네만 자기 집이 없었다. 정부 지원으로 지었던 집을 빚 때문에 넘겨야 할 때 어머니는 하루를 울었다. 집 한 칸이 없어 남의 집을 전전하던 일에 한이 맺혔기 때문일까, 집 짓는 일,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목조 주택을 직접 짓기도 했고 콘크리트 주택 건축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적도 있고 건국대 건축학과 대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정글에서 지은 것까지 합치면 자기 손으로 지은 집이 100채가 넘는다고 했다.

콤플렉스를 말하자고 하면 한도 끝도 없는 사람이다. 가난했고,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키는 군대를 갈 수 없을 만큼 작았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 고향은 전주에서 오는 버스의 종점, 하루에 두어 번 버스가 다니는 후미진 산골이었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전주도 먼 도시였다. 면 소재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싸움꾼, 재담꾼, 재주꾼으로 유명했다. 싸울 때는 독하게 싸웠고, 웃길 때는 사람들의 배꼽을 빠지게 만들었다. 날랜 몸과 입담으로 학교에서 유명했지만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은 많지 않다. 다섯 시간 가까운 대화 중에 학교, 특히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는 대목은 거의 없었다. 고3 때 직업훈련원에 들어가 실습 과정을 마치고 전주에 있는 작은 기업의 배관설비공으로 취직을 했지만 말 그대로 쥐꼬리만 한 월급 받아서는 집안의 빚은커녕 이자도 갚을 수 없었다.

"제가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아무리 노력한다고 어디 가서 대기업 월급을 받을 것도 아니고… 그 때 저희 시골집 빚이 1억 2천만 원쯤 됐어요. '이렇게 해서는 방법이 없겠다. 그냥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도전을 한번 해 보자' 그래서 이 길을 선택한 거죠."

그사람_16편 김병만 사진
1995년 어머니가 마련해준 30만 원과 신문에서 오려낸 연기학원 연락처를 들고 무작정 서울에 왔다. 배삼룡, 구봉서 같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서울에 가기 전날 친구에게 말했다. "나, 서울 간다,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는 안 돌아온다." 고향으로 다시 오느니 죽고 말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지만 서울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팍팍하고 힘들었다.

3. 2002년 KBS 공채 17기 개그맨이 될 때까지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 건설 현장 막노동은 기본이었고 고물 장수, 신문 배달, 탤런트 김형일의 매니저도 해봤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아르바이트에 빠지지는 않았다. 혹시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자신이 가야 할 희극 배우의 길을 잊을까 경계했다. 누구에게도 손을 벌릴 수 없을 때 고향 집에 돈을 부탁하면 어머니는 1만 원, 2만 원을 보냈다. 식당에서 일당으로 받은 돈, 이웃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 빌려온 돈이었다. 지하 셋방에서 불어터진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울 때 슬픔과 서러움으로 몸을 덜덜 떨며 울었다.

"라면을 정신없이 먹다가 어느 순간 그 상황이 너무나 초라한 거예요… 몸속 깊숙한 곳에서 갑자기 울음이 치밀어 오르는데 그걸 목구멍에서 억지로 누르고 있으니 온몸이 덜덜 떨리는 거죠."

돈은 없는데 술 생각이 간절할 때면 빈 병을 주워 소주와 바꿔 마셨다. 술을 마시면 거울 속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너는 왜 그렇게 내성적이냐. 좀 자신감을 갖고 해봐. 뭘 쳐다봐 임마…' 혼자 그렇게 저랑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적당히 취하는 것은 나쁜 거 같지 않아요."

무명 연극배우로 5년을 살았다. 그 시절 관객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고 그 기억이 이 사람을 버티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절 '김병만은 천재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스스로도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는 없는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은 맞는데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느린 거 같아요. 느리지만 나중에는 추월하는…그래서 거북이를 좋아해요."

