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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금메달 못 따면 비애국?…올림픽과 중국의 국가주의

도쿄올림픽에서 중국의 기세가 매섭습니다. 중국은 6일 오후 2시 현재 금메달 34개, 은메달 24개, 동메달 16개로, 금메달 수로는 30개를 획득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폐막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중국이 끝까지 선두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다고 중국 관영매체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은 아직 없습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중국 밖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는 2위가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직전 올림픽인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미국과 영국에 밀려 3위를 차지했습니다. 리우올림픽에서 중국은 금메달 26개를 차지해 금메달 46개를 딴 1위 미국과 비교적 큰 격차가 났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중국 대륙이, 14억 인구가 들썩일 만합니다.
 

BBC "금메달 못 따면 중국에선 비애국…민족주의 기승"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5일 밤 '서방 국가들이 올림픽에 대한 중국인의 성숙한 사고방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에 앞서 영국 BBC는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의 선수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온라인 상에서 격분한 중국 민족주의자들에게 비애국적인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선수들에 대한 압박이 이보다 더 컸던 적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의 선수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전한 BBC 보도. 은메달을 따고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국 선수들의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BBC는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했습니다. BBC에 따르면, 탁구 혼합복식 결승에서 일본에 패한 중국 선수 류스원은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팀을 망친 것 같다.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파트너인 쉬신도 "전 국민이 이번 결승전을 고대하고 있었다. 중국 팀 전체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는 일부 '키보드 워리어'들이 "나라를 망쳤다"며 두 선수를 공격했습니다. 다른 네티즌들은 심판이 편파 판정을 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중국이 국기로 여기는 탁구 종목에서, 그것도 최근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에게 패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배드민턴 복식 결승에서 타이완에 패한 중국 선수들도 온라인에서 표적이 됐습니다. 웨이보에는 "잠이 덜 깼니?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형편없다"는 비난 글이 올라왔습니다. 도쿄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 사격의 양첸 선수는 나이키 신발 사진을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올렸다가 결국 삭제해야 했습니다. 앞서 나이키는 강제 노동 등 인권 문제를 이유로 신장위구르에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해 중국인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아이오와주립대 정치학 전문가인 조나단 해시드 박사는 "'소분홍'이라 불리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젊은이들이 온라인에서 균형 잃은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며 "국가에 대한 합법적인 비판이 점점 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가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BBC는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국에 대한 비판이 중국의 발전을 겨냥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중국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중국 매체 "중국인에게 메달은 작은 일부분에 불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내 정반대의 상황을 부각했습니다. 중국팀 최연소 선수인 14세의 다이빙 취안훙찬은 금메달을 따기 전부터 이미 관심의 대상이 됐다고 했습니다. 광둥성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돕기 위해 운동선수가 되기로 했다는 사연을 소개하며, 중국 네티즌들은 "착한 아이가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존경을 표했다고 전했습니다. 멀리뛰기 은메달리스트 주야밍은 중국의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고, 다른 육상 선수들도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광범위한 찬사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경기장 밖 선수들의 모습도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서방 국가들이 올림픽에 대한 중국인의 성숙한 사고방식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인들은 '메달 우선' 사고방식에 작별을 고하고 있다"며 "중국인들은 우승 이상의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적인 모습, 도전 정신 등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 이제 중국인에게 메달 획득은 올림픽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오성홍기 새겨진 선수들 마스크 인기"…선수 가슴에 마오쩌둥 배지도

글로벌타임스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올림픽을 애국주의 소재로 삼으려고 하는 흔적은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당장 바이두를 비롯한 중국 포털 사이트와 관영매체에는 중국 선수들의 금메달 획득과 승리 소식이 가득합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을 이겼을 때는 환호가 더합니다. 글로벌타임스에는 앞에서 언급한 기사와 함께 '중국 선수들이 착용한, 오성홍기가 새겨진 마스크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티셔츠부터 운동 기구까지 도쿄올림픽에 중국산 제품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기사가 함께 실려 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또, 호주의 한 매체가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취안훙찬에 대해 "완벽한 점수를 받고도 미소를 짓지 않았다", "황폐해 보였다"고 언급한 데 대해 마치 영혼 없는 기계처럼 묘사했다며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과 호주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친미 행보를 이어가면서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나아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의 사이클링 금메달리스트들이 시상식에서 마오쩌둥 배지를 차고 나와 IOC가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치적 선전을 금지한 IOC 규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 중국 사이클링 금메달리스트들의 가슴에 마오쩌둥 배지가 부착돼 있다.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가 다분히 국가주의 성향을 띠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어느 나라 경기보다 한·일전 승부에 더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또, 올림픽에서 자국 선수의 선전을 응원하는 것도, 패배보다 승리에 환호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올림픽 보도 이면에선 정치적 의도가 읽힙니다. 미·중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한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있는 데 대해 고무돼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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