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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보였나 - '쿨한 남북관계'론 ③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보였나 - '쿨한 남북관계'론 ③
지난 글( ▶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 '쿨한 남북관계'론②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에서 북한은 체제의 경직성으로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할 수 없고, 이러한 이유로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면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안보위협이 해소되지 않으면 북한으로서는 핵을 포기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2018년 평창올림픽을 전후한 화해 국면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우리 당국자들은 김 위원장이 핵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뿐 아니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수 차례 밝혔습니다.

과연 김정은 위원장은 정말 '비핵화'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쿨한 남북관계'론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쿨한 남북관계'론 글 싣는 순서
① 햇볕정책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②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③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보였나
④ 필요한만큼 이용하는 북한, 높아지는 대북 피로도
  

북한이 밝힌 '비핵화'의 의미는?

공개된 내용을 가지고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북한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씁니다. '한반도 비핵화'는 사용하는 주체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우리 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북한은 북한 비핵화 뿐 아니라 남한도 비핵화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한반도 비핵화'를 사용합니다. 남한에 핵무기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북한은 남한 땅에도 핵무기가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이른바 '비핵지대화'의 의미로 '한반도 비핵화'를 사용합니다. 핵무기를 탑재한 미군 자산 등이 한반도로 전개돼 북한을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2018년 5월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북한과 미국의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미국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에 동의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뜻이 좀 더 명확히 드러난 사례도 있습니다.

2018년 3월 대북특사단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방북 뒤 브리핑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려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비핵지대화'의 개념처럼 북한을 위협하는 상황이 사라져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평양공동선언에는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라는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북한이 이 문구에 합의한 것은 핵무기 뿐 아니라 핵위협도 없어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핵위협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안보위협이 없어지는 날이 올까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핵위협 즉 안보위협이 없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을까요?

지난 글( ▶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 '쿨한 남북관계'론②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에서 길게 언급했지만, 북한의 안보위협은 북한이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편입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대외 개방을 해야 하는데 '김일성의 나라'인 북한은 체제의 경직성으로 인해 적극적인 개방을 할 수 없습니다.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 김일성 일가 우상화에 대한 허구가 드러나고 김일성 일가의 절대적인 기득권에 균열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오히려 갈수록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며 외부정보 차단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이 계속된다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며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를 외치고 있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북한도 핵무기 포기의 시기는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7월 김여정의 담화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고 그러한 위협을 억제하며 그런 속에서 우리 국익과 자주권을 수호할 전망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실제적인 능력을 공고히 하고 부단히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해야 한다."
 
미국으로부터의 위협은 장기적인 것이 될 것인 만큼 미국의 위협을 억제할 실질적인 능력, 즉 핵능력을 부단히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정식 취파용 / 풍계리핵실험장폭파
 
사실 2018년의 화해 국면에서도 북한이 핵개발을 멈췄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핵실험과 ICBM 발사 중지를 약속했지만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것이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시켰지만 이것 또한 언제든지 복구가 가능합니다. 풍계리 지역은 수 차례의 핵실험으로 지반이 약화돼 자연지진이 일어날 정도인 만큼 더 이상 유지하는 것이 실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을 비핵화의 '성의'를 보였다는 정도로는 평가할 수 있겠지만, 우라늄 농축을 중지했다거나 ICBM 개발을 중지했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핵능력의 동결 내지 감소를 보여준 것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2018년의 화해 국면을 포함해 전 기간 동안 북한이 핵능력을 꾸준히 증강시키고 있다는데 대해 대체로 평가가 일치합니다. 며칠 전 공개된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는 이러한 북한 핵개발의 연장선일 뿐입니다.

북한은 2018년의 화해 국면이 지난 뒤 핵무기 보유 의지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제8차 당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국가핵무력건설대업의 완성을 … 실현한 것은 … 가장 의의 있는 민족사적 공적"이라며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밝혔습니다. "핵선제 및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할데 대한 목표"를 제시하면서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초대형핵탄두 생산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다짐했고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를 보유할데 대한 과업"도 제시했습니다.

이제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의심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라는 용어를 입에 올렸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입니다.

화성15형
 

현실적으로 가능한 핵협상 타결의 지점은

지금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핵협상 타결의 지점은 북한이 대부분의 핵을 포기하되 일부 핵무기를 안전판으로 숨겨두고 미국은 이를 어느 정도 묵인한 채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수준일 것 같습니다. 북한의 안보 불안감을 생각할 때 북한이 핵을 전면 포기한 상태로 타협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지하시설 어딘가에 핵무기를 일부 숨겨두더라도 전반적인 비핵화 작업이 잘 진행되게 되면, 일부 의심시설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국제사회 내에서 정치적 타협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북한의 모든 지하시설을 샅샅이 뒤져보는 것도 불가능한 만큼, 일정 정도 검증이 진행되고 나면 핵협상은 정치적 타협의 문제로 전환되게 됩니다.

이러한 타협이 완전한 북한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타협도 의미를 가지는 것은 북한이 은닉한 핵무기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지하에 은닉한 핵무기를 제대로 보관하려면 온도와 습도 조절 등 막대한 전기에너지와 관리 노하우가 필요한데, 북한의 능력으로는 수년에 걸쳐 핵무기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적절한 정치적 타협을 이룬 뒤 한반도의 평화가 어느 정도 정착돼 북한이 수년 동안 핵무기를 다시 꺼내 쓸 이유가 없어진다면 지하에 은닉한 핵무기는 고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북한 핵문제가 해결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2018∼2019년의 핵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북한은 이 정도의 협상에 나설 의사도 없는 듯합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 의사를 밝혔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가지 않았고, 비핵화의 로드맵, 즉 어떤 경로를 통해 비핵화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논의에 나선 적이 없습니다.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를 미국이 한꺼번에 모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무리가 있습니다. 북미가 북한 비핵화에 대해 타협을 하려면 북한은 어떤 비핵화 조치들을 할 것인지 미국은 어떤 상응조치를 할 것인지가 먼저 포괄적으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주고받을지에 대해 공감대가 없는데 합의가 이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주고받을 것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면 그 다음에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실행방안은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만큼 북한이 A를 하면 미국이 B를 하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혔지만 그 이상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음 조치는 일단 영변을 폐기하고 난 뒤 보자는 것이 북한 주장이었습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이후에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할지 안할지 언급조차 안하고 있는데, 영변 폐기를 대가로 주요 제재를 풀어주면 북한이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에 적극적일 리 없습니다. 영변이 북한 핵시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라늄 농축 시설과 이미 추출된 플루토늄, 핵탄두, ICBM 등 비핵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결국 북한이 '일단 영변 폐기를 대가로 주요 제재를 풀고 나머지는 그 다음에 가서 보자'고 말하는 것은 제대로 된 비핵화를 안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체제의 안전보장을 위해 핵보유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의 대북 접근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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