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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합훈련 제대로 못하는 군(軍)…신뢰 회복의 방법은 이것뿐인가

[취재파일] 연합훈련 제대로 못하는 군(軍)…신뢰 회복의 방법은 이것뿐인가
하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이 우여곡절 끝에 그제(16일) 시작됐습니다. 사실 올 초에 훈련 일정과 시나리오 등이 한미 군당국 간에 확정된 터라 애초에 훈련 유예나 취소는 불가능했습니다. 북한의 생떼, 여권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의 압력에 군은 어차피 할 훈련인데도 “한미가 협의 중”이라며 모호한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연합훈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대전은 반드시 국가들이 연합해서 전쟁을 치릅니다. 국방비가 물경 1천조 원이라고 해서 시쳇말로 ‘천조국(千兆國)’이라고 불리는 미국도 절대 혼자 전쟁하지 않습니다. 전쟁 한 번 벌이면 천문학적 액수의 돈과 숱한 생명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동맹과 연합군을 구성해야 전쟁에서 생명과 돈을 아낄 수 있습니다. 연합훈련은 이에 대비하는 예행연습이고, 그래서 안보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은 줄이고 줄여서라도 합니다만 우리 군이 다른 대규모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것은 언감생심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병력과 장비가 야전에 투입되는 실기동 연합훈련은 도대체 언제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코로나19로 다른 나라들도 같은 사정인가 싶지만 주변국의 군당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합훈련 일정과 성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염병 창궐했다고 전쟁 멈출 리 없으니 코로나19에도 훈련은 하는 것입니다.
 
물어보나마나 우리 군은 간절하게 훈련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군은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문민정부의 정책과 비전에 순응해야 합니다. 정부가 북한과 신뢰 회복,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대규모 훈련을 자제하라고 하면 군은 묵묵히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2018년부터 3년 이상 우리 군은 연합훈련을 재량껏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민주주의 문민 통제는 안정적이었지만, 우리 군의 연합전투 능력은 많이 상했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연합훈련들

지난 3일부터 2주간 LSE(Large Scale Exercise)-21이라는 훈련이 태평양, 흑해, 지중해 등에서 실시됐습니다. 태평양의 7함대와 3함대, 대서양의 10함대와 4함대, 지중해의 6함대 등 미 해군 함대사령부들이 총동원됐고, 한반도가 포함된 서태평양 인근에서는 붙박이인 호주, 일본과 함께 영국도 참가했습니다. 우리 해군은 못 갔습니다.

영국 항모 퀸 엘리자베스는 이달 말 부산을 방문할 예정인데 한영 훈련 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LSE-21에 참가한 영국 전력은 퀸엘리자베스 항모전단입니다. 지난 5월 영국을 떠나 현재는 서태평양까지 전개했습니다. 이달 말 부산 해군기지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퀸엘리자베스와 우리 해군 함정의 한영해상연합훈련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항모전단 입항 관련 세부 일정을 양국이 협의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독일 호위함 바이에른은 이달 초 출항해 동진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연안경비함 스페이와 타마, 미국의 해안경비함 먼로도 머잖아 동북아로 옵니다. 모두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을 단속 임무를 부여받은 함정들입니다. 우리 해군 함정과 연합훈련을 할 만도 한데 관련 소식은 없습니다.
 
우리 군이 올해 공개한 실기동 연합훈련이라고 해봐야 해군 왕건함 한척이 호주 근처에 갔다 오면서 미국, 일본, 호주 함정과 손발을 맞춘 것과, 공군 F-15K 몇 대가 알래스카에서 열린 레드플래그 훈련에 참가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물론이고, 동남아 국가들도 빈번하게 연합훈련 하는데 우리 군만 소외됐습니다.
 

훈련하면서 한반도 평화 도모할 길은 없나 

분쟁 지역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당사자 간 신뢰 회복이 필요하고, 그래서 상호 간에 군사적 투명성을 확보하는 군비 통제라는 방법이 동원됩니다. 대표적인 군비 통제는 유럽의 동서 냉전, 중동의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분쟁 때 작동했습니다.
 
군비 통제 또는 군축이라고 해서 무작정 양측의 군사력을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훈련 내용과 일정을 공유하는 정도부터 시작합니다. 그것도 훈련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유합니다. 오랜 시간 조금씩 신뢰를 쌓다가 훈련 축소나 중단은 군비 통제의 마지막 국면에서 이뤄집니다. 이렇게 되면 군비 통제는 성공했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남북 간 평화 정착과 신뢰 회복을 위한 군비 통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부터 시도됐습니다. 1990년 남북기본합의서, 2004년 6·4합의도 남북의 군사 문제에 방점을 둔 군비통제입니다. 하나같이 획기적인 군비 통제 방안이지만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판문점선언, 9·19합의가 나왔습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이행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실천 없는 선언은 빈말에 불과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남북의 군비 통제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남북 간 군비 통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군비 통제에서도 마지막 단계인 훈련 축소나 중단 또는 유예는 섣부른 신뢰 회복 조치일 수 있습니다. 임기 내에 뭔가 성가를 내보려는 정부의 조급함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처음부터 너무 큰 것을 내주면 나중에 꺼낼 카드가 없습니다.
 
군대는 평시에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은 군의 평시 할 일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합니다. 이번 정부 임기 내 연합훈련의 전면적 재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한반도 평화 정착과 신뢰 회복을 위한 군비 통제를 하더라도 이치와 순서에 맞게 하기를 바랍니다. 성급하게 군대의 훈련 기회를 박탈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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