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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불안해서 절실했던 MZ세대 '문명인', 밍키와 재재

1. 이은재는 기자 지망생이었고, 홍민지는 PD 지망생이었다. 두 사람이 2015년 SBS 뉴미디어팀 인턴으로 들어왔을 때 이들이 불과 몇 년 만에 이런 성과를 내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없었다. 6개월이면 나갈 인턴들이 그렇게 미친듯이 열심히 일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들도 없었다. 기자, PD 공채 문화가 자리잡은 방송사에서 이들은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였다. 입사하는 방식도, 일하는 방식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도 기존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은 조회수가 300만, 400만이 넘는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이은재는 올해 백상예술대상 예능상 후보에 올랐고, <문명특급> 구독자 수는 147만 명이다.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 컴눈명(컴백해도 눈 감아줄 명곡), 다만세(다시 만난 세대), 연반인 같은 말을 세상에 내놓고 유행시켰다. 무엇보다 '신문물을 전파하라'는 구호를 앞세운 이 유튜브 채널 자체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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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런 수치를 앞세운 성과 때문에 두 사람을 만나려 한 것은 아니다. SNS에서 이들보다 화려한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은 찾자고 들면 얼마든지 있다. 이들이 SBS 구성원이기에 만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문명특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언론사 인턴에서 시작해 비정규직 프리랜서를 거쳐 지금은 SBS 계열사 PD로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의 스토리는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은재는 1990년생, 홍민지는 1991년생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MZ세대인 이들은 신문물의 전도사를 자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전파하려는 신문물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신문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더 궁금했다.

2015년 이후 SBS 목동 사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지내고 있지만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명특급>은 이들이 만든 총 200편의 에피소드 중 몇 편을 주마간산 격으로 본 것이 전부다. 공통의 화제가 전혀 없을 것 같아 어떻게 말문을 열고 대화를 이어가야 될지 다소 고민이었는데 대화의 출발은 매끄러웠다.

2. 두 사람이 인턴으로 들어올 무렵 SBS 뉴미디어 전략은 20대의 손과 발과 머리를 빌려 20대를 공략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한두 달로 끝나는 단기 인턴이 아니라 6개월 장기 인턴을 실무 능력 중심으로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을 넘겼다. 아이템 발제와 제작, 출고를 사실상 이들에게 맡겼다. 이런 방식은 대단한 파격이었다. 당시 SBS 뉴미디어팀 기자였던 하대석은 인턴들에게 뉴스 제작을 가르치고 방향을 잡아주는 교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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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다 20대들 소굴이었거든요. 그러니까 20대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줘야 잘 되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친구들이 하고 싶다는 아이템을 다 모아놓고 거기에서 뭘 할지를 골랐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러지 않았고 당시 선배들도 저희를 믿고 맡겨주시는 스타일이었죠. 그러니까 좋은 아이디어는 다 그 친구들이 낸 거고 저는 그 아이디어가 좋은 퀄리티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 거죠." 하대석/쿠팡 이사

이은재는 사회 정의와 관련된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고 붙임성도 좋았다. 정의감이 투철해서 본인의 희망대로 기자가 되면 뛰어난 고발 전문 기자가 될 수 있겠다고 하대석은 생각했다. 노래방에 가면 남이 시키지 않아도 춤 잘 추고 노래도 잘했다. 그 때 이은재 고교 시절 별명이 <전교 1등 여자 비>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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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지의 장점은 다른 데 있었다.

"이 친구가 잘하는 게 뭐냐면 인물을 딱 하나 설정한 다음에 그 인물의 장점을 뽑아내서 극대화하는 거예요…. 그때는 저희가 돈도 없고 해서 다른 사회자를 쓸 처지가 아니었는데 바로 자기 옆자리에 있는 이은재라는 친구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자기 작품에 출연시키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준 거예요. 사람들로 하여금 이은재를 좋아하게 만드는 엄청난 재주가 있더라고요." 하대석/쿠팡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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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홍민지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계속해서 무거운 사회 이슈를 다루는 사람으로 남았을 거라는 게 하대석의 이야기다. 어쨌든 이은재와 홍민지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예명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은재는 재재, 홍민지는 밍키였다. 뉴미디어팀 인턴들은 기자 선배들에게 혼이 나고 깨져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박박 대들었다.

