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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야구 소년들의 뜨거운 여름, 정상이 다가온다

한국계 교토국제고, 첫 출전한 여름 '고시엔' 8강 진출

[월드리포트] 야구 소년들의 뜨거운 여름, 정상이 다가온다
4대 1로 앞선 채로 니쇼가쿠샤(二松學舍)대학 부속고등학교의 9회말 마지막 공격으로 넘어갈 때만 해도 승리는 거의 눈앞에 와 있었습니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1회에 불의의 선취점을 내줬지만, 5회에 투수 모리시타가 좌중간을 넘기는 동점 솔로 홈런으로 만회한 뒤, 6회에는 3번 나카가와의 투런 홈런, 4번 쓰지이의 연속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웃 카운트 세 개를 미처 잡아내기 전에, 아주 잠시 모리시타의 제구가 높아진 틈을 상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원아웃 주자 1, 2루 상태에서 우중간으로 깊게 날아간 상대의 타구는 다행히 펜스 앞에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에게 좌측 펜스를 넘기는 석 점 홈런을 맞아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니쇼가쿠샤 고등학교 역시 3년 만의 통산 네 번째 고시엔(甲子園) 출전을 일구어 낸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추격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10회 초. 투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간 투수 모리시타가 이번에도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단타에 대비해 전진수비를 하던 상대 좌익수 키를 넘겨 펜스를 때린 공이 경기장 중앙 방향으로 튀어 길게 굴러가면서 니쇼가쿠샤의 중계 플레이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외야진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1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인 모리시타가, 그 기세를 몰아 그라운드 홈런을 완성하면서 천금같은 결승점 2점을 얻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삼진 12개를 잡아내며 상대 타선을 꽉 틀어막은 모리시타는 10회까지 13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10회 말을 무실점으로 역투해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비록 경기가 열린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 경기장에는 가지 못했지만, 출근하자마자 NHK의 중계를 들으면서 교토국제고를 '편파적'으로 응원했습니다. 취재파일 첫머리의 중계(?)는 야구 관전을 좋아하는 기자가 교토국제고의 입장에서 쓴 경기 막바지 관전기로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오늘(24일) 아침 8시부터 중계된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일명 고시엔) 16강전 첫 경기, 교토 대표 교토국제고등학교와 도쿄 대표 니쇼가쿠샤대 부속고등학교의 경기가 교토국제고등학교의 역전 승리로 끝났습니다. 교토국제고는 야구부 창설 이래 처음으로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전통의 강호들을 연달아 꺾으며 출전 49개 학교 가운데 가장 먼저 4회전, 즉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지난 봄 선발고교야구대회(일명 '봄 고시엔')에도 처음으로 출전해 첫 경기를 이겼지만 16강전에서 역전패했던 쓰라린 기억을, 이번에는 멋지게 되갚아 주었습니다.

유성재 취파

이미 지난 봄 선발고교야구대회에 첫 출전했을때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의 첫 승리'가 여러 언론에 의해 조명돼 교토국제고의 이름이 익숙하신 분들도 꽤 많으실 겁니다. 한국계 고등학교가 일본 고교야구의 '꿈의 무대'인 고시엔에, 그것도 여름 대회에 처음 출전해 8강 진출을 놓고 전통의 강호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데, 저도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토국제고가 승리할 때마다 경기장에 한국어로 된 교가가 울려퍼지는 것도 일본에 있는 한국인으로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오늘 승리를 거둔 뒤에도 선수들이 한 줄로 서서 교가를 제창하는 모습이 NHK의 전파를 탔습니다. 교토국제고의 교가 가사는 이렇습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NHK는 이 한국어 교가가 흐를 때 학교 측에서 제출한 일본어 번역을 자막으로 함께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막은 첫머리의 우리말 '동해 바다'가 일본어로는 '동쪽의 바다'로, 마지막의 '한국의 학원' 은 '한일의 배움터'로 번역돼 있습니다. 교토국제고가 교가를 NHK에 제출할 때 이렇게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고시엔 경기장에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교가는 확실히 울려퍼졌지만 일본어 자막을 보는 일본인들이 '동해라니? 일본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문제삼아 순수해야 할 학원 스포츠가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걸 피하기 위한 학교 측의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성재 취파

교토국제고의 출발은 재일한국인 학교입니다. 1947년 재일교포 교육 시설인 교토조선중학교가 문을 열었고, 1958년에 교토한국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교토부(府)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1960년대에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아 한일 양국에서 인정하는 교육기관이 됐습니다. 그 후 2003년 12월에 일본이 학교교육법 제1조에 규정된 중학교와 고등학교(병설)로 인정하면서 그동안 붙어 있었던 '각종학교'라는 딱지도 떨어졌습니다. 전체 학생수가 130명을 조금 넘는데, 이 가운데 일본 국적의 학생 비율이 60% 정도지만, 교가 등을 그대로 유지해 한국계 학교라는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한일은 물론 국제적 감각을 중시하는 교육 철학을 갖고 있는 학교입니다.

교토국제고의 박경수 교장은 지난 봄 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남학생들은 야구가 하고 싶어서, 여학생들은 K팝이 좋아서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재정난을 '야구 특화'로 극복하면서 일본의 야구 소년들도 야구를 하기 위해 입학할 수 있게 된 이 학교가 8강까지 오른 기세로 더 높은 곳까지 진출하기를 응원하는 마음은, 비유하자면 일본인들도 많이 고용한 한국계 기업이 일본 시장에서 실력으로 승부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비슷합니다.

유성재 취파

교토국제고는 앞으로 두 번 더 승리하면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여름 고시엔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일본 언론들도 지금까지는 교토국제고에 대해, 그동안 이 학교가 걸어 온 길에 대해 크게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첫 출전한 교토국제고가 결승전에 진출하면, 또 거기서 한 걸음 더 힘을 내 우승까지 하게 되면 한국계라는 뿌리를 가진 이 학교가 왜 고시엔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했고, 야구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보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일본의 전파를 타는 우리말 교가의 '동해'도 물론 반갑지만, 그보다 교토국제고가 선전을 거듭해 학생 선수들의 목소리에 한일 양국이 더 주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선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진 제공=교토국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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