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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북적북적]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북적북적]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21.08.08 08: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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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03 :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인생이 조금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이 글을 쓰다 ‘행복이란’을 검색해 보니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뭐야, 언제부터 인생에 그런 목표가 있어야 했던 거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행복해 볼까. 아, 귀찮은데." 

귀에 꽂기만 하면 외국어가 자동으로 한국어로 바뀌어 들리고 내가 하는 말도 그 나라말로 곧바로 전달되는 그런 실시간 통번역기, 그런 건 금방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럼 더는 외국 나가서, 혹은 외국인을 만나 더듬댈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죠. 구글, 파파고... 여러 앱과 프로그램이 나왔고 장비들도 여럿 나왔다지만 아직 널리, 편하게 쓰일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언어의 장벽,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에게 만만하지 않죠. 그걸 뛰어넘도록 도와주는 이들, 영화나 드라마, 논문, 기사, 책...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는 분들이 번역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히가시노 게이고, 오가와 이토, 마스다 미리.. 일본 소설 좋아하는 분들이면 이들 작가의 책을 다수 읽었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한국 독자 한정으로 '길잡이'가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30년 차 일본 문학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로도 문명을 날리고 있는 권남희 작가의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입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못 알아차릴 만큼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집안도 외모도 성격도 존재감 무. 거기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없는 아이. 그 외 다수에 속하는 어린이 1인, 청소년 1인. 그런 내가 어른이 되어서 300권 가까운 책을 번역하였고, 이런 나를 보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니 인간 승리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 직업이라는 이 은혜로운 상황을 맞게 된 건 글쓰기와 독서를 하며 존재감 없는 시절을 꿋꿋하게 살아낸 과거의 나 덕분이리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빌려준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에는 약 보름 동안 약 37,465개의 질문이 올라왔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3,716개의 답변을 달았다. 확률은 10퍼센트. '또뽑기' 하면 꽝만 나오는 내 마이너스의 손, 걸릴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

"그래, 얼굴 보고 경기하면 어때, 뒷모습이라도 아가씨로 봐주니 고맙잖아, 하고 생각하니 얼굴에 곱실곱실 미소가 돌고 목소리도 가늘어진다. 그러나 기껏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더니만,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쌩 가버린다. 왐마, 하루키 님도 재수 옴 붙은 느낌이 드는 이 상황에서는 긍정적일 수 없을 거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역시 글에는 글 쓴 이의 성품이 알게 모르게 배어날 수밖에 없겠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진솔하고 소박하면서도 은근히 재치가 넘치다니요. 저는 알고 보니 그동안에도 권남희 번역가가 옮긴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이제는 그가 직접 쓴 책을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팬이 돼 버렸습니다. 어째서 그랬느냐 하면…
 
"나무늘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종일 집 안에만 있는 내가 느리고 게을러터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긴 세월 나름대로 쉬지 않고 번역만 하며 성실하게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기 가치관과 다르게 산다 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교만이다."

"서로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은 잠시 소환했다가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좋다. 긴 공백은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한다. 안부는 바람을 통해 듣도록 하자. 그 시절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50대가 된 지금도 하늘 아래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잘 지내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흔히 관계가 파괴된 후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하고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관계가 나빠진 것이지 사람이 나빠진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문득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할 건 아니지만 그냥 '좋구나', '괜찮구나' 하고 종종 느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좀은 귀찮더라도요. 어느 사이 살펴보면 그러고 있는 삶... 소소하지만 중독성 있는 글을 쓰고 무게 잡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가는 작가의 일상과 마음이 느껴져서 좋은 책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그런 삶과 글입니다.
 
"하나둘 보다 보니 급기야 10년 치 공연 영상을 다 보고 말았다. 번역을 시작한 이후, 텔레비전 한 번 마음 편히 본 적 없는 내가 말이다. 국카스텐 덕질을 기점으로 기를 쓰고 사는 쪽보다 내려놓고 사는 쪽으로 삶의 노선이 바뀐 것 같다... 국카스텐 덕질은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나의 유일한 일탈이자 도락이자 휴식이자 낙이다. 음악대장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무음의 세계에서 소처럼 일만 했겠지."

"그러나 알고 보면 남들도 행복하지 않다. 인생이 조증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주부미)가 철철 넘쳐 난다. 이러니 따뜻한 번역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번역가라는 수식어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라는 말이 더 좋다."

*출판사 상상출판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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