홍민지 / "하대석 기자님이 뭘 지적하면 저는 그 지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자기 전까지 찾아 그것을 다 외웠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출근하면 바로 하기자님한테 가서 '어제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러이러해서 제 말이 맞아요"라고 반박했어요."

홍민지 이야기를 하대석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뉴미디어팀 기자들이 인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분명하다.

"제가 인턴들이 오면 처음에 항상 한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뭐라고 하면 무조건 반론을 제기해라. 무조건 나한테 개겨라 그랬어요. 당신들이 개기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을 뽑을 이유가 없다, 당신들을 우리가 잡일이나 시키려고 뽑은 게 아니다, 당신들 감각이 필요해서 뽑은 것인데 당신들이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당신들이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랬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개겨도 너무 개기는 거예요. 사실 그래서 이 친구들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어요." 하대석/쿠팡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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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들에게 판을 깔아준 SBS 뉴미디어 전략과 열정이 넘치는 대학생 인턴들의 결합은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스브스뉴스가 하나의 모범 사례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이은재와 홍민지는 그 재능을 조금씩 인정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좌절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인턴을 마치고 프리랜서 PD로 SBS와 계약을 맺고 일하면서 취업 활동을 병행했다. 언론사를 비롯한 기업의 문을 수없이 두드렸지만 이들에게 취업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은재는 50곳이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냈고, 홍민지도 언론사 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은 두 사람이 SBS 자회사인 디지털뉴스랩의 정규직이 된 2018년까지 계속되었다. 이은재가 29살, 홍민지는 28살 때다. 두 사람의 취업 활동과 문명특급 초창기는 시기적으로 겹친다. 프리랜서 PD로 일하던 시절 이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콘텐츠 조회수가 떨어져서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에 시달렸다. 이 불안감은 정규직이 된 이후에도 이들을 오래도록 지배했다.

3. 뜻밖에도 자신들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조회수, 구독자수,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은 자랑하고도 남을 듯하였는데 이들은 그런 것을 내세우지 않았다. 두 사람을 만난 7월 15일은 <문명특급> 200번째 콘텐츠인 '똥 밟았네'를 올린 날이었다. 200회를 맞는 감흥이 남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홍민지 / "(콘텐츠를 꾸준히 올리지 않으면) 채널이 죽을까 봐 마치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를 불어넣는 심정으로 한 편 한 편을 만들다 보니 200회가 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우리가 100회를 가겠다, 200회를 가겠다 계획한 것은 없어요. 그렇게 멀리 볼 여유가 저희에겐 없었어요."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를 불어넣는 심정으로 한 편 한 편을 만들다 보니 100회가 됐고, 200회가 됐다.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고 앞으로도 구독자 200만, 1천만 명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처럼 일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자신들의 모습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표현했다.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가 있는 채널을 만들었으니 이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를 디딤돌 삼아서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것이라면 여기를 추천하겠지만, 나처럼 되고 싶어서 여기를 선택하려 한다면 뜯어말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은재 / "저를 보고 이쪽에 오고 싶은 친구들이 제발 여기 실상이 뭔지나 알고 와라, 알고 오면 좋겠어요."

홍민지 / "저희가 포장을 하자면 포장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저희는 정말 허세 없이 저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얘기하고 싶어요.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 안에는 분명히 복잡한 면들이 많을 텐테 엄청나게 예쁘게 포장되어서 전달되니까 보는 사람들이 '나 저 직업하고 싶다, 나 저 사람들이랑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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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에서 시작해 정규직이 되었고 영향력 있는 PD, 연예인 능가하는 유명인이 되었으니 후배들의 롤모델이 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이은재가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질문 자체가 자기들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은재의 말이 통렬했다.

