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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이런 리더십…아프간 떠난 마지막 미군은 사단장이었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미군이 가르치는 리더십


아프간 현지 시각 8월 30일 밤.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활주로에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철군 시각에 맞춰 최후의 병력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간인 소개작전이 마무리되고 난 활주로에는 마지막 C-17 수송기 다섯 대가 카불을 떠나는 미군 병력-육군 82 공수사단 등 5~6백여 명-을 태우고 있었다.

[뉴스쉽] 미 육군 82공수사단, 카불 떠나는 수송기에 탑승하는 모습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야경) - 큰 파일, 미 국방부 배포

시간과 공간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많은 기밀서류와 장비를 싣고, 가져갈 수 없는 무기와 장비는 철저히 파괴해 탈레반이 활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숨가쁜 상황이었다. 협의된 철수시한까지는 탈레반이 공항 외곽을 경비한다고는 했지만, 탈레반과도 갈등관계인 IS의 테러가 지속되는 상황. 어디서 무슨 총알이 날아올 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진한 작업을 처리하다 낙오하는 병사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이 수송기가 이륙하고 나면 더이상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오는 교통편은 없기 때문이다.

기체 안팎에서 인원 확인과 주변 점검을 마친 마지막 군인이 활주로를 뚜벅뚜벅 걸어 수송기 트랩에 오르는 모습이 기내 대기중이던 알렉산더 버넷 상사의 야간 투시경 카메라에 찍혔다.

[뉴스쉽] 크리스 도나휴 미 육군 82공수사단장 -카불 떠나는 마지막 수송기에 탑승하는 모습 (1536x1536) 대표적인 야간투시경 사진
그가 탑승하자 수송기는 고래의 입 같은 트랩을 닫았다. 그가 무전으로 조종사에게 지시했다. "자, 뜨자! (Flush the force!)"

수송기 다섯 대가 잇따라 활주로를 달려 카불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현지 시각 8월30일 23시 59분. 바이든 대통령이 "변경은 불가하다"고 밝힌 철군 시한 8월 31일을 1분 앞둔 순간이었다.

수송기 마지막 탑승자는 기내 무전을 통해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무는 잘 끝났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이상은 미국 방송과 군 관련 매체들이 전한 마지막 철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처음 미 국방부가 공개한 야간투시경 사진을 봤을 때, 느낌이 묘했다. 카불 공항에서 보도된 그간의 컬러 사진들은 늘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모습이었다. 탈출하려는 현지인들의 아우성, 그들을 물리치려는 탈레반 군인들의 폭력,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서방군인들의 안간힘이 뒤엉켜 있었고, 사진에서 먼지와 피비린내가 엉킨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단조로운 녹색의 동그란 사진 속 군인 한 명의 모습은 초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허탈하고도 고요한 느낌이었다.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었다. 미국은 이러려고 20년 전쟁을 했나. 마치 달을 떠나오는 마지막 우주인의 모습 같구나... 그리고 그런 상념들은, 이 마지막 군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뒤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이 마지막 탑승자의 이름은 크리스 도나휴. 미 육군 2성장군으로, 카불 철수작전을 수행한 82공수사단의 사단장이었다.

소총 들고 마지막 탑승한 사단장... 주한미군서 시작해 '델타포스'서 성장

크리스 도나휴는 카불 주둔 미군의 최고 책임자였다. 카불 상황을 관리하는 82공수사단의 사단장이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피터 베이슬리 해군준장이 이끄는 네이비 씰 등 미군 잔여병력들을 통솔해 8월14일부터 12만2천 명을 카불에서 소개하는 철수작전을 지휘하고, 모든 병력이 이상 없이 탈출기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탑승해 문을 닫았다.

