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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책 - 토베 얀손 [북적북적]

여름의 책 - 토베 얀손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5 : 여름의 책 – 토베 얀손


계절마다 그 계절에 놓치지 말고 즐겨야 할 것들이 있는 법이죠. 그 철에만 나는 음식, 그 날씨에만 할 수 있는 놀이, 그리고 그 계절에 읽어줘야 하는 책도 있습니다.

북적북적, 오늘은 이 계절을 위한 소개하고 읽어드립니다. 제목마저 『여름의 책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이에요. 토베 얀손이 쓰고 삽화를 그렸습니다. 네, 바로 그 작가 맞습니다. 무민 시리즈가 이 분의 손끝에서 태어났죠. 『여름의 책』은 처음 들어보셨어요 '무민'은 다들 아실 테니 친숙한 이름일 겁니다.

오늘 함께 읽어볼 소설 『여름의 책』은 1972년에 발표됐고 영어로는 2003년, 한국어로는 2019년에 번역돼 나왔어요. 책 표지에는 복숭아빛 하늘과 바다에 작은 섬이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초록색 반짝이는 글씨로 여름의 책이라고 쓰여 있어요. 표지만 보셔도 '어, 이거 뭐지?' 하고 펼쳐보게 되는 책입니다.

『여름의 책』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어느 해의 봄부터 8월까지를 그립니다. 핀란드의 한 섬에서 여름을 보내는 가족의 이야기예요. 저는 이 책을 작년 봄에 사서, 책 속 날짜처럼 4월부터 8월까지 천천히 읽으며 코로나 첫 해의 당황스러운 여름을 견뎌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올해 여름에도 또 이 책을 꺼내 들게 되더라고요. 원래 여름은 덥지만 생명력이 넘치고 신나기도 하는 계절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지금 속 시원하게 여행을 갈 수도 없으니까요. 현실은 답답하지만 이 책을 펼치면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시원한 북유럽, 핀란드의 조용한 섬으로 가게 됩니다. 책을 펼쳤을 뿐인데, 그저 몇 페이지 읽어나갔을 뿐인데 북유럽의 청량한 공기와 숲이 우거지고 사람 발길 많이 닿지 않은 섬으로 갈 수 있으니 이걸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두 명입니다. '소피아'라는 6살 손녀, 그리고 소피아의 할머니, 이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끌어가요. 특히 할머니가 엄청난 인물입니다. 이 책의 후기들을 보면 대부분 독자들이 훈훈하다고 마음이 따뜻해지고들 합니다. 이런 느낌의 상당 부분은 할머니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되는데요, 소피아가 말하지 않는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유머를 잃지 않고, 동심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세상 어떤 존재와도 말이 통하는 할머니죠. 참, 소피아의 가족은 한 명 더 있습니다. 소피아의 아빠, 할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인물은 언급은 되지만 그저 배경 같은 존재로 이야기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빠는 일을 하고 있다', '이건 아빠 모르게 하자' 이 정도로만 그려져요. 그리고 소피아의 엄마는 돌아가시고 안 계세요. 그래서 섬에서 세 명이 지냅니다. 할머니, 소피아, 아빠. 그리고 '인물'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존재는 바로 '섬' 이라는 장소 자체입니다. 섬의 물, 공기, 늪, 나무, 꽃, 풀, 이끼, 벌레, 동굴, 오리와 부엉이, 뜸부기, 안개와 폭풍까지 모두요. 이 책은 소피아와 할머니와 섬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설에서 엄청난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할머니랑 손녀가 오손도손 알콩달콩 자분자분,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수영도 하러 가고, 잃어버린 할머니 틀니도 찾고, 비가 오고 개이는 날씨의 변화도 시시각각 느끼고, 이것저것 얘기하고 사부작사부작 하면서 여름을 보냅니다. 그러나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 속에,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 속에, 사는 것, 죽는 것, 자연, 사랑이 다 담겨 있어요. '아침 수영', '달빛', '풀밭', '동굴', '손님'같은 소제목과 함께 스무 편이 조금 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요, 오늘 북적북적에서는 '고양이'와 '베네치아 놀이' 중 일부를 낭독합니다.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는 한숨을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소피아가 말했다. "가끔은 내가 이 고양이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얘를 사랑할 힘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얘 생각만 나."
-『여름의 책』中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추천의 말에서, 작가 모니카 파게르홀름은 '내가 여기서 할 말이 별로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 다 있다'라는 것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최근 다른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어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 지루하지 않은 소설을 읽는 일은 좋다'. (『쓰는 기분』) 이 문장을 읽으며 『여름의 책』이 떠올랐고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 지루하지 않은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여름의 책』을 읽는 일은 참 좋을 겁니다. '아니, 대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 어떻게 지루하지 않을 수 있지?' 갸우뚱하시는 분이라면, 그게 어떤 건지, 이 책을 통해 맛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 제일 뒤에 실린 「8월」이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매일 조금씩 어두워졌다. 8월의 어느 저녁에 밖에서 일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온 세상이 깜깜해진다'. 그리고 이런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아직 여름이었지만 여름은 더 이상 생명이 없었고, 시들지는 않았지만 정지해 버렸다. 하지만 가을은 아직 올 준비가 되지 않았다.' 딱 요즘 같죠? 시들어가는 여름과 준비되지 않은 가을 사이, 매미 소리가 잦아들고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하는 8월 말입니다. 8월이 가기 전에 '여름의 책'이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길 바랍니다.

*출판사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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