그사람_16편 김병만 사진
개그맨 시험은 7번, 서울예전 입시 6번, 백제예대 3번, 비행기 조종사 시험은 30번 떨어졌다. 이쯤 되면 낙방의 달인이다. 숱하게 많은 오디션과 면접과 시험에서 떨어진 것은 무대 울렁증이나 정작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 몸이 굳어 버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예인이 되는데 필요한 재능과 끼 자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웃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이 사람 얼굴에서 재능보다는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연예인 지망생 이미지가 잠시 떠올랐다. 돌아가자니 너무 멀리 왔고 계속 가자니 연예인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막막한 시절이었다. 헛된 꿈 그만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오래도록 대화가 없었다.

"고향에는 2년에 한 번 정도 갔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그만해라, 내려와라' 그러셨는데 저는 '제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와는 어떤 이야기도 안 하겠습니다' 그런 거죠. 고향에 갔을 때도 얼굴 뵙고 '저 올라가요' 하면 대화 끝이었거든요."

개그맨이 되어 고향에 집 지어 드리려고 땅을 구입할 무렵 아버지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알코올성 치매도 진행 중이어서 아들이 성공했다는 말도 알아듣지 못한 채 2011년 타계했다. 코미디언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일로 울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믿는 이 사람도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울었다.

그사람_16편 김병만 사진
4. 2007년 12월부터 약 4년 동안 연예계는 개콘의 세상, 달인의 세상, 김병만의 세상이었다. 이 코너에서 2백 50개 분야의 달인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입담으로 천연덕스럽게 엉터리 달인을 연기하더니 점점 진짜 달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태권도, 쿵푸, 합기도 등 온갖 무술로 단련된 사람이라고 해도 저런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것을 너끈히 해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사다리 타기의 달인' '링의 달인' '줄타기의 달인' 같은 코너는 화면에 '따라하지 마세요'라는 자막이 나갈 만큼 자칫하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연기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한다고 했지만 보는 사람들은 매번 손에 땀을 쥐었다.

그 시절 이 사람은 연기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노동하는 사람, 고행하는 사람'이었다. 말과 글이 세상을 부리고 손과 발은 말과 글의 종 같은 존재가 된 시대에 온전히 몸으로 일하는 이 사람의 존재는 각별했다. 몸을 써서 웃기는 이 사람 연기에 거짓이나 눈속임 같은 것은 없었다. 얍삽하게 잔머리를 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달인>은 푸대접받던 몸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개그 프로였다. 2010년 <인물을 통해 살펴본 한국 슬랩 스틱 코미디의 특성 연구- 코미디언 김병만을 중심으로>는 논문이 나올 만큼 이 사람 연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었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충분한 평가를 받은 거 같지는 않다. 몸을 써서 일하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래된 편견이 이 사람 연기에 대한 다소 인색한 평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쩌다 운이 좋아 벼락스타가 된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 연기에 눈물과 땀이 배어 있지 않은 연기는 없다. 타고난 신체적 능력을 살린 것도 있었지만 견디기 힘든 것을 견디는 방법으로 남을 웃기기도 했다. 남을 웃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개그맨들이 재치와 익살로, 어떤 이는 타고난 용모로 남에게 감동을 주고 웃음을 줄 때 이 사람은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때로는 자신의 몸을 학대해가며 남을 웃기고 울렸다.

2011년 SBS에서 방송한 <키스&크라이>에 출연했다. 이 사람을 비롯한 열 명의 스타들이 짝을 지어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이 프로그램에서 이 사람 연기가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넘어져 얼음판을 뒹굴기도 했고 연습했던 동작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지만 땀과 눈물로 분장이 범벅이 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말할 때 이 사람은 아름답게 보였다.
 
"아쉽습니다. 어제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리허설 때 실수했는데 본 게임에서도 실수를 했습니다. 연습한 만큼 안 돼서 아쉽습니다."<키스&크라이> 소감 중

부상으로 인한 통증으로 심사평을 들을 때는 아예 서 있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김연아만이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이 사람의 진정성에 감동해 울었다.
 
