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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아프간 '쩐의 전쟁' 팩트체크했습니다

[사실은] 아프간 '쩐의 전쟁' 팩트체크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20년 간 아프간에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썼습니다. 이제는 아프가니스탄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그리고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01년부터 20년 동안, 아프간 전쟁에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1조 달러면 우리 돈으로 1,170조 원 정도에 달합니다. 올해 우리 예산이 558조 원이니,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돈입니다. 아프간 전쟁은 그야말로 '쩐의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비용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수치는 제각각입니다. 사실 1조 달러의 몇 배를 썼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위해 쓴 비용을 팩트체크 했습니다.


사실은
 

"아프간 국민의 117년 치 국민소득"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발간한 전쟁 비용 보고서(Cost of War Report)에서 20년 동안 쓴 비용이 8,147억 달러, 우리 돈으로 995조 원이라고 추산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수치입니다. 여기에는 각종 무기와 파병 부대 운영비, 작전 비용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자체로도 천문학적인 수치입니다만, 전쟁 비용은 단순히 무기나 군 주둔 비용 만으로 가늠할 수 없습니다. 희생자 보상금이나 퇴역 군인 연금 등 지원액, 전쟁 차입금에 대한 이자 등도 모두 포함해야 합니다.

전쟁 비용과 관련해 학계나 대내외 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미국 브라운대학교의 전쟁비용프로젝트(Costs of War Project) 통계입니다. 전쟁 비용 프로젝트에서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전쟁 비용을 2조 2,6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653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세부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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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2001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이후, 총 6조 4천 억 원의 전쟁 비용을 지출한 걸로 추산했는데, 이 가운데 아프간 전쟁 비용이 35%에 달합니다.

세계은행 통계를 기준으로, 아프간 국민의 1인 당 국민소득은 507.1달러, 인구는 3,804만 명이었습니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위해 쓴 2조 2610억 달러의 돈은, 현재 가치로 따지면, 3천 8백 만 아프간 국민 모두가 117년 동안 평균적으로 벌어 들이는 소득과 같습니다.
 

'쩐의 전쟁' 실패는 곧 전쟁의 실패

한 발 더 깊게 들어 가보겠습니다.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 추이를 살펴봤습니다.

미국의 아프간 주둔군 규모와 그 유지에 들어간 비용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 참고하겠습니다. 파란색이 비용 추이, 빨간 색이 규모 추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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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 「WHAT WE NEED TO LEARN: LESSONS FROM TWENTY YEARS OF AFGHANISTAN RECONSTRUCTION」, 2021년 8월

주둔 비용이 2010년 전후해 집중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이었는데, 당시로서도 아프간 전쟁을 10년 가까이 끌어왔던 터라 피로도가 높았습니다. 2010년,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낸 '오바마의 전쟁'(Obama's War)에 당시 상황이 잘 정리돼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아프간 출구 전략을 고민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던 군인들의 저항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과 마이크 멀린 당시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프간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4만 명 증파를 요청했습니다. 현 대통령인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아프간이 제2의 베트남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 2만 명 증파에서 마무리하길 주장했습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3만 명 증파로 절충점을 찾았지만, 이 역시 전례 없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오바마의 출구 전략은 빛이 바랬습니다.

즉, 당시 군 수뇌부들은 한꺼번에 돈을 쏟아부으면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거라 믿었고, 이런 믿음은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필요한 시간을 줄곧 과소평가했으며, 전쟁 비용 지출을 우선시하는 계획과 기대를 만들었다. (이는 결국) 2009년에서 2011년 사이에 군대, 자금 및 자원의 급증과 같은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이어졌다. 빠른 개혁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를 아프간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아프간의) 만연한 부패는 아프간에 보내진 미국의 자금을 낭비하고 남용의 위험에 빠뜨렸다.
-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 「WHAT WE NEED TO LEARN: LESSONS FROM TWENTY YEARS OF AFGHANISTAN RECONSTRUCTION」, 2021년 8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했지만 '아프간의 안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은 돈을 줄여나가기 시작합니다. 군인들 사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오바마 정부 당시 나토(NATO) 상임대표였던 더글라스 루트 중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털어놨습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 더글라스 루트 중장,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2019년 12월

미국의 아프간 재건 예산 낭비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양귀비' 입니다. 아프간은 양귀비에서 추출한 불법 마약 '헤로인'의 최대 생산국입니다. 탈레반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의 돈줄을 끊고, 아프간 주민의 양귀비 농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은 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 넘는 돈을 썼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아프간의 양귀비 농사는 되레 증가했습니다.

미국은 아프간 재건 비용으로 1,4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70조 원의 돈을 투입했습니다. 미국은 거금을 들여서라도 서구의 관료 모델을 아프간에 빨리 이식하려 했지만, 거부 반응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프간 관료의 부패 문제, 은밀히 활약하는 탈레반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미국의 지원금을 다른 곳에 빼돌리려는 중개인들에게 돈이 흘러가기도 했고, 심지어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탈레반으로도 빠져나가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은 미국의 무기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을 곰곰이 살펴보면, 전쟁 실패의 이유 역시 밑그림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입니다. 미국과 아프간 군인, 민간인을 합쳐 17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만 5만 명에 달합니다. 이 목숨의 가치는 수천 조의 돈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문제는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탈레반은 모두를 용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이미 반(反) 탈레반 세력에 대한 숙청은 시작됐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거센 적개심과 보복이 자리했습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끝났지만, 아프간의 '아프간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유입니다.

(자료 조사 : 양보원, 송해연)

<자료>
미국 국방부, 「Cost of War Monthly Report」, 2020년 9월
브라운대학교, 「Costs of War Project, Human and Budgetary Costs to Date of the U.S. War in Afghanistan」, 2001-2021, 2021년 4월
미국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 「WHAT WE NEED TO LEARN: LESSONS FROM TWENTY YEARS OF AFGHANISTAN RECONSTRUCTION」, 2021년 8월
밥 우드워드 「오바마의 전쟁(Obama's Wars)」,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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