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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중국 내에서 탈레반 비판 여론 고개…중국 입장 바뀌나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대해 연일 옹호 입장을 내놓았던 중국에서 미묘한 변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탈레반의 최근 움직임, 여성 인권을 무시하는 극단적 이슬람 율법에 대한 국제적 반대 기류, 중국 내에서 고개 들고 있는 탈레반 비판 여론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중국, 탈레반 장악하자 즉각 인정…1조 달러 광물 등 이익 기대

지난 16일 중국 외교부 화춘잉 대변인은 탈레반이 아프간 탈환을 선언하자마자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튿날인 17일에는 "아프간의 새 정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사실상 탈레반 정부를 인정했습니다.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은 각종 현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여서 이는 곧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도 직접 나서 "국제사회는 아프간에 압력을 가할 게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야 한다", "특정한 가치관을 다른 민족이나 문명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프간의 미래는 아프간 인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잇따라 쏟아냈습니다.

중국은 아프간 상황을 '미국의 실패'를 부각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자금 동결 등 탈레반 옥죄기에 나선 미국과 대조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아프간은 물론, 중동·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했습니다. 중국은 아울러, 아프간 정세를 타이완 독립론에 대한 경고 수단으로도 활용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과 아프간에서 철수했듯 결국엔 타이완에 대해서도 등을 돌릴 것이란 주장입니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라는 조롱 섞인 말이 회자됐습니다.

중국이 탈레반을 감싼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중국은 향후 아프간 재건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쳤습니다. 특히 아프간에는 희토류와 리튬, 철, 구리, 금 등 1조 달러(1천170조 원) 상당의 광물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주미 아프간대사관의 2012년 자료에는 매장 광물 가치가 3조 달러(3천51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대해 중국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세력과 탈레반의 결탁이었습니다.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은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 계열입니다. 게다가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중국 쪽 지역이 바로 신장위구르입니다. ETIM이 탈레반의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에서 테러 등을 일으킬 경우 중국에는 적지 않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이 서둘러 탈레반의 2인자를 만난 것도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왕이 부장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기 전인 지난달 28일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중국 톈진으로 불러들여 회담했습니다. 왕이 부장은 "탈레반이 ETIM 등 테러단체와 선을 그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세력도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탈레반의 화답을 받아냈습니다. 안보·분열 위협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이상, 중국이 탈레반 지지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지난달 28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탈레반 2인자 바라다르와 회담하는 모습.(출처=중국 외교부)
 

중국 SNS에 탈레반 비판 게시물 잇따라…"중국 내부 반발 만만치 않아"

23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탈레반의 통치 우선순위는 화해, 발전,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매체는 기사에서 "탈레반이 포용적으로 통치하고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어느 정도까지 지킬지가 관건"이라며 "이는 당사국들이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고 투자를 재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분명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초기 보여줬던 중국의 입장과는 차이가 납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어 "중국 관측통들은 탈레반이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종교 이념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탈레반이 즉각 현대화하고 일반 풍속을 따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도 했습니다.

중국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23일 '탈레반의 통치 우선 순위는 화해, 발전, 인정'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사진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수도 카불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도 탈레반을 비판하는 게시물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1년 전 탈레반 고위층을 인터뷰한 영상이 있는데, 기자가 여성의 정계 진입 허용 여부를 묻자 탈레반이 "웃겨 죽겠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상은 600만 명의 중국인이 봤고, 탈레반의 여성 인권 무시를 비판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아프간 놀이공원의 일부 조각상이 이슬람 율법에 반한다는 이유로 탈레반 병사들이 놀이공원을 불태웠다'는 내용의 글은 조회수가 2억 5천만 회를 넘어섰고, '탈레반은 (포용적인) 과도정부를 구성할 계획이 없다'는 내용의 해시태그도 3억 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환영했지만 중국 네티즌들이 반대하는 등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웨이보에 올라온 1년 전 탈레반 인터뷰 영상의 한 장면. 기자가 여성의 정계 진입 허용 여부를 묻자 탈레반 고위층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출처=웨이보)

탈레반은 '샤리아'라는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에 따라 과거 집권 당시 여성의 등교와 취업을 금지했고, 공공장소에선 전신을 가리는 복장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여성에게 강요했습니다. 최근에도 아프간 지방경찰청장을 기관총으로 처형하는 모습, 부르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을 총살한 모습 등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탈레반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 정법대 문일현 교수는 "탈레반이 역내 무장세력을 제압하거나 협상을 통해 안정 국면을 이뤄낸다는 보장이 없다"며 "설령 정권 수립에 성공한다고 해도 내전에 휩싸일 경우 서둘러 탈레반 정권을 승인한 게 중국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 교수는 이어 "미국이 탈레반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관계를 확정 지을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탓인지, 최근 중국 외교부 브리핑이나 중국 관영매체 보도에선 "결자해지", "미국의 책임"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프간을 침공한 것도, 아프간에서 철수한 것도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아프간의 안정과 재건을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는 내용인데, "아프간 인민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외세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중국의 초기 입장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프간의 상황이, 미국이 철수한 힘의 공백 상태에서 오롯이 책임을 떠안는 것이 중국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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