"김병만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도전과 노력이예요. 평발이라 스케이트화를 신으면 그렇게 아프대요. 그런데도 밤마다 와서 죽으라고 연습을 하는 거예요. 연습을 하면 반 죽을 때까지 해요. 그러니까 다른 출연자들도 이 사람을 보고 우리도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어서 그 프로가 잘 됐어요." 정순영, <키스&크라이> 연출자

5. 김병만에 의한, 김병만을 위한, 김병만의 프로가 정글의 법칙이다. 가야 할 곳과 같이 갈 사람을 정하는데도 이 사람 생각이 적잖게 반영된다. 정글 현장에 가면 촬영과 제작에도 관여한다. 40-50명에 이르는 출연진과 제작진에서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리더다. 2011년 이후 지금까지 46차례에 걸쳐 40개가 넘는 국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존 밀림, 북극 툰드라 지역, 히말라야 설원, 아프리카 정글, 남태평양 섬 같은 원시와 야생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있는 곳을 헤집고 다녔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툰드라에서 길을 잃고 이틀을 헤매기도 했고, 칼을 든 현지 주민들에게 쫓겨나기도 했고, 깜깜한 밤중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뻔했고, 배가 뒤집혀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야생 메뚜기를 잘못 먹어 기도가 막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다.

김병만 그사람
<정글의 법칙>은 대본과 큐시트가 없다. 편집을 한다 해도 정글에서는 출연자를 가리거나 분칠할 수 있는 수단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사람 본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리더, 위험 앞에서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인 동시에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바닷속을 누비는 모습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오랜 동안 갈고닦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때로는 승부욕의 화신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추성훈이 출연했을 때 두 사람의 신경전이 볼만했다. 프로그램에서 이 사람이 돋보이는 것은 정글에서 가장 능숙하고 경험이 많고 무엇보다 가장 많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김병만 씨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굉장히 높거든요. 그래서 정말 준비가 철저해요. 자신은 진짜 목숨까지 걸고 온갖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이걸 하고 있는데 일부 후배들이 의욕을 보이지 않거나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여기 놀러 왔느냐고 그럴 때가 있지요." 김진호 <정글의 법칙> PD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족장이긴 한데 모든 사람들과 두루 친하고 너그러운 리더는 아닌 듯하다. 어떤 때 보면 까탈스럽고 예민하다. 본인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정글에 가면 저는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별일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친 때도 있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을 보고 겪었기 때문에 동료 출연자들에게 조심하라고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책임감으로 어깨는 무겁고 다녀온 뒤에 고맙고 보람 있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 들어요. 정글에서 저는 친근한 엄마라기보다 거리감 있는 아빠 같은 존재가 되는 거 같아서 때로는 외롭기도 합니다."

정글의 법칙 방송화면
다녀온 지역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않았다. 글로벌한 시각이 꼭 첨단의 지식과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사람 역시 누구 못지않게 글로벌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다녀온 세상과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차이를 건축 설계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어떤 느낌이냐면요. 오지의 사람들은 설계도 없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 문명사회 사람들은 아주 복잡한 설계도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입니다. 이 말을 해서 상대방 기분이 좋을 건가 나쁠 건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건가 말 건가를 따지는 거죠."

원시 환경에서 길게는 2주 이상 함께 지내면 당연히 친해질 것이다. 때로는 생사고락을 같이 한 전우 같은 느낌이 들 테니 '족장'을 중심으로 한 인맥이 생길 법도 한데 연예계에 '김병만 사단'이 있다는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밀어주고 당겨주며 무리 지어 다니는 것에 능하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외국에 가는 시간이 더 많았고 출연자보다는 피디, 스태프들과 더 자주 만났다. 그들과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즐긴다.

