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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북적북적]

마쓰이에 마사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6 : 마쓰이에 마사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바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람을 맞을 때 작업하는 손을 멈추고 눈을 감고 지금까지의 자신과 앞으로의 자신을 상상해보세요. 인생에는 때로 뭔가에 크게 마음이 움직여 새로운 길이 열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설명이 안 되는 타이밍에 찾아옵니다. 그걸 위해서는 매일이 같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람에 뭔가를 느끼고 새로운 바람에 귀를 기울이세요."

입추와 말복에 이어 처서도 지났으니 이제 2021년 여름은 거의 끝이 났네요. 큰 걸음으로 성큼,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에 떠오르는 책 하면, 저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입니다. 2016년 출간된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데뷔작 소설입니다. 북적북적에서도 2017년 여름 읽었습니다. 한 노 건축가와 그를 동경하는 청년의 뜨겁고도 아름다운 여름날을 담담하고 우아하게 그려낸 소설입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 몸담았던 작가는 퇴직 후 이 작품부터 본격 작가 인생에 돌입했습니다. 그런 작가의 사연과도 꽤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름은 오래...>로 팬이 된 저는 2018년엔 후속작인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또 북적북적에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한국어로 옮겨진 그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을 역시 북적북적을 통해 소개합니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책 맨 뒤를 보면 '주요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1901년 태어난 이 소에지마 가족 일대기의 시작을 맡은 요네와 그의 남편 신조, 그들의 자녀 가즈에, 신지로, 에미코, 도모요, 그리고 신지로와 결혼한 도요코, 다시 신지로와 도요코 커플의 자녀인 아유미와 하지메, 여기에 아유미의 친구와 지인, 마지막으로 3대 가족과 함께 4대에 걸쳐 내려오는 홋카이도견 이요와 에스, 지로, 하루까지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대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에다루(가상의 마을)입니다. 요네의 출생부터 그의 손자 하지메가 50대 중반에 이르는 시점까지 이야기가 흘러가니 백 년에 걸쳐 흐르는 가족사입니다.
 
"할머니는 큰손녀인 아유미를 받고 나서 대략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 뇌내출혈이었다고 한다. 누나와 네 살 터울인 하지메는 아직 그림자도 없던 무렵이다... 에다루 서쪽에 사는 여성은 소에지마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거나 할머니가 임부의 집에 가서 출산을 돕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할머니의 죽음은 조산부의 역할이나 입장에 불어닥친 변화의 징조였을지도 모른다."
 
"아유미가 세 살도 되기 전에 요네는 뇌내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조산을 마친 한나절 후의 일이었다. 요네가 어떤 수순으로 출산을 도왔는지를 본 기억은 물론 없다. 아마 어린애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엄하게 말해두었을 테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조산원으로 가는 뒷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 꾸중을 듣거나 쫓겨난 기억도 없다. 다만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조산원 한 모퉁이에 떠돌고 있었다. 조산원 바로 앞 기둥에 '정리, 청결, 정심'이라고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집이 헐릴 때까지 그대로 있었던, 요네가 쓴 먹글씨."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마찬가지, 1900년대부터 2000년까지의 100년은 참으로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간 한 가족의 삶과 죽음, 인생을 그린 이 소설은, 읽다 보면 파악되기도 하지만 '앗, 이게 누구였더라' 하고 놓쳐서 다시 앞부분을 찾아보거나 등장인물 소개를 봐야 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또 가족사라고 해서 꼭 시간 순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점도 제각각, 저마다 해석이 다른 일들도 적지 않아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어떤 스펙터클 모험담이 펼쳐진다거나 역사적인 비극이나 큰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24개의 장이 각각 짤막한 단편소설처럼 읽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요네는 20세기가 된 해에 태어났다. 사산이 드물지 않은 시대였다. 무사히 태어나도 다양한 병이 도사리고 있다가 유아를 솎아냈다... 요네는 아버지 같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고등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의학도의 길은 단념했다. 나카무라 가의 큰아들이 의학을, 셋째 아들이 토목공학을, 넷째 아들이 법률을 공부하는 동안에는 요네를 여자의전에 진학시킬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요네가 태어나기 조금 전인 메이지 시대 후기에 이르자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산파' 기술은 일단 비공식적인 것이 되었고 서양의학에 기초한 교육제도가 정비되었다. 산파는 그 제도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요네는 그 최첨단에 뛰어들었다."

3대 가족사를 각 등장인물, 각 구성원의 시각에서 하나씩 풀어서 보여줍니다. 겹치는 지점도 그렇지 않은 지점도 함께 서술되면서 백 년 동안 숱한 이야기가 수많은 별처럼 명멸합니다. 실은 소에지마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가족도 마찬가지죠. 잠깐 떠올려봐도 저나 저의 형,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다 그렇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그래서 삶과 죽음이 그리 특별한 건 아니겠지만 개별적으로는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소에지마 가족 외에 드물게 두 개 장에 걸쳐 나오는 다케시의 사연은 가족사로 보면 외전 격인데 저에겐 더 각별하게 읽혔습니다.
 
"세찬 눈송이가 다케시의 뭔가를 억지로 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때려눕혔을 때도 자신이 어떤 놈들에게 얼굴이 그어질 때도, 나나코와 둘이서 있을 때도 이런 바람은 불지 않았다. 신은 그때 틀림없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이 정도의 바람과 눈을 내뿜어 자신을 보고 있다. 바로 지금 처음으로 신이 여기에 있다고 느낀다."

소설의 원제는 '빛의 개(光の犬)입니다. 소에지마 가족과 함께 하는 홋카이도 개에게서 나온 제목인데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개는 스스로 운명을 바꾸지 못하지만 개 한 마리의 삶에는 그 개만이 지니는 찬란함이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에게도 생명이 주어져 죽을 때까지, 그가 사는 시간 곳곳에 빛과 그림자가 있을 테지요."라고 설명하더군요.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한국어판 제목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만큼 좋아 보입니다. 여기서의 집은 꼭 고향이나 말 그대로의 집만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를 은유하기도 하겠죠. 하지메가 등장하는 첫 장과 22장의 소실점이기도 합니다. 이 소에지마 가족의 소실점이 하지메 같기도 하고요.
 
"자네, 인간의 몸이 물질이 아니라면 뭐라고 생각하나?"
물질이라는 말을 듣고 아유미는 어쩐 일인지 화장된 인간을 상상했다. 그것은 한 번 조사한 적이 있다.
"타면 재가 됩니다. 재에는 칼슘과 칼륨, 마그네슘, 나트륨과 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가사와라 교수는 다소 진지한 얼굴로 아유미를 보았다.
"나도 앞으로 십 년쯤 지나면 재가 되겠지. 어떤 빛을 방출할지, 하지 않을지, 나는 볼 수 없네. 확실한 것은 그뿐이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겠죠. 돌아갈 때까지 꾸준히 책을 읽고 싶습니다.

*출판사 비채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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