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깊은EYE] 미 수송기 매달렸다 추락사한 아프간인이 던진 단상

'미국 믿다가' vs ' 미국 믿어야'…이념 따라 상반 해석

충격적인 사진을 봤다.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이륙하는 미군 수송기 바퀴에 붙어 있다가 결국 추락하고 마는 아프간 청년들을 찍은 사진이다. 이는 오직 우방의 힘에 의존하며 무능과 부패로 몰락한 국가의 시민이 맞닥뜨리게 되는 참혹함의 비극적 상징으로 기록될 만하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창출한 숭고한 가치가 빛을 발하고 세계가 화합과 평화로 넘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숭고한 가치는 현실적 이익에 의해 배척당하고, 온건한 협의보다는 극단적 대립이 세상을 난도질하고 있다.

선도국가이면서 세계의 경찰을 자부했던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포기를 선언했다. 평화 유지와 인권 존중, 민주주의 확장이라는 거창한 가치보다는 국익이 먼저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단행한 것이다. 그 결과는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정권의 전광석화 같은 몰락이었다.

탈레반, 아프간 장악

미국의 실리 추구는 이념적 상극이었던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이 유일하게 일치하는 가치다. 이는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국익 우선이 미국의 최우선 가치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희한한 것은 이를 해석하는 한국의 진영 논리들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봐라! 미국이 포기하면 저렇게 된다. 미국과의 연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진보 진영에서는 "봐라! 미국 믿다가는 저 꼴 된다. 미국을 경계해야 한다"며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 해석은 정반대지만,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이 아프간 철수에서 내건 두 가지 명분이다. 첫째는 "당신들의 나라는 당신들이 책임져라!"는 것, 두 번째는 "실익을 위해서는 동맹도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에게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 "미국은 절대 한국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이상한 믿음에는 신기하게도 이념적 성향에 따른 구분이 없다. 보수도 진보도 나름의 논리에 따라 미국은 전략적으로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갖는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믿음은 정책적 판단에 담대함을 부여한다. 미국에 어느 정도 '맞짱'뜨더라도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란 진보 진영의 판단과, 미국과의 영구적인 연대로 중국과 일본,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보수 진영의 판단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 가치 동맹이 실리 동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미국은 더 큰 실리를 위해 이를 언제든 버릴 수 있다.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명분과 인도주의로 다가서다간 실리의 칼날에 베일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을 위한 트럼프의 한국 때리기를 바이든의 미국도 이어받았다. 현 정권의 친중·친북성향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북한은 여전히 한국에 냉담하다. 이런 상황은 혹 '우리는 명분을 중시하는데 그들은 실익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명분을 앞세운 어설픈 균형 외교는 모두에게 외면받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통일도 그렇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통일이 우리 국민에게 어떤 실익을 줄 것인가'를 알려야 하고, 중일 관계에서도 과거사로 국민 감성만 자극하며 정략적으로 활용할 게 아니라, 그들과 어떤 실익을 주고받을 건가를 치밀하게 따져야 한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