"원래 제 성격이 막 놀자 이런 성격이 아니고 술자리도 '부어라 마셔라'는 잘 하지 않거든요. 몇몇 사람과 개인적으로 통화하고 단톡방에서 이야기하고 연말 되면 동료 출연자에게 문자 한 번 돌리는 정도입니다. 우리 편이니 누굴 데리고 가자 이러지는 않는데 가끔 이 친구랑 가면 좋겠다 추천은 하죠. 같은 곳에 다녀온 팀끼리는 잘 뭉쳐요. 저는 그렇게 하려면 수백 명씩 뭉쳐야 해요."

6. 모두 4종의 비행기 조종 면허를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까지 따서 이제 14인승 상업용 비행기를 몰 수 있다. 몇 사람과 돈을 모아 스카이다이빙에 사용할 수 있는 비행기를 구입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다이버들을 태우고 비행을 한다. 필요하면 제트기 조종사 자격증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3년에 걸쳐 무려 서른한 번이나 시험을 봤다. 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필기시험이 늘 문제였다. 학력 콤플렉스, 영어 콤플렉스를 극복하자는 마음도 있었다.

[나출]31번 도전 끝에 파일럿 꿈 이룬 김병만
"언젠가 누가 그러는 거예요. '너는 실기는 모르겠는데 이론은 힘들 거야' 그 말에 꽂혔습니다. 그 순간 제 자신에게 '네가 이 비행 시험에 합격하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한 거지 못한 게 아니다'하고 목표를 세웠어요."

몸을 쓰는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웠지만 머리 쓰고 뭘 외워서 시험 보는 일은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조종사 면허를 따려면 다섯 과목의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자신이 한 일 가운데 가장 많이 노력한 것이 비행기 조종 면허를 딴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시험공부를 했고 해외 촬영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영어 단어를 외웠다. 학교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영어가 가장 허들이 높았어요. 집에서 눈에 보이는 곳에 비행 관련 영어 단어를 붙여 두고 무조건 외웠어요. 다른 수험생들은 한꺼번에 다섯 과목에 도전할 때 저는 두 과목씩만 본 거예요. 두 과목 중에 한 과목만 돼라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이렇게 하다 보니 필기시험을 서른 번 넘게 본 거예요."

돈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증명하려는 과정이었다. 2017년 스카이다이빙 훈련 중 척추를 다친 이후 더 이상 몸을 격하게 쓰는 슬랩스틱 연기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주는 우울감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김병만 그사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뭔가를 배울 때 거기에 흠뻑 빠지는 것으로 삶이 주는 시름을 잊곤 했다. 배우는데 돈과 시간,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사업용 다발기 면허를 따는 데만 1억 원 가까운 돈이 들었고 스카이다이빙에 필요한 낙하산 4개를 구입하는 데 6천만 원을 썼다. <정글의 법칙> 촬영이 끝나면 미국이나 동남아 등으로 스카이 다이빙, 스쿠버 다이빙 교육을 받으러 떠나는 게 거의 정해진 수순이었다. 골프를 빼면 즐기기 위한 취미는 거의 없다. 언젠가는 방송에서 쓸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준비한다. 쉬는 날은 항상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자격증이 서른 개가 넘는다. 비행기 조종을 포함해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다 몰 줄 알고 피겨 스케이팅 초급 지도자 자격증도 있다. 얼마 전에는 에어컨 설치 기사 자격증을 따서 한 달에 한번 무료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김병만 그사람
"제가 끊임없이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은 제 만족도 있지만 일종의 증거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도 이만큼 했다'라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젊은 사람들에게 도전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노력을 비웃는 세상이다. 너의 실패가 네 탓이 아니라 남의 탓, 사회 탓이라며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사람들이 환호를 받는다. 노력은 이제 노~오력 이라고 조롱당한다. 멈추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목적지에 이른다는 거북이의 미학은 환상이거나 미몽에 가깝다. 그런 세상에서 이 사람의 존재는 이질적으로 보인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사람이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거북이라고 했다. 정글에서 별의별 것을 다 먹었지만 거북이는 먹지 않았다. 법인 이름도 하늘을 나는 거북이라는 뜻의 <SKY TURTLE>이라고 붙였다.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나를 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니까 다 되잖아' 라고 말하는 것은 요즘 시대와는 안 맞는 면도 있는 거 같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 아닌가요?