이은재 /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저희들에게 확실한 후배가 있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데 저희 팀에는 (보도국처럼) 그런 후배가 없어요. 동료일 뿐이에요. 동료들에게 여기를 발판으로 삼아서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할 곳이지, '너희가 여기서 6년 뒤에 나처럼 돼야 해'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거든요."

자신들이 이룬 것이 성공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이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성공했구나, 인정받는구나 하는 순간은 있을 것이다.

-우리 작업이 사회적으로 평가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언제입니까.
이은재 / "조회수보다는 저희가 어떤 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냈을 때 가장 크게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숨듣명'은 저희들이 쓰기 전부터 들었던 단어인데 '컴눈명'은 저희가 진짜로 만들어낸 단어거든요. 그런 단어들을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무언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는구나 생각하죠.

<문명특급>은 주로 90년대생을 타겟으로 만든다. 데뷔한 지 12년이 된 <애프터스쿨>을 학창 시절의 추억담으로 소환할 수 있는 세대, 이 걸그룹의 노래를 기억하고 춤동작을 따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콘텐츠의 주요 소비자들이다.

-두 분이 밀레니얼세대의 상징적인, 대표적인 콘텐츠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습니까?
이은재 / "우리가 만드는 '숨듣명'이나 '컴눈명'이 TV에 편성이 되고 우리 관련 기사 헤드라인을 보고 알았어요. '우리가 밀레니얼 콘텐츠를 올려놓은 거구나, 그런 평가를 해주시는구나' 그때 피부에 와닿게 알았지만 저희 스스로 우리가 밀레니얼세대의 대표 주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예요."

이들이 열어가는 세상이 '문명' 세상이다. 이 사람들이 그 세상에서 주류다. <문명특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문물에서 소외된 사람, 신문물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 신문물이 무엇인지 알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의 세상을 신문물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자신들의 신문물을 좀더 널리 알릴 필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올 하반기부터 조금씩 소재를 확대하고 K-POP 아이돌과 연예인 중심이던 출연진을 다양화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홍민지 / "예전에는 확장할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기획 의도 자체가 90년대생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 독자들이 아버지,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거나 동생들과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저희도 거기에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계층은 저희에게 소외감을 느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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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에게 미래는 없었다고 했고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거웠단다.

이은재 / "저희는 1-2년 이상의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지금 버티고, 다음 달 버티고…. 지금은 그래도 좋아진 게 예전에는 다음 주까지 버티자 했는데 지금은 다음 달까지 버티자, 다음 분기까지 버티자까지는 텀이 길어진 거 같아요."

요새 들어서야 재테크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재테크는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은재 / "왜냐하면 작년까지는 10년 뒤를 바라본다는 것이 되게 배부른 소리였거든요. 미래를 그린다는 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고, 구체적인 목표가 없고, 언제 뿌리 뽑힐지 몰라 불안하다는 말은 3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반복되었다. 10년이 지난다 한들 내 집을 살 수도 없고, 정규직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대다수 밀레니얼세대의 불안과 비관은 이은재, 홍민지의 이런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싶다.

4. <문명특급> 200개 콘텐츠 가운데 단 하나만 봐야 한다면 윤여정 편을 들고 싶다.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게 무엇인지,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윤여정은 화관까지 쓰고 나온 이은재의 요란한 분장과 다소 과해 보이는 반응에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뒤에서 유튜브(나) 하는 거야"라고 혀를 차던 노배우는 2시간의 녹화가 끝날 때쯤에는 이은재에게 완전히 빠졌다. 이들의 용어를 빌리면 '재며 들어간다'. 자신이 출연한 거의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섭렵하고 나온 이은재와 제작팀의 열정과 노력에 감동한 것이다. 이 까탈스런 배우가 오죽 좋았으면 "정말 좋았어요. 준비 많이 했잖아"라며 "진짜 다시 나올게요"라는 약속을 했을까.

