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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엉뚱한 과녁 겨냥 '만점' 환호하다 역풍

가짜뉴스 근절 과녁은 언론법 아닌 정보통신법 개정

[깊은EYE] 엉뚱한 과녁 겨냥 '만점' 환호하다 역풍
징벌적 손해배상을 담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과정에는 여론의 묘한 기류가 작용해 왔다. 권력의 탄압을 받는 선한 약자에게는 으레 우호적인 여론과 지지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는 언론은 선한 약자가 아니다. 언론 자체가 권력인데다 제4부로 지칭되는 언론 권력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력이 된 입법권력이 언론을 탄압한다고 해서 압도적인 반발기류가 형성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여당도 아마도 이를 알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였을 테다. 동시에 '기레기'로 불리는 지금의 평가에 전통 언론도 책임이 있기에 언론 개혁이 무조건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

또한 언론중재법이 겨냥하는 가짜뉴스는 여야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학계, 언론계 모두가 그 심각한 폐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개인과 기관에게 회복할 수 없는 명예훼손과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둔 다양한 의견의 경쟁이 핵심인 민주주의에 치명상을 입힌다.

문제는 당초 여당이 상정했던 언론개혁의 핵심 목표와 핵심 수단의 불일치다. 여야와 학계, 언론계가 모두 동의했던 가짜뉴스의 온상은 유튜브나 1인 방송 전문플랫폼, 포털 등을 통해 온갖 선정적 콘텐츠를 내보내는 1인 방송, 즉 개인방송이었다.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야권 반발

특히 유명인이나 정치에 관련한 콘텐츠를 내보내는 개인방송들이 만든 가짜뉴스가 수시로 큰 파문을 일으킨다. 비근한 예로 유시민씨는 과거 자신의 알릴레오 유튜브 방송에서 검찰수사와 관련된 가짜뉴스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한동훈 검사장으로부터 5억 원대의 소송을 당하고, 사과까지 한 바 있다. 최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신의 가족사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유튜버를 고소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알기에 민주당 역시 지난해 '미디어·언론 상생TF' 설립 당시에는 개인방송이 이 법안의 주된 과녁이 될 거라고 했었다. 당연히 가짜뉴스의 온상인 개인방송에 대한 규제가 들어갈 줄 알았다.

이쯤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개인방송 규제는 현재 언론법이 아니라 정보통신망법의 영역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짜뉴스를 근절하려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아니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찌됐든 지금의 상황과 논란을 종합해보면, 결국 여당은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핵심 목표는 그대로 표방하면서, 핵심 개혁 대상인 개인방송은 젖혀두고, 눈엣가시인 전통 언론만 잡는 법안을 내놓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나중에 유튜버 등 개인방송 개혁법안도 만들어 함께 통과시키겠다고 뒤늦게 여당이 밝히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에 관련된 법안은 이미 지난해 7월 윤영찬 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었다. 문제를 정확히 알고 방안까지 마련했음에도,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과녁을 바꾸었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방송은 표현의 자유에 가장 부합하는 미디어라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통제가 느슨하며 자율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개인방송 간의 조회 수 경쟁으로 선정적인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처럼 이념 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서는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민주주의까지 위협한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영국은 2019년 개인방송에 대한 자율규제의 종언을 선언한 뒤 가짜뉴스 및 정보가 포함된 규제 신설을 추진하는 등 여러 국가들이 규제강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언론을 견제대상인 동시에 이용도구로 생각하는 정치권력의 속내는 항상 복잡하다. 강한 팬덤을 가진 강력한 개인방송들이 실제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정당에 어떻게 작용할지 유불리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근절의 핵심인 개인방송을 그대로 둔 채 슬그머니 전통 언론으로 과녁을 바꾼 게 처음부터 의도된 정치적 전술이었을까? 그랬다면 이는 마치 도심에 공급이 달려 집값이 오르는데, 저 멀리 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짓는다는 대규모 발표로 논점을 흐리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존 언론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데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신문과 방송에 대한 개혁도 진행하되, 반드시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입법 원리인 명확성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애매한 포괄적 법규정으로 언론활동 전반에 재갈을 물리면, 정권이 수시로 변하는 현실에서 누구에게 득이 되고 독이 될지 여야 정치권력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고철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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