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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기경보기 2차 사업, 공고도 안됐는데 불공정 논란

우리 공군의 보잉 E737 조기경보기. 군 당국은 조기경보기 2차 사업을 통해 신형 2대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 공군은 2011~2012년 도입한 미국 보잉의 조기경보통제기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그 주변을 감시하고 동시에 훈련하고 정비하기에 4대로 부족해서 무기 도입 관련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작년 6월 1조 5,900억 원을 투입해 차기 조기경보기 2대를 추가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방식은 실력으로 승부하는 완전경쟁 구도, 즉 해외 상업구매로 결정됐습니다. 조기경보통제기 2차 사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현재까지 선행연구,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 사업타당성 검토 등을 마쳤고, 앞으로 사업공고와 사업설명회, 입찰 등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보잉의 E-737 개량형과 스웨덴 사브의 글로벌 아이(Global Eye), 이스라엘 IAI의 ELW-2085 CAEW의 3파전이 기대됩니다.

이스라엘-IAI의-조기경보기-ELW-2085-CAEW

보잉이 앞서가고 사브와 IAI가 추격하며 엎치락뒤치락 흥미진진한 경쟁 양상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최근 들어 이상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차기 조기경보통제기가 반드시 구현해야 하는 ROC(군 작전요구성능)를 이제 와서 수정하려고 한다는 웅성거림이 들리는가 하면, 방사청 조기경보기 사업팀 인사들은 스웨덴을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방사청은 예비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려다 부랴부랴 연기했습니다. 하나같이 사브에 유리한 일들로 여겨져 조기경보기 2차 사업이 공고도 뜨기 전에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는 형국입니다.
 

ROC에 손대나

사브의 글로벌 아이는 훌륭한 조기경보기통제기입니다. 공중과 지상, 해상을 정밀 감시할 수 있는 전천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글로벌 아이는 전후방 원거리 감시 레이더가 없습니다. 반면 우리 군 조기경보기 ROC에는 바로 이 전후방 감시 레이더 장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사브의 글로벌 아이는 우리 군 ROC를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브는 글로벌 아이의 ROC 미충족으로 조기경보기 2차 사업 참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해외 상업구매라는 경쟁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사브가 참가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사브를 사업에 끌어들이기 위해 전후방 감시 레이더 관련 ROC를 변경하려고 한다는 말들이 업계에서 돌고 있습니다. 조기경보기 2차 사업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 A 씨는 "방사청이 공군에 ROC 변경을 요청했다고 들었다"며 "공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방산 관행에서 ROC 변경은 성씨 바꾸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ROC 변경은 곧 업체 특혜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 감사원이 무기 사업 감사 시 기본적으로 집중 점검하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각오 없이는 손 못 댑니다.

방사청의 공식 입장은 "ROC는 군 소관으로 방사청이 관여할 수 없다"입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전후방 레이더 관련 ROC 수정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사업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방사청 사업팀의 스웨덴 출장

방사청 조기경보기 사업팀 복수의 인사는 이달 중순 스웨덴을 방문합니다. 방사청은 "스웨덴 사브 방문은 이달 셋째 주이고, 세부 일정은 사브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스웨덴 사브의 조기경보기 글로벌아이

방사청 사업팀 인원들이 사업에 참여할 업체를 방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업체들도 두루 고르게 찾아다녀야 형평에 맞습니다. 방사청은 "다른 업체도 방문할 것"이라고는 하는데, 미국 보잉과 이스라엘 IAI 방문 계획은 현재까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해외 항공기 업체 관계자 B 씨는 "업체를 방문하려면 선행연구, 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 사이에 갔다 와야지 사업타당성 검토까지 다 끝난 시점에 업체에 찾아간다고 하니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방사청의 사브 방문은 자칫 방사청이 사브 편만 들어주는 행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경쟁사인 보잉과 IAI가 편파적이라며 들고 일어서면 방사청은 군색한 을(乙) 처지가 되기 십상입니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사브가 ROC를 충족하려고 글로벌 아이에 전후방 레이더를 달 수도 있다"며 "그런 것들을 점검하기 위해 사브를 방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브는 "글로벌 아이에 해당 장비를 장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우리 군 당국에 여러 차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사청 인사들이 스웨덴으로 건너가는 성의를 보인들 사브가 수천억 원의 출혈을 감수하며 전후방 레이더를 달아줄지 의문입니다.
 

예비 사업설명회 한다더니 돌연 연기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조기경보기 2차 사업 예비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습니다. 3개사 측에 ROC를 공개하며 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자리입니다. 보잉, 사브, IAI 등 3개사를 모두 부른다고 하니 공정한 조치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보잉과 IAI는 1차 사업을 완주했던 터라 우리 조기경보기 ROC와 사업 세부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브는 1차 때도 ROC 미충족으로 중도 포기했습니다. 보잉과 IAI는 1차 사업 노하우를 기반으로 당락의 성패를 좌우할 RFP(제안요청서)를 벌써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브는 1차 사업 경험이 미천한 데다 설상가상 전후방 레이더 이슈에도 발이 묶여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잉과 IAI는 예정대로 연말 사업공고, 본 사업설명회 개최를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예비 사업설명회가 열려 ROC와 사업의 세부 사항이 일찍 공개되면 사브는 사업공고에 앞서 보잉, IAI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방사청이 이런 여론을 감지했는지 개최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설명회를 돌연 10월로 잠정 연기했습니다. 일단 연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보잉과 IAI한테 큰 흠 잡힐 뻔했습니다.

조기경보통제기 2차 사업이 슬슬 달궈지는 시점에 터져 나온 ROC 변경설, 스웨덴 사브 방문과 예비 사업설명회 계획 등은 모두 '사브 편의'로 수렴됩니다. 1조 5,900억 원 규모의 대형 사업인데 사업공고가 나기 전부터 이런 잡음과 구설이 생기면 곤란합니다. 공개 경쟁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유력 선수들의 참여는 환영받아 마땅하지만, 그것도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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