"지금은 그렇게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죠. 그래서 제가 젊은 친구들과 만났을 때 제일 강조하는 것은 그 일을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하는 거죠. 한순간의 호기심이나 혹시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이러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하라는 거죠… 구체적으로 권하는 것은 혼자 여행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 느끼는 것이 많고 꿈의 크기도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행할' 돈이 없어요' 하면 할 말이 없는데 저도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게 아니고 제 스스로 엉금엉금 기어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김병만 그사람
7. 카메라가 꺼진 상황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 친구와 동료 이야기, 돈 이야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사람이기에 짊어져야 할 부담, 성공의 과실을 나누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 배신이 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듯했다. 대화 중에 스트레스라는 말이 수시로 나왔다. 스트레스의 포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완벽해야 된다는 생각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지만 습관이라는 말보다는 강박이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였다. 집에 있을 때는 하루에도 서른 번 넘게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생각이 많기도 하고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이 들더라도 깊이 잠들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이고, 성공의 과실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성공을 만끽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사람_16편 김병만 사진
-극한 스포츠를 하거나, 정글에 가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집 짓는 것에 몰두할 때 스트레스를 잊는다고 했는데 스트레스가 얼마나 강하길래 그럴까 싶습니다.

"누워 있으면 온갖 생각이 다 몰려오거든요. 그런데 극한 스포츠를 할 때는 그 생각밖에 안 하니까 여러 걱정, 근심이 사라지는 거죠. 또 위험한 기계를 가지고 집중해서 뭔가 만들면 열 시간은 금방 가거든요. 사실 그런 게 없어야 되는데 이건 습관인 거 같아요."

스카이 다이빙은 이 사람에게 마약 같은 것이었다. 하늘에서 5백 20번 뛰어내렸다. 그러다가 척추를 크게 다쳤고 평생 하반신을 못 쓸 뻔했다. 여전히 허리와 다리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유연성은 다치기 전의 50% 수준이고 늘 부상을 걱정하며 지낸다. 이 때문에 한동안 정신적으로 우울했다. 더 이상 액션 연기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과감하게 몸을 쓰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제대로 하기 힘들어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행기 조종으로 그 우울증을 이겨냈다는데 완전히 극복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다. 지금은 소속사와의 약속 때문에 더 이상 하늘에서 뛰어내리지는 않는다.

김병만 그사람
-본인이 추락하는 사고 영상 보셨죠? 제가 만약에 그런 추락하는 경험을 했다면 다시는 안 하고 싶을 거 같습니다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갈 때마다 하고 싶죠. 지금은 못 하니까 그걸 비행기 조종으로 푸는 거죠. 그런데 비행기 모는 것과 하늘을 나는 것은 다르죠. 하늘에 누워서 (내가 뛰어내린) 비행기가 멀어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최고예요."

혼자서 무엇이든 할 거 같은 인상이었는데 항상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왔다는 이 사람 말은 다소 의외였다.

"여태까지 혼자 와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에게 제 마음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안정을 찾고 그랬어요. 예전에는 (이)수근이가 그런 상대였는데 지금은 수근이도 바쁘니까…"

-불안 때문에 그런 건가요.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생긴 증상 같은데…요즘에는 불안한 느낌이 더 해요. 제가 <정글의 법칙>을 한 10년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막히니 제가 멈춰버린 느낌이죠. 뭐라도 해야 되는데 이렇게 멈춰 있는 게 되게 불안한 거예요."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자신의 시계가 멈춰버린 느낌이다. 지난 5월 <정글의 법칙>이 끝난 이후 칠봉산 공방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연예계에 들어온 이후 한 달 이상 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정체된 느낌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8. 이 사람과 만남은 지난 8월 26일 경기도 양주시 칠봉산에 있는 개인 사무실 겸 공방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에 12만 평 규모의 정글 테마 파크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4년 전부터 구상해온 일이다.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구름다리를 만들어 땅을 밟지 않고 숲을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정글을 비롯한 다양한 외국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전통 공연을 볼 수 있는 문화 공연장도 구상하고 있고 자신이 그동안 해외에서 수집해온 물건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 중이다.