군대 안 가본 사람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투 스타 장군님' '사단장'이라는 계급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그런데 이 사단장의 모습을 보라. 마지막으로 트랩에 오르는 그의 옆이나 뒤에는 부관도, 호위병력도 없다. 그의 손에는 지휘봉이 아니라 M4 카빈 소총이 들려있을 뿐이다. 번쩍이는 계급장도, 검은 가죽 허리띠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휘하의 여느 공수부대원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사진을 본 우리나라의 군필자들 사이에선 이런 물음이 피어올랐다. 만일 이게 한국군이었다면, 마지막으로 '이상 무'를 외치고 탈출 비행기에 탑승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크리스 도나휴는 1969년 8월13일생, 만 52세다. 우리로 치면 586의 끝자락인 88학번 나이다.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그의 첫 임지는 한국이었다. 미8군 2사단에서 소총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문무를 겸한 엘리트 자원으로 인정받은 그는 2001년 9.11 테러의 순간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 수행 요원으로 워싱턴 DC에 있었다. 2002년에는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에 자원해 선발됐고, 이후 아프간, 이라크 등 온갖 험난한 전장을 누비며 특수전 분야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냈다. 군 펠로우십에 선발돼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 미 육군 내에서도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82공수사단(82nd Airborne Division)의 사령관에 임명됐다. 그는 82공수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장교가 사단장에 임명된 건 100년 넘는 부대역사에서 그가 네번째였다. 카불은 그의 18번째 임지였다.

사단장도 함께 뛰어내린다: 미 육군 82 공수사단의 전통


(사진: 2002년 아프간 나리자에서 작전중인 82 공수사단. 게티이미지코리아)

82공수사단장 자리는 미국 육군에서도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자리가 아니다. 82 공수사단은 1차세계대전 중인 1917년 8월25일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보병부대로 창설돼 올해로 104번째 생일을 맞은 유서깊은 부대다. 당시엔 부대가 창설되는 주의 주민들 위주로 병력이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부대는 당시 미국내 48개 모든 주에서 징집된 신병으로 구성돼 유럽대륙에서 실전에 투입됐다. 그래서 'All American'이라는 명칭이 붙었고, 지금도 부대마크에 A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AA 로고 주위로 새겨진 전쟁 이름들을 보면 이들이 갖는 자부심을 알 수 있다.)

1차대전 당시에는 보병부대였는데,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히틀러의 선전포고로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된 1942년의 8월, 미 육군 최초의 공수 사단으로 전환됐다. 당시 사단장이 매튜 리지웨이 장군이다. 낙하산 메고 훈련한 지 2년이 채 안 된 1944년 6월, 82공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된다. 리지웨이 장군도 부하들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낙하해 33일간의 전투를 치러 냈다. (리지웨이는 1950년말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파죽지세로 밀고내려오던 중공군에게 반격을 가하고 전세를 되돌린 리지웨이 장군이 바로 이 사람이다.)


이후에도 미군 전쟁사에 남는 수많은 전투를 치러낸 이 부대는 미 육군에서도 가장 뛰어난 지휘관들의 산실이 되었고, 끈끈하고 강한 공수부대 조직문화를 만들어 냈다. 사단장부터 낙하산을 메고 전장으로 뛰어내리는 부대 전통은 2020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크리스 도나휴 소장이 강하 직후 낙하산을 접는 모습)

[뉴스쉽] 강하훈련 후 낙하산 접는 크리스 도나휴 82공수사단장
작전지역인 카불에서 마지막 떠나는 사람은 최고지휘관인 자신이어야 한다는 크리스 도나휴의 결정은 미군의 리더십 문화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것이라고, 포트 레이븐워스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의 데이빗 코터 교수는 말한다. " 작전을 마치고 귀환할 때에도 아군 지역으로 넘어오는 마지막 탱크는 지휘관의 탱크다." (미국의 군 관련 매체인 Task & Purpose 인터뷰)

크리스 도나휴 본인이 부대의 문화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지난 6월 방송된 미18공수군단 팟캐스트에서다.

"적진 깊숙한 곳에 투입돼 위험한 작전을 벌여야 하고, 많은 경우 포위되어 싸워야 하는 공수부대원들은 강한 유대감을 가진 공동체다. 우리는 스스로를 'LGOP- little groups of paratroopers- 한 줌도 안되는 공수부대 놈들'이라고 부른다. 이건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가 우리 선배들을 가리킨 말이다. 숫자도 많지 않은데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히고,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는 절망감이 담긴 표현이다. LGOP 안에서는 계급이 따로 없다. 우리 사단에서 리더들은 가장 먼저 뛰어내리고 가장 나중에 먹는다. 항상."

