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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돈 들어가는 데 소송하겠나" 따져보니…

[사실은] "돈 들어가는 데 소송하겠나" 따져보니…
지난 27일 열린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와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외신 기자 : 사실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 배상제를 선택한 나라는 법의 악용을 막기 위해 봉쇄 소송을 방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 배상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한 혹은 후속 보도를 위축시키기 위한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이 남용 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의 답변입니다.

김용민 의원 : 면책 규정을 폭넓게 가져가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청구할 수 있는 원고를 제한적으로 했습니다. 정치인과 대기업은 다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국과 우리나라의 중요한 차이 중에 하나가, 소송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의 문제인데, 우리는 패소자 부담주의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해서 패소하면, 상대의 소송 비용을 다 물어줘야 하거든요. …… 전략적 봉쇄소송을 활용할 실익이 그렇게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법 시행 이후의 상황인 만큼, 이 답변의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전략적 봉쇄 소송'이 국내외에서 논의돼 왔던 흐름을 참고해 김용민 의원의 답변을 검증해보려 합니다.

사실은

봉쇄소송, 이기는 게 아니라 막는 게 중요!

김용민 의원의 답변을 논리적 흐름대로 재정리하면, 공익적 보도는 징벌적 손해 배상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기 때문에 쉽게 소송하지 못한다, (공익적 보도에 대한 봉쇄 소송은 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면 이기는 쪽의 소송 비용도 부담하니까 소송의 실익이 낮다, (그럼에도 권력자나 돈 많은 사람들이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청구권을 제한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전략적 봉쇄 소송'의 목적 자체가 꼭 재판에서 이기는 데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나중에 지더라도, 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지연시키거나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할 목적으로 봉쇄적 소송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봉쇄 소송의 심각성은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제소자가 재판에서 승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상대방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략적 봉쇄소송은 청구의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소자의 이익이나 활동에 공연히 반대하는 시민으로 하여금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함으로써 공적 참가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발생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정영수, 「전략적 봉쇄소송과 그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민사소송법학회, 2017년.

보도를 위축시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재판에서 졌을 때의 비용 부담보다 크다면, 전략적 봉쇄 소송은 '합리적 판단'이 될 수 있습니다. 봉쇄 소송 앞에서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면책 조항과 전략적 봉쇄 소송 가능성은 큰 관련이 없습니다. 지든 이기든 괴롭힘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전략적 봉쇄 소송은 재판에서 지더라도 소송 비용에 부담이 없는 사람들, 힘 세고 돈 많은 곳에서 주로 한다는 걸 전제합니다. 또, 지금의 언론 중재법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집단이 명시돼 있긴 하지만, 고위직 정치인이나 재벌 몇 명 빼는 걸로는 봉쇄 소송의 위험성을 상쇄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미국만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수정 헌법 1조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최상위법인 헌법에서, 우리보다 훨씬 강한 수준의 면책 조항을 갖고 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많은 지역에서 '전략적 봉쇄 소송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봉쇄 소송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공감대 때문입니다. 청구를 제한하는 범주도 우리보다 훨씬 넓습니다.

스탠포드 로스쿨의 로버트 라빈 교수는 SBS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국의 판례는, 공직자(public officials)를 비롯해 공인(public figures)이 포함되는데, 공인은 '자발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얻은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히 언론인들은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 시행 이후, 심리적으로, 나아가 법리적으로 봉쇄 소송의 문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 의원의 답변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설명이 부족해 보입니다.
 

봉쇄소송의 심각성을 고민했던 민주당

전략적 봉쇄 소송은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소송, 이른바 '괴롭힘 소송'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금까지 '괴롭힘 소송'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법사위원장 직무대리인 박주민 의원은 지난해 12월, 언론·출판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봉쇄 소송을 막기 위한 취지로 '국가 등의 괴롭힘 소송에 관한 특례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른바 '괴롭힘 소송 방지법'이었습니다. 발의자는 박주민 의원을 비롯해 김승원, 박홍근, 이용빈, 양정숙, 박영순, 비례대표 이수진, 윤미향, 장경태, 이형석, 송영길, 김남국 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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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소송이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니, 심리를 통해 소권 남용인게 밝혀지면, 법원은 소송을 조기에 각하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법안은 현재 상임위 계류 중입니다.
 
<국가 등의 괴롭힘소송에 관한 특례법안>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에 따라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또는 근로자의 기본권의 정당한 행사를 위축시키는 괴롭힘소송의 제기를 금지하고, 이를 통하여 공적인 중요성을 갖는 사안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괴롭힘소송에 관하여 「민사소송법」 및 「민사집행법」에 대한 특례를 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괴롭힘소송에 대한 각하신청 및 재판) ① 법원은 제기된 소송이 괴롭힘소송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으로 이를 각하할 수 있다. 
- 박주민 의원 등 발의, 「국가 등의 괴롭힘소송에 관한 특례법안」, 2020년 12월.