이은재 / "그때 제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상태였어요. 늘 같은 일만 하는 거 같아 자괴감이 들었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윤여정 편을 준비할 때 심혈을 기울였어요. 이번에도 못하면 이쪽은 때려 치우는 게 맞을 거 같다는 생각, 저는 이것을 저주받은 책임감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마음으로 그때를 견디고 이겨낸 거 같아요. 그러고 나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고요."

완벽한 준비와 열정만큼은 누구도 이 사람들 따라갈 수 없다. 아이돌 스타들에게 감정 노동 요구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는 배려도 다른 곳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지상파 프로그램에도 얼굴 내미는 것이 인색한 도도한 스타들이 <문명특급> 무대에는 선뜻 나선다. 거기에 우리도 나가고 싶다는 연예인들까지 생겼고 이은재는 연예인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유튜브 콘텐츠 몇 개 만드는 것과 공개홀에서 카메라 10대 가까이 동원해서 공연을 연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SBS 등촌동 공개홀을 빌려서 지금은 무대에서 보기 힘든 아이돌 스타를 부른 '컴눈명' 기획은 이들에게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런 일이 어떤 일인지 알았더라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이다. 기획, 섭외, 무대 연출, 진행과 편집은 물론 광고까지, A부터 Z까지 이들의 몫이었다. 하다못해 출연자 의상까지 이들이 다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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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지 / "'너희 너무 힘들어, 하지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안 벌였을 거 같아요. 일 벌여 놓고 너무 크게 후회가 왔어요."

이은재 / "뭘 모르고 뛰어든 거죠. 불나방처럼…. 시작하고 나서 이걸 왜 벌였을까 후회막급이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힘들었죠. 저희가 해보지 않은 영역이 너무 많았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무대는 만들어졌고 <애프터 스쿨> 공연 영상 조회수는 700만이 넘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큰 조직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홍민지 / "그 공연을 해내게 된 것은 감독님들이 계셨기 때문이죠. 그분들이 저 대신 연출까지 다 해주셨어요. 제가 촬영팀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처음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서, 진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갈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해주세요.' 그랬더니 노하우가 가장 많은 분들을 저희 팀에 배정을 해주셨고 어떤 감독님은 일부러 현장까지 오셨더라고요. 너무 걱정돼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걱정이 돼서 오셨다고…."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들에게는 절실함이 있었다. 그런 절실함이 이들이 일군 성취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절실한 것으로 따지면 다른 사람들이라고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시대를 사는 청년들 치고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절박함은 마찬가지일 거 같은데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이 둘의 절실함, 그건 부끄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땅이라도 파먹겠다는 자세였다.

두 사람 모두 부끄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땅이라도 파먹겠다는 자세라고 했다. 자신들은 더 절실했다는 것이다. 남들이 비웃건 말건, 손가락질을 하건 말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자세가 남들과 다른 점이라고 했다. 이거 과장 아닌가, 습관성 표현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 말을 할 때 이 사람들 표정을 보면 과장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유튜브에서 당신들은 메이저 중에 메이저입니다. 어떻게 하면 유튜브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까 조언을 구하고 싶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소외감, 피해 의식이 강한 거 같습니다.
홍민지 / "저희는 남은 게 자격지심밖에 없어요."

-그런 것들이 왜 이렇게까지 강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은재 / "왜냐하면 다시 4-5년 전으로 돌아갈까 봐서요."

4-5년 전, 그러니까 이들이 비정규직이던 시절 이들은 재직증명서가 없고 신용카드를 만들 수도 없고 4대 보험도 안되는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명함이 없고 신분증이 아니라 출입증으로 자신의 일터인 곳으로 출근하던 시절이다.

