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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고국 귀환…보훈처장이 밝힌 뒷이야기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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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 장군 귀환

"홍범도 장군 유해, 78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영면"
"홍범도 장군, 봉오동 전투·청산리 전투 승리로 이끌며 독립투쟁의 동력 돼"
"홍범도 장군, 강제 이주 후에도 고려인들에게 독립의지 고취시켜"
"현지 고려인 서운해했으나 '조국의 영웅은 조국에 묻혀야 한다'고 이해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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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중앙아시아 머나먼 이국땅에서 잠든 지 78년 만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에서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과 함께 홍범도 장군,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장님, 어서 오십시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반갑습니다.
 
▷ 주영진/앵커: 수고 많으셨습니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지난 한 며칠이 상당히 긴박한 며칠이었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바쁘셨죠?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물론 바쁜 것도 있었지만 제 자신이 상당히 긴장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지난 며칠 사이에 이 일이 다 이렇게 이루어진 거죠?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언제 그 카자흐스탄을 가셨던 거죠?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제가 8월 14일 오전에 출발해서 8월 15일 광복절에 저녁 8시경에 돌아왔습니다.
 
▷ 주영진/앵커: 카자흐스탄 가서 거의 바로 돌아온 거네요, 그러면?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네, 그렇습니다. 비행시간이 한 7시간 정도 걸렸으니까 아마 가고 오는 데 시간을 빼면 거의 거기에서 추모식이라든지 계획된 행사를 마치고 거의 빠듯한 일정으로 돌아왔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번에 아마 같이 간 일행 중에 보니까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있고 영화배우 조진웅 씨가 또 있더라고요.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떻게 다 같이 가게 된 거죠?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우원식 국회의원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갔고요. 또 조진웅 영화배우는 그 분야에 많은 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국민 대표로 선발되었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아마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백범 김구 선생 역할도 했었고요. 영화 '암살'인가요? '암살'에서도 또 독립투사, 이름 없는 독립투사 역할을 해서 조진웅 씨가 누구보다 이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생각이 이해가 많다, 홍보대사 역할도 지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처장님은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장군의 유해를 처음 딱 봤을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제 자신이 조국 독립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을 이제야 모시러 왔다는 것 때문에 상당히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지금이라도 조국으로 모실 수 있다는 것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이라도 다시 모실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처장님은 홍범도 장군이 어떤 독립투사였는지 아마 또 이번 행사 주관하시고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공부도 열심히 하셨고 다시 한번 보셨을 텐데 홍범도 장군은 어떤 독립투사였다고 우리 시청자 분들에게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 당시에 홍범도 장군께서 항일투쟁을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려웠을까. 예를 들어서 의병을 모집하는 데도 상당히 힘드셨을 거고 또 그리고 군수물자라든지 무장을 확보하는 데도 많이 어렵고 그다음에 각종 전술이라든지 일본군에 대항해서 어떤 그런 전략전술을 가지고 싸워 이기는 방법을 그렇게 또 체계적으로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그런 데 대해서 저도 생각을 많이 해 봤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1920년도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정말로 큰 항일투쟁에서 대승을 거뒀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정말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협업해서 그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요. 그게 이제 하나의 촉매제가 되어서 우리 항일투쟁을 할 수 있는 의지가 크게 고양됐고 실제 활발하게 전개되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그렇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만약에 우리 홍범도 장군이 없었다면 봉오동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우리의 독립 투쟁은 초반부에 상당한 동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죠. 우리 국민들이 정말로 싸울 수 있는 그런 의지라든지 이런 어떤 자신감 이것들이 상당히 많이 저하되지 않았을까, 생각만 했지 행동하는 데는 상당히 주저함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주영진/앵커: 일본이 대한민국을 강제로 점령한 일본의 힘이 너무나도 강해서 우리는 싸워도 이길 수가 없다는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을 때 1919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조들은 맨손으로 독립 운동, 만세 운동을 했었고요, 3.1절.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에 봉오동에서 청산리에서 우리의 독립군들이 처음으로 일본군에게 전면전에서 승리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것이 우리 독립투쟁의 동력이 됐고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리고 또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렇죠. 나라 잃은 민족에게, 나라 잃은 백성에게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빼앗긴 우리의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줬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이 나가고 있는데 혹시 저 영화 보셨습니까, 처장님? '봉오동 전투'라는 영화?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봤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 영화를 보면 '봉오동 전투' 그러면 주인공이 홍범도 장군일 텐데 홍범도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씨는 영화 후반부에 잠깐 나옵니다. 아마 감독의 의지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이라고 하는 리더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했지만 그 전투에 참여했던 이름 없는 우리 민초들, 그분들 하나하나가 결국은 우리가 새겨야 할, 기억해야 할 독립투사 아니겠느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가 됐다고 합니다.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 한번 볼까요? 화면 왼쪽에 콧수염으로 상징되는 우리 홍범도 장군의 모습이 보이고 그 옆에 최진동 투사의 모습도 보이고요. 또 왼쪽에 홍범도 장군, 우리가 저 사진 많이 보는 거죠. 그리고 오른쪽이 김규식, 아마 대한민국 정부 초대 부통령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임시정부 때. 김규식 투사의 모습도 보이고 저 자료도 대단히 귀한 자료인데 우리 독립기념관에서. 반병률 교수로부터 기증을 받아서 생전 모습이 담긴 모습을 공개했다. 저것도 상당히 시의적절하게 우리 국민들이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귀한 자료가 이번에 공개가 됐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이번에 아마 어제인가요?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고 훈장을 홍범도 장군에게 수여를 했었죠?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떤 훈장 수여한 겁니까?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우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셨습니다.
 
