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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아직도 구출되지 못한 염전노예 피해자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인-잇] 아직도 구출되지 못한 염전노예 피해자
나는 학대당하는 장애인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변호사다. 2014년 신안군 염전노예사건부터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 그리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이 일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을 지원할 때마다 가해자들에게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피해자는 소송을 원하지 않는데 소송을 맡은 변호사가 돈벌이를 하기 위해 피해자를 부추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비난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철저하게 무료로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착수금, 성공보수 등을 일체 받지 않는다. 소송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대신해 인지대, 송달료를 대신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허무할 때도 있다. 우리가 애써 가해자로부터 받아 준 피해배상금을 피해자가 홀라당 사기당하고 노숙자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가 그렇다. 소송 당시 차라리 변호사 비용이라도 두둑하게 받아두었다가 빈털터리로 돌아온 피해자에게 다시 드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기 피해에 대한 법률지원을 시작해야할 때면 정말 속이 상한다.

또 허무한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로 학대 현장에서 벗어난 피해자의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피폐해지는 걸 지켜볼 때다.

 

7년째 노숙인 쉼터에 거주하는 피해 장애인


그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 노숙인 쉼터에서였다. 10년 넘게 한 섬에 갇혀 강제로 일을 하던 수십 명의 지적장애인들이 구출된 염전노예사건. 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그는 구출 후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노숙인 쉼터로 옮겨진 20여 명의 지적장애인 중 한 분이다. 노숙인 쉼터는 그에게 의식주만 제공할 뿐 일자리와 맞춤형 프로그램을 안내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몸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좋다고 했다.

7년간 그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를 직접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를 위한 특정 후견인이 선임되어 있었기에 재판에 대한 논의는 특정 후견인을 통해 진행했다. 2015년 1월 22일 가해자가 재판받는 형사법정에 그가 피해자로 출석해야 할 때 모시고 간 이후 6년동안 찾아뵙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7월 30일 오랜만에 특정후견인과 함께 그를 만나러갔다. 법률지원활동이 끝났기 때문이다.

무려 7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노숙인 쉼터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자리 그대로 멈춰있었다. 정기적으로 면담 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특정 후견인 말고는 그를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가해자 형사재판이 진행될 때 자주 찾아왔던 가해자의 아들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글자가 적힌 종이에 그의 자필 서명을 받아 간 2014년 10월 9일 이후 단 한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쉼터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쉼터 입구에 서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와 마주 섰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노쇠해져 있었다. 비장애인을 위한 노숙인 쉼터에서 지적장애인인 그의 하루하루가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안부 인사와 몇 마디 말을 나눈 후 "선생님을 위한 법률 지원은 모두 끝났습니다"라고 말한 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7년간 이어진 법률지원이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2001년부터 2014년 2월까지 염전에서 노동을 한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렸던 그를 위해 제기한 민사소송 결과 그는 1억 2천만 원의 피해배상금을 가해자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그 돈은 아직 법원에 공탁되어 있다. 그 돈을 찾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노숙인 쉼터에 있을 자격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후견인은 그가 거주할 더 나은 공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노숙인 쉼터가 좋다고 하는 그의 의사가 너무 완고해서 실패했고, 몇 년 전부터 거처를 옮기는데 동의했지만 그가 노숙인 쉼터를 떠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작년부터 기승을 부린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쉼터 바깥으로 한 발도 못 나오고 있다.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해자 아들이 내민 종이에 서명과 날인을 한 날조된 처벌불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통과됐고 구속 기소된 가해자는 1심 판결 선고와 함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중증 지적장애인 명의의 처벌 불원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판사들의 잘못을 그냥 넘길 수는 없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외침으로 시작한 국가배상소송은 3년 넘게 진행되었지만 '판사들의 잘못은 있지만 국가의 책임은 없다'는 기괴한 불량판결문을 받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그를 정말 구출해 낸 것일까?


학대현장에서 벗어난 피해자의 삶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피폐해지는 걸 지켜볼 때마다 학대가해자들의 항변이 떠오른다.

"가족과 사회가 버린 장애인을 내가 입혀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일까지 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왜 장애인에 대한 나와 우리 가족의 돌봄을 학대라고 하는 것이냐?"

그 항변에 대해 우리가 "아니요! 당신의 주장은 틀렸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학대 이전과 구출된 이후 피해자의 삶이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13년 동안 섬에 갇힌 채 강제로 일을 한 염전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7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삶이 더 피폐해졌다면 그를 구출했다는 우리의 행동은 피해 장애인 입장에서 또 다른 학대일 뿐이다.

그를 위한 법률지원이 끝났기에 나는 더 이상 그를 만나러 갈 이유가 없어졌다. 관련 소송들이 모두 끝났기에 특정후견도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러나 특정후견인과 나는 그를 위한 지원을 계속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가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언젠가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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