이런 리더십을 한마디로 표현한 문구가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이다.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대에서 처음 비롯된 말이라고 하는데, 위험한 환경에 뛰어들어 임무를 완수하는 집단들에서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말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공수부대 못지 않게 최전선에서 몸을 던지는 미 해병대의 장교들 또한 '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 정신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군인들이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 미군 장교들의 리더십 격언

리더십에 관한 세계적 저술가 사이먼 사이넥은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Leaders Eat Last)"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이 책의 제목은 그가 예비역 해병 중장 조지 J.플린 장군과 나누던 대화에서 나왔다. 플린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 해병대원들은 최하급자가 가장 먼저, 최상급자가 가장 나중에 배식을 받는다. 해병대원이라면 누구나 그냥 그렇게 한다. 그뿐이다. 해병대에서는 으레 리더가 제일 마지막에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신의 필요보다 기꺼이 타인의 필요를 우선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야말로 리더십에 따르는 진정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 영감을 얻어 많은 리더십 관련 사례들을 분석한 사이넥은, 조직 구성원이 리더에게 갖는 신뢰란 '생물학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뉴스쉽] 사이먼 사이넥, 리더에 대한 신뢰는 생물학적 반응이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저자)

리더십이란 리더의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 하에 있는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뉴스넷] 사이먼 사이넥 (흰 셔츠)- 해병대에서 리더십은 지위 계급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책 본문)

이러한 미 해병대 리더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지휘관이 있다. 해병대 4성장군에 이어 미국 제26대 국방장관의 자리에 올랐던 짐 매티스 장군이다. 이름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주 불렀던 그의 별명 '미친 개 (Mad dog)'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많은 전투를 지휘한 그는 "Call Sign Chaos: Learning to lead"라는 제목의 자서전 겸 리더십 책을 썼다.

[뉴스쉽] 짐 매티스 (제임스 매티스) 회고록(자서전) -콜사인 카오스 (Call Sign Chaos) 책 표지 - 리더십, 크리스 도나휴

카오스(혼돈)는 무전에서 그를 일컫는 호출부호였다. 그가 대령이던 시절 부하들이 붙여준 것으로, 'The Colonel Has An Outstanding Solution (대령님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뛰어난 해법을 갖고 있다)'는 문장의 줄임말이었다. 자신은 적군에게 혼돈(chaos)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이기는 존재라 하여, 그는 이 호출부호를 마음에 들어 했다. ('미친 개' 역시 부하들에게가 아니라 적군에게 그만큼 사나운 존재라는 뜻의 별명이었지만 그는 이 별명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3C : '전쟁의 성자'가 말하는 리더십의 요체

매티스는 불패의 용장인 동시에 학식도 깊은 장군이었다. 군 후배들은 그를 '전쟁의 성자' '전사 수도승'이라고 불렀다. 손자병법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같은 고전부터 시작해, 동서고금의 전쟁을 다룬 역사와 철학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야 전쟁이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하고, 전쟁에 투입되는 부하들의 소중한 목숨을 헛되이 날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후배 장교들을 위해 매티스는 리더십의 요체를 3C로 압축했다. 3C란 Competence(능력), Care (돌봄), Conviction (확신)이다. 혹시 앞선 내용을 읽으면서 '그래도 군대란 전쟁에서 임무를 완수해 내야 하는 조직인데, 그래서야 명령이 먹히나' 하고 시큰둥하셨던 분이라면 매티스의 다음과 같은 성찰에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한다.

"3C의 첫번째는 능력(competence)이다. 기본에서 뛰어나야 한다. 임무 수행 대충하지 말라. 확실하게 마스터해야 한다. 물론, 실수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 인류역사에서 마지막 완벽한 인간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지 오래다. 정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실수에서 배워서 그 다음에 잘 해라.

두번째는 Care다. (필자 주: 이 단어는 일단 '돌봄'으로 옮겼는데, 보살핌, 신경 씀, 주의를 기울이고 챙겨 봄 등 여러가지 뉘앙스를 담고 있는 말이다.) 집에서 어린 동생에게 어떻게 하는가. 동생이 다치지 않게 주의하고, 어떻게 자라나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나.

네가 부하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쓰는지 부하들이 알게 되면, 너는 그들이 실망스러울 때 직설적으로 강하게 얘기해도 된다. 부하는 자신의 성격, 자신의 꿈, 자신의 발전에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는 상관을 저버리지 않는 법이다.
네 병사들은 어리지만, 해병대에 자원해서 입대한 청년들이다. 그러니 너무 오냐오냐 할 건 없다. 여기가 생명보험회사가 아니라는 건 그들도 안다. 비판할 점은 솔직하게 비판하라. 나쁜 태도는 날려버리되, 전사로서 필요한 사내다움은 남겨두어라.