이은재 / "비정규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좀 더 잘 알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면 충격이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사회 초년생 때 많이 했거든요."

홍민지 / "저희는 그때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우리가 진짜 추운 겨울에 얼어 죽어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프리랜서라서 우리가 어디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도 증명이 안 되고. 그 때 재재 언니가 증명서를 떼야 하는데 떼줄 증명서가 없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엄마 아빠도 모르는 상태로 죽으면, 길거리에서 동사해도 아무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들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자격지심이 커진 거 같아요."

이은재는 고등학교 성적이 전교 1등이었고 대학생 때는 단과대학 학생회장을 지냈다. 누구 못지 않게 귀한 딸로 살았는데 사회에서는 귀한 사람 취급을 안 해줬다. 홍민지는 언론사 최종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한 끗 차이로 누구는 정규직이 되고 누구는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큰 세상에 대한 분노가 컸다.

-여전히 분노가 있습니까?
이은재 / "당연하지요. 분노로 일하고 있어요."
홍민지 / "단 하루도 분노가 없었던 적이 없어요."
이은재 / "분노의 화염이 없다면 그때는 우리 일이 끝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홍민지 / "콘텐츠 못 만들 거 같아요. 분노가 없다면 다른 일 하고 있을 거 같아요."

자신들의 말이 너무 격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자신들의 분노는 특정인이나 회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분노라고 했다.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맹렬한 적개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이가 벼슬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기성 세대에 대한 것이든 굴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든 그 어떤 것에서 연유한 것이든 이 사람들의 분노는 세상을 다 태워버릴 기세였다. 신문명을 만들어 전파하는 것은 우리들인데 막상 돈과 권력은 엉뚱한 사람들이 주무른다는 생각이 분노의 원천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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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은 서자라는 말도 했다. 언론사 공채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하는 듯 싶은데 어쨌든 이에 대한 콤플렉스를 숨기지 않았다.

이은재 / "원래 서자들이 더 공부 열심히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희들도…."
홍민지 / "저희가 자격지심이 있어서 쳐다만 봐도 무시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자…."
이은재 / "쳐다만 봐도 무시하는 거 같아서 더 화나고 더 오기 생기고… 그런 게 있죠"

이 사람들과 6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이들을 후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같은 식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도 아니고… 뭔가 애매했다. 하는 일이 달랐고 업무가 다르니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었고 먼저 다가가기도, 인사를 건네기도 어색했다. 저쪽 팀은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려니 생각했고 무심히 쳐다보기만 했을 뿐인데 그런 눈길과 태도조차 이 사람들에게는 뼈저리게 아팠고 가슴에 응어리를 남겼던 모양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비슷한 또래들 가운데 PD, 기자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을 테고 입사 초기 스스로를 PD라고 소개해야 할 때 어색했을 것이다.

홍민지 / "지상파 PD들은 입사하자마자 다른 데 가면 PD님, 기자님 하잖아요? 근데 저희들이 그랬으면 이런 결과물이 안 나왔을 수도 있죠. 왜냐하면 저희는 한 회, 한 회 저희들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었으니까요. 이렇게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계속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던 거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소리쳐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이면 다 PD 아냐? 그러면 우리도 PD야. 호칭이 뭐가 중요해? 제대로 하면 되는 거 아냐? 우리가 당신들보다 잘 만드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구독자가 100만이 넘어. 그러면 되는 거 아냐?"

'우리 구독자가 100만이 넘어. 그러면 되는 거 아냐?'

6. 사람들은 돈의 크기로 성공의 크기를 잰다. 이 청년들이라고 거기에서 예외일 리 없다. 돈 이야기를 할 때 이들 표정이 진지하고 심각했다.

