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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햇볕정책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 '쿨한 남북 관계'론 ①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햇볕정책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 '쿨한 남북 관계'론 ①
통신선 복원으로 개선되는 듯 했던 남북 관계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 이후 다시 냉랭해졌습니다. 북한이 한미훈련에 반발해 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을 할 지 대남 비난 담화로만 이 국면을 마무리하고 남북 관계 관리에 나설지 모르겠지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북한의 행태가 이미 한두 번이 아닌 만큼 북한이 어떤 돌발적 행동을 하더라도 별로 새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다시 남북 관계의 손길을 내민다고 해도 진정한 남북 관계가 새로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2000년부터 따져보면 남북정상회담이 다섯 차례나 열렸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에서의 남북미정상회동이 있었지만, 남북 관계는 계속 제자리이거나 때로는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 개선에 열의를 다해왔다는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임기 말의 시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크게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에서는 앞으로 매주 한 차례씩 네 차례에 걸쳐 그동안의 대북 접근법을 되돌아보고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인 북핵 문제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쿨한 남북 관계'론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이 글들은 새로운 대북 접근법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쿨한 남북 관계'론 글 싣는 순서
① 햇볕정책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②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③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보였나
④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북한, 높아지는 대북 피로도
 

햇볕정책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2000년 6월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분단 이후 처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은 냉전의 마지막 고도인 한반도에서도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감격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따뜻한 햇볕으로 북한이 빗장을 풀고 세계로 나오게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남북정상회담으로 본 궤도에 올랐고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은 남북 교류협력의 제도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듯 했습니다. 북핵 문제 또한 북미 또는 6자회담 합의를 통해 해결의 길을 찾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 정상회담에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개방은 크게 진전되지 않았고 남북 관계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며 북핵 상황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현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이고, 주기적인 도발과 막말을 쏟아내는 북한에 대해 국민들의 피로도도 높아졌습니다. 북한에 대한 피로도의 증가는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하고,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함으로써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궁극적인 통일의 길을 열어간다는 대북 포용정책의 명제는 사실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을 선택지로 고려할 수 없는 이상, 평화적 방법에 의한 긴장 완화와 분단 구조 해소 방안은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정책이 시작된 뒤 20년이 더 지났는데도 만족할만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든 20년이 지났는데도 성과가 부족하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외부 변수 때문인지,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원인을 따져봐야 정책을 업데이트하든 대안을 모색하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북정책의 비일관성, 포용정책의 성과 막아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북 포용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대북정책의 비일관성 때문입니다.

포용정책이란 북한과의 신뢰 조성을 통해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인데 일관된 신뢰조성 정책이 정권에 관계없이 꾸준히 진행되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단위로 바뀌는 대북정책 하에서는 북한이 변화를 시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북정책은 어떤 세력이 집권을 하느냐에 따라 좌우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장관급 회담의 정례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으로 제도화됐던 남북 관계가 2016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우리 대북정책의 비일관성을 단적으로 상징합니다. 물론 이런 결과는 북한의 대남 도발과 핵 개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남북 관계가 기존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성과물을 뒤엎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은 대북정책의 효용성을 극히 제한시키는 쪽으로 작용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대북정책의 비일관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며, 대북정책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주요한 이슈 중의 하나입니다. 여야 간의 정권 교체가 될 경우 지금의 대북정책이 뒤집힐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남한의 대북정책이 표변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에서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그 세력의 대북정책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한의 대북정책에 맞춰 변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남한의 가변적인 대북정책을 어떻게 이용해먹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북 포용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노동당 8차 대회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나

포용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 체제의 경직성 때문입니다.

포용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전 글( ▶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의 나라 북한, 북한은 개혁개방을 할 수 있을까? ①)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일성의 사상이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김일성 일가의 나라에서는 적극적인 대외 개방이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 김일성 일가 우상화에 대한 허구가 드러나고 김일성 일가의 절대적인 기득권에 균열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제정해 남한 영상물을 유입 배포하면 사형까지 시킬 정도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외부 정보 유입이 체제에 큰 위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에도 틈만 나면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의 어원이 된 이솝우화를 살펴보죠. 외투를 입고 있는 나그네에게 강한 바람을 불게 했으나 나그네는 외투를 오히려 꽁꽁 싸맸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니 외투를 벗었다는 데에서 착안해, 바람보다는 햇볕이 외투를 벗기는 데 더 효과가 있다는 포용정책의 논리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이솝우화 속의 나그네는 햇볕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나그네가 외투를 벗기려는 햇볕의 의도를 알고 이에 저항하려 했다면, 외투를 벗는 대신 그늘 밑에 들어가거나 햇볕을 이용해 태양열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한 뒤 선풍기나 에어컨을 트는 방식으로 외투를 계속 꽁꽁 싸맸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나름의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 독립적인 존재이며, 우리 정부가 아무리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려고 한들 북한이 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습니다. 변화를 시도하는 주체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기 때문입니다.

외부에 개방하면 김일성 일가의 절대독재가 위협을 받는 체제의 경직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의 변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북 포용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작동을 막는 남북한의 현실

햇볕정책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남북한의 현실은 햇볕정책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러한 구조가 잘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진보-보수의 적대적 대립으로 인한 남한의 대북정책 비일관성과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체제에서 오는 북한 체제의 경직성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햇볕정책의 성과를 막는 주요 장애물이었던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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