사진은 2001년 아프간 침공 당시 칸다하르에 입성하는 짐 매티스, 당시 제1해병원정여단장.

부하를 편애하지 말라.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재를 높이 평가하라. 겁쟁이 말을 다그쳐서 나아가게 하는 것보단 용맹한 말의 고삐를 당겨서 자제시키는 것이 쉽다. 네 병사들과의 사이에 거리는 항상 지켜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걸 잊지 말라. 그 선에 최대한 가까이 가되, 지휘관으로서의 권위는 1온스도 잃어선 안된다. 너는 그들의 친구가 아니라, 코치이고 명령권자다.

세번째는 신념(conviction)이다. 이는 물리적인 용기보다 더 어렵고, 더 깊은 것이다. 네가 어떤 것을 지키고, 어떤 것을 지키지 않는지, 부하들은 금방 안다. 너의 원칙이 뭔지 명백하게 밝히고, 확실하게 지켜라. 너의 원칙이 그런 거였어? 하고 부대원들이 놀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장교로서, 너는 이 전투 하나만은 꼭 이겨야 한다. 네 부대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투 말이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이 전투에 나가서 이겨줄 것이다. 리더십이란, 네 부대원들의 영혼에 가 닿아서 책임과 목적 의식을 불어넣어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 매티스 회고록 "Call Sign Chaos"에서 번역, 인용)

"이들은 패잔병 아닌 영웅"...미국사회가 철수병력을 대하는 방식

1,2차 걸프전, 2002년 아프간 침공 등 수많은 전쟁에서 적군을 벌벌 떨게 했던 매티스였지만, 전쟁은 현실적인 목표에 대해 제한적으로만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작은 목표라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전면적이고 충분한 자원 (무기, 병력, 자금, 동맹의 지원 등)을 투입해야 헛된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매티스는 그래서 조지 H. W. 부시 (이른바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합참의장의 1차 걸프전을 모범적인 전쟁으로 꼽았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선에서 군사력 행사를 절제할 줄 알았고, 그런 목표 수행을 위해 충분한 자원을 제대로 조직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아군 희생을 최소화했으며, 스스로 천명한 시한에 쫓기는 아마추어적인 짓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 한미 독수리훈련 축소

그런 그의 판단기준으로 보면 아프간 전쟁은 정치지도자의 실패이지, 군대의 실패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부터 비현실적이거나 모호한 목표를 세웠는데 그 목표마저 오락가락했으며, 그나마 목표를 수행하는 데 군사적으로 필요한 자원도 늘 부족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결정이지만 일단 명령으로 주어진 이상, 군대는 충실히 이행해 냈을 뿐이다. 미국 사회가 카불에서 철수하는 마지막 부대를 패잔병이라고 조롱하지 않고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이는 매티스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 매티스가 이 책을 낸 것은 트럼프의 국방장관 자리를 던진 이후, 여전히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이다. 따라서 바이든의 이번 철군 결정에 대해 매티스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다. 다만 책의 본문을 읽으면, 바이든의 결정에 대해 매티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세계최강의 실전 군대 이끄는 솔선수범의 리더십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카불을 떠나는 크리스 도나휴 소장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본다. 앞서 언급한 18공수군단 팟캐스트에서 그가 한 말이 생각난다.
               "82공수사단 대원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지 않는다."
 
[뉴스쉽] (검은 화면 한쪽으로) 크리스 도나휴, 카불 떠나는 수송기 마지막 탑승

언제나 잘 훈련되어 있고, 예기치 않은 상황 앞에 당황하지 않으며, 어떤 어려움에도 임무를 완수한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러니 가쁜 숨을 몰아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도 '플랫 라이너(flat liner)'다. '플랫 라인'이란, 마치 죽은 사람의 심장박동처럼 잔잔한 심전도 그래프를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고 침착한 지휘관이라는 얘기다. 사진에서도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카불을 탈출하는 비행기에 맨 마지막으로 오르는 사단장의 차분한 발걸음을 보면서, 82 공수사단의 병사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세계최강 실전군대 미군의 힘은 첨단 장비 이전에 그 리더들에게서 나오는 것 아닐까.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 / 자료 도움: 김수형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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