▷ 주영진/앵커: 최고 등급의 훈장인 거죠?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받으신 서훈은 대통령장이었는데 그 공적은 항일투쟁에 대한 어떤 그런 공적으로 받으신 거예요.
 
▷ 주영진/앵커: 1962년인가.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1962년도에 받으신 거고. 이번에 받으신 것은 홍범도 장군께서 우리 민족의 어떤 단결 또 애국, 애족 정신을 고취하고 그다음에 현지에서 우리 고려인들에게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러한 애국, 애족 정신과 또 민족의 어떤 자긍심을 고취하는 그러한 공로로 인해서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을.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비록 늦었지만 홍범도 장군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고요. 혹시 홍범도 장군이 평양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 대한민국에 홍범도 장군의 후손들이 지금 살고 있습니까?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문중에 계신 분들은 저희들이 파악을 했고요. 홍범도 장군님께서는 부인도 홍범도 장군님의 행적에 관해서 일본군에게 고문을 당해서 순국하셨고 두 아드님도 다 전투에서 또 돌아가시고 해서 사실 직접적인 후손은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홍씨 문중에 계신 분들이 지금 여기 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 주영진/앵커: 홍범도 장군 가족은 그야말로 일가가 모두 대한민국 우리 조선, 그 시대에는 조선이었겠죠.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바쳤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연히 우리 후손들이 기려야 할 분들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데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이야기,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보훈처장님은 현장에서 들으셨겠습니다마는 우리 시청자 분들과 다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VCR
 
▷ 주영진/앵커: '장군의 정신을 기리겠다는 굳은 다짐이다'라고 어제 훈장 추서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이야기 여러분과 함께 다시 들어봤습니다. 조금 전에 홍범도 장군의 생전 모습 여러분께 영상을 보여드렸는데 다시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함께 나온, 홍범도 장군과 함께 나온 지금 옆에 김규식 초대 부통령이라고 이름이 되어 있는데 저분이 아니라 아까 처음 화면 보시죠. 최진동 독립운동가의 모습인데 지금 화면에 이름이 좀 잘못 나가고 있다는 점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홍범도 장군, 최진동 장군 모두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1922년 모스크바 회의는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의라고 합니다. 아마도 동북아시아 쪽의 민족혁명단체 대표들이 모인 회의를 모스크바에서 했는데 그 자리에 우리 홍범도 장군과 최진동 장군이 참석을 했고요. 최진동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홍범도 장군과 함께 치렀던 당시 전투의 사령관을 했었던 독립투사라는 점도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이렇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마지막에 만주 또 연해주 갔다가 중앙아시아로까지 옮겨가게 됐는데 아마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다 받으신 것 같은데 말년에 힘든 삶을 사셨는데 고려인들이, 동포들이 우리 장군님 이렇게 사시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아마 고려국장의 수의 역할을 맡겨서 그래도 말년에는 좀 편하게 사셨다 이런 글을 제가 본 기억이 있는데 우리 카자흐스탄에 살고 계시는 우리 동포들, 고려인들은 장군님의 유해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 들으면서 또 어떤 반응 혹시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방금 말씀하셨지만 간도에서 연해주로 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렇게 나라 없이 다니셨던 그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까라고 생각을 하면 참 암담합니다. 오늘 안장식 때 대통령께서도 그 대목에서 울먹이시는 걸 저희들이 현장에서 봤는데요.
 
▷ 주영진/앵커: 김정숙 여사도 눈물을 훔치셨다는 기사 봤습니다.
 
▶ 황기철/국가보훈처장: 다들 숙연해졌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희들이 좀 아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 같고요. 이제 마지막에 거기 가서 일생을 사시면서 고려인들한테 상당히 존경을 받은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 현지에 가서 보니까 고려인들이 상당히 홍범도 장군님에 대한 애정과 거기서 홍범도 장군께서 우리 고려인들을 참 이렇게 화합해서 함께 단결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여기 출발해서 오실 때 우리 고려인들이 참 한마디로 서운해하는 그런 모습들이 역력했습니다. 그래도 그쪽에서는 조국의 영웅은 조국에 모셔야 한다는 그런 어떤 생각들이 다 모아져서 이번에 모시고 올 수 있게 됐고요. 또 한편으로 그것도 아쉬워서 막 추모식을 마치고 별도로 고려인들끼리 우리 홍범도 장군님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우리의 풍습대로 차례를 지내는 것을 보니까 정말 가슴이 찡했습니다. 아무리 거기에서 우리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화 됐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 문화에 대한 그런 것이 지켜지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 또 마음이 찡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우리 처장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이 됩니다. 홍범도 장군, 마침내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고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분들은 고국이 기억을 하고 반드시 모셔야 할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 그리고 대전국립현충원 안장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의 해방, 우리의 광복은 절반의 광복이겠죠. 홍범도 장군의 고향은 평양입니다. 누구나 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통일이 돼서 완전한 광복이 돼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향, 평양에 잠들 수 있는 그날 우리 후손들이 비로소 더 떳떳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홍범도 장군을 기리는 영상,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대표적인 저항시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시를 노래로 불렀고요. 이 노래와 함께 저희가 준비한 영상 보면서 홍범도 장군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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