"제가 정글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나이 먹고 귀농해서 집 앞에 텃밭 가꾸고 자연인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나 했을 텐데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동남아를 느낄 수 있는, 아니면 외국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죠."

김병만 그사람
정글 테마 파크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테마 파크사업은 이 사람 혼자만의 프로젝트가 아니지만 테마파크 안에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고 했고 자기만이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확실히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사람이다. 어렸을 때 힘들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작은 꽃이라도 오래 피어 있고 싶다고 했다.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흘린 땀에 비하면 주어진 보상이 작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제가 받은 보상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바람이 있다면 이 보상이 죽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진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게 어렸을 때 힘들었던 가난이거든요. 일확천금을 하기보다는 이걸 영원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옥탑방에 살던 시절 길 건너 편에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 골프 연습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모 잘 만난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10년쯤 지난 어느 날 그 골프 연습장에서 공을 치다가 그 옥탑방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묘한 기분이 든 적이 있다고 했다. 내 처지가 이렇게 달라졌구나 싶었고 나도 성공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고향에 가지 않은 지 꽤 됐다. 고등학교 동문 가운데 이 사람이 가장 유명한 사람일 텐데 모교 행사나 동문 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 고향은 꿈에도 그리운 곳은 아닌 모양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곳이지만 돌아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자신을 키워 준 곳이지만 가난과 슬픔, 수치의 기억이 더 강한 곳이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뉴질랜드에 지인과 함께 적지 않은 규모의 목장을 마련해 수시로 찾지만 2백 킬로 남짓한 곳에 있는 고향은 잘 찾지 않는다.

고질이었던 무대 울렁증은 이제 사라졌다고 했지만 콤플렉스를 온전히 극복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다. 자존심과 자격지심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게 지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자신이 항상 빛나는 자리에 서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라하게 보이는 자리는 사양한다. 2020년 SBS 연예대상 후보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고 했다. 상을 받을 가능성도 없는데 이름만 올리는 것은 싫다는 뜻이다.

인기 개그맨을 만나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유쾌한 대화였지만 폭소가 연발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유난히 눈이 컸는데 순둥이의 눈빛은 아니었다. 웃을 때는 부드러웠지만 눈을 부라리면 거칠게 보일 눈빛이다.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빛 연기도 가능할 거 같고 천연덕스럽게 능청을 떨며 관객들의 폭소를 끌어낼 만한 눈빛인데 자신만의 생각이 100% 들어간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사람_16편 김병만 사진
어느새 지킬 것이 많아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몸을 쓰는 일이 조심스럽다고 말할 때, 지금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말할 때 그런 느낌이 얼핏 들었는데 이 사람 상체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복근이 탄탄했다. 체육관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삽질, 망치질, 괭이질로 다져진 근육이라고 했다. 몸을 쓰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니 이 사람 몸에 군살이 붙는 일은 없을 것이다. 1975년생, 지키는 것을 말하기에는 일러 보이는 나이다. 하늘에서 몸을 날려 허공에 몸을 맡기며 환하게 웃던 이 사람이 도전 본능을 잊을 리 없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달인 시절부터 이 사람을 응원해준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갖고 있는 기대이기도 하다. 

<이 인터뷰는 지난 8월 26일 경기도 양주에 있는 김병만씨 개인 사무실에서 양만희 논설위원과 2:1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 김병만 씨와의 인터뷰 풀영상은 SBS 뉴스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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