이은재 / "돈 벌어야지 하는 목표는 있는 거 같아요. 수치로 목표를 대라고 하면 그런 목표는 있는 거 같아요. 이번 연도는 흑자를 많이 내서 좀 더 안정적인 고용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자. 이런 목표는 정량적으로 있는 거 같아요."
홍민지 / "맞아요. 지금 뉴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값이 올라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셀럽 수준의 유명인, 스타 PD인 두 사람을 오라는 곳은 많다.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는 곳도 적지 않다. 돈을 찾아 나가자고 마음먹으면 갈 데는 많을 것이다. 회사가 고향도 아니고 뿌리도 아니라며 직장에 대한 애정을 갖지 말라고 팀원에게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문자로 홍민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두 분은 다른 곳에서 이직 제안을 여러 차례 받은 것으로 압니다. 왜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습니까. 홍민지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 이 팀원들과 일하고 싶어요. 말이 통하고 비슷한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어요…. 이런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것은 평생 한번 올까 말까 한 로또 같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욕했던 상사처럼 되지는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혹시나 자신들이 그런 모습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경계한다고 했다. 동료들의 옷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근무 시간 이후에 연락하지 말고, 팀원 모니터 쳐다보지 말고, 저녁 사주지 말고, 철벽 치지 않는다는 말은 이 두 사람이 어느새 누군가의 관리자, 선배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문명특급 팀의 기획 회의를 잠깐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이 팀은 팀장 홍민지, MC 겸 기획피디 이은재를 비롯해 모두 7명이다. 회의는 홍민지와 이은재가 주도했다. 다른 팀원들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들은 주로 듣고 후배들이 회의를 주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기획 회의에서 두 사람이 주로 발언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거의 말이 없고요.
이은재 / "요새 우리가 말을 많이 하긴 해요. 그래서 반성을 해야 하는 지점인 거 같아요"

그날은 회의 주제가 다른 팀원들이 발언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고 했지만 <문명특급>의 기획과 제작에서 두 사람이 절대적인 권한을 쥐고 있고 권한의 크기만큼 이 두 사람의 목소리도 컸다.

투잡을 갖는 게 이 팀의 모토 중의 하나라는 말은 생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이은재는 <문명특급>외에 다른 방송 출연 등으로 사실상 투잡을 뛰고 있고, 홍민지는 무엇을 투잡으로 삼을지 고심 중이다. 하루에 1시간씩 글을 쓰고 곧 책을 낸다니 글 쓰는 게 투잡이 될 수도 있겠다. 이들 세대에게 투잡은 상식인 모양인데, 한 가지 분야에 정진해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세대에게 이런 모습은 낯설다.

7. 홍민지는 지금 자신들의 세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고 우리가 잘한 게 있으면 솔직하게 잘했다고 우리 스스로에게 박수 쳐주자고 한 적이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셀프 칭찬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니까 말이다." <홍민지 브런치 글 중>

힘들었고, 그래서 입에서 욕과 불평불만이 사라진 날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삶을 한바탕 웃음으로 승화하려고 노력했다.

이은재 / "처해있는 상황을 굳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혼자 있으면 굴로 들어가기 너무 좋은, 우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와서 일을 해야 됐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상황을 희화화하는 게 하나의 해소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두 사람을 동시에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질문과 답변을 어떻게 배분할지 조금 고민스러웠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모든 질문에 두 사람은 거의 하나의 목소리로 답했다. 미묘한 차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문명특급> 안에서 재재와 밍키는 하나의 얼굴, 하나의 목소리였다. 거기에 가식은 없어 보였다.

이 사람들 세대와 기성 세대 사이에 놓인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깊은 심연일까, 아니면 건너자고 하면 발목 정도만 적시면 쉽게 건널 수 있는 작은 개울 같은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이 심연이든 개울이든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다가가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일 게다. 맞은 편에 있을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들이다. 한 번 만난 것으로 그 거리감이 사라질 리 없지만 그래도 얼굴 보고 이야기 들었으니 다음에 만나면 인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사람-재재

* 이 인터뷰는 지난 7월 15일 양평동 스튜디오에서 양만희 논설위원과 2:2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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