당시 법안은 언론사의 경우 괴롭힘 소송의 보호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돼 있기는 합니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와 같은 비영리단체 등을 소송에서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컸습니다. (당시 법사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언론·출판의 자유 당사자인 언론사가 제외돼 있어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다만, 괴롭힘 소송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당시만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들이나 언론인들이나 비슷한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법사위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역시 전략적 봉쇄 소송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주요 특징으로는, …… 원고가 승소할 가망이 없거나 승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 원고가 전략적 봉쇄소송을 통하여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분쟁을 법적 의미를 지니는 분쟁으로 변이(transformation)시켜 이를 사법 시스템 내로 진입시키는 점, 해당 소송의 피고가 아닌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작용하여 피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해당 이슈에 대한 의견 표명을 위축(chilling effect)시킨다는 점 등이 있음.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가 등의 괴롭힘소송에 관한 특례법안 검토 보고」, 2021년 2월.
 

'징벌적' 봉쇄소송 방지법?

민주당은 이미 법안 논의 초반부터 전략적 봉쇄 소송에 대한 우려를 건네 들었습니다. 미국의 사례가 여러차례 거론되기도 했고, 전문가들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 세명대학교저널리즘스쿨대학원교수 이봉수 : 남은 과제는 권력기관이나 재벌기업이 위협효과를 노려서 언론에 소송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막을 거냐 이 문제인데요. 언론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고 그러지요. 미국의 경우에는 법원이 대개 각하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입법적 뒷받침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요.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전문가 의견청취의 건 -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관련」, 2021년 6월.

이봉수 교수의 말처럼 미국은 언론에 대해 몇 배의 징벌적 손해 배상을 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략적 봉쇄 소송을 막는 방지법 역시 함께 운용하는 경우 많습니다. 전략적 봉쇄 소송 방지법, 이른바 안티슬랩(Anti-SLAAP) 법입니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29개주와 콜롬비아특별구, 미국령 괌에서 법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언론 역시 이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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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 2012년 텍사스주(州)의 '어빌러 v. 래어리어'(Avila v. Larrea) 판결입니다. 변호사가 자신에 대한 불만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의 소를 제기하자 해당 언론이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며 소각하 신청을 했고, 실제로 각하됐습니다.

무리하게 전략적 봉쇄 소송을 제기할 경우, 역으로 봉쇄 소송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는 규정을 둔 곳도 여러 곳 있습니다. 미네소타주(州)의 안티슬랩법을 참고하겠습니다.
 
(b) 이 장에 규정된 신청이 인용되고, 피신청인이 신청인의 공공 참여를 막기 위해 또는 신청인의 헌법상 보호된 권리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또는 신청인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괴롭힐 목적으로 소송 원인을 제기하였다는 것을 신청인이 증명하는 경우, 법원은 신청인에 대한 실제 손해를 배상하도록 명하여야 한다. 법원은 제549.20조에 따라 신청인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할 수 있다. 
(b) If a motion under this chapter is granted and the moving party demonstrates that the respondent brought the cause of action in the underlying lawsuit for the purpose of harassment, to inhibit the moving party's public participation, to interfere with the moving party's exercise of protected constitutional rights, or otherwise wrongfully injure the moving party, the court shall award the moving party actual damages. The court may award the moving party punitive damages under section 549.20. 
- 「미네소타주 Anti-SLAPP법」 제554.04조 (보수 및 손해) 제2항(손해배상)

당장 괴롭힘 소송 방지법을 입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입법은 늘 신중해야 합니다. 법 조문을 만드는 과정은 정밀한 세공력이 요구됩니다. 상황에 따라, 사회 감정에 따라, 심지어 판사에 따라 조문이 달리 해석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보편적 해석이 가능한 문장으로 조형하는 과정은 지난할 수밖에 없고, 또 지난해야 합니다. 심지어 지금 미국에서도 괴롭힘 소송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명확성의 원칙'과 관련한 논쟁이 있습니다. '재판을 받을 권리'와 '표현의 자유'와의 상충 역시 논란 거리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논란이 성장통을 누락한 채 일사분란하게 입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은 늘 "미국은 언론에도 몇 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린다"는 사례를 그 논거로 말하지만, 이를 보완하려는 미국 사회의 노력과 논쟁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언론사가 물어 낸 징벌적 손해배상 판례를 '선택적 발췌'하고, 법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미국 공동체의 노력을 '선택적 배제'하는 건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이런 식의 접근 방식으로는 건강한 법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 역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성장통을 겪을 권리가 있습니다. 더 토론하고, 더 논쟁해야 합니다. 

(자료 조사 : 송해연)
 
<참고 자료>
정영수, 《전략적 봉쇄소송과 그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민사소송법학회, 2017년.
박주민 의원 등 발의, 「국가 등의 괴롭힘소송에 관한 특례법안」, 2020년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가 등의 괴롭힘소송에 관한 특례법안 검토 보고, 2021년 2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전문가 의견청취의 건 -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관련」, 2021년 6월.
「미네소타주 Anti-SLAPP법」 제554.04조 (보수 및 손해) 제2항(손해배상)
언론 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RCFP) 홈페이지(https://www.rcfp.org), anti-SLAPP legal guide and state-by-state comparison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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