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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핏줄 냉대가 더 힘들다"…160년 유랑 고려인의 눈물

잊혀진 영웅들…여전히 '이방인의 삶' 고려인

<앵커>

일제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 가운데는 고려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강제 이주 정책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많은데, 고려인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들을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이 내용 임상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 종로의 아파트 단지 한 켠.

신흥무관학교와 고려혁명군을 이끌던 항일 무장투쟁 영웅, 김경천 장군의 집터가 있습니다.

백마 탄 장군으로 이름을 떨치던 김 장군은 일본 첩자란 누명을 쓰고 1942년,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복권은 됐지만 유해는 행방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김올가/김경천 장군 증손녀 : 실제적으로 싸웠던 사람인데, 그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 근데 현충원에 없는 거예요.]

카자흐스탄에서 7년 전 귀화한 올가 씨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달라고 호소해 왔습니다.

[김올가/김경천 장군 증손녀 : 여기서는 무조건 힘들다. 무조건 찾을 수 없다라고 하면 정말 너무 억울하고….]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유명한 분들은 더 많이 유명하고, 더 많이 조명되고, 더 많이 기념되고, 수많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는 여전히 무명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죠. 즉, 독립운동계에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다고.]

2018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영구 귀국한 소피아 씨, 옛 서대문 형무소에서 1호 사형을 당한 의병장 허위 선생의 현손입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보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소피아/허위 선생 증손녀 : 돈이 얼마 없어서 (아이들) 학원도 못 보내고, 집에서 같이 배웠어요. 힘들게 배웠어요.]

구소련 붕괴 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지에 흩어져 살다 차별대우와 경제적 어려움에 한국행을 택한 고려인들이  2010년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데요, 전국 각지에 터 잡은 고려인 수가 10만 명에 달하는데 한국말이 서툴고 기술이 없다 보니 대부분 저임금 단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방문취업비자나 방문동거비자로 체류 중인데 국적 취득은 하늘의 별 따기다 보니 의료나 교육 등 복지에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신대광/고려인 지원센터 '너머' : 피를 나눈, 그런 가족 같은 의미인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비자를 주지 않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는 피해들을 이분들도 똑같이 당하는 거예요.]

또다시 찾아온 광복절. 160년의 긴 유랑 끝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는 고려인들. 

일상의 고단함보다 견디기 힘든 건 같은 핏줄이자 이웃들의 무관심과 냉대라고 말합니다.

[소피아/허위 선생 증손녀 : 한국 사람들이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올가/김경천 장군 증손녀 : 홍범도 유해를 여기 모시는 게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첫 단계, 첫 단계로 됐으면 좋겠어요.]
 
(영상취재 : 이승환·김태훈·설민환, 영상편집 : 정한욱, 작가 : 김채현, CG : 홍성용·최재영·성재은·정시원·안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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