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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20살 넘은 나, 언제까지 아동인가요?

장재열|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20살 넘은 나, 언제까지 아동인가요?

스무 살이 넘어도 '아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시나요?

스물셋, 스물넷에도 청소년이 아닌 아동이라고 불린다니, 뭔가 이상하지요? 바로 '보호종료아동'의 이야기입니다. 보호종료아동이란 아동보육시설에서 살다가 만 18세가 지나 퇴소하게 된 이들을 말하는데요, 한국 나이로 대략 스무 살이 넘은 청년들입니다. '보호시설 아동'이었다가 보호가 '종료'되었다는 뜻인데요. '아동보호시설 퇴소 청년'도 아니고 원래의 단어에서 시설이라는 단어를 종료로만 바꿔서 그대로 '아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상담 현장에서도 이 친구들이 종종 찾아오고는 하는데요, 스스로에겐 '보호종료아동'이라고 칭하고, 다른 청년들에겐 '일반 청년들'이라고 부르는 걸 듣자하니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사회가 부르는 명칭에 익숙해져서, 또 달리 칭할 호칭이 없어서 자신들을 그리 부르긴 하지만 뭔가 달갑지만은 않다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게, 우리 같은 애들은 구청이나 시청 같은데서도 아동청소년과? 뭐 그런데서 관리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청년 관련해서 이렇게 지원해주고 LH 지원해주고 그런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일단 있는지도 몰랐고, 그다음에 안다고 쳐도 제가 그 '청년'이라는 대상이 되는지를 몰랐으니까요."


이 말을 들으며 어쩌면 그것이 이름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 회의에 들어가서 "왜 이들은 청년인데 아동청소년과에서 관리를 하나요? 청년 담당 부서가 맞지 않나요?"라고 물어도 "행정 체계 바꾸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정도의 답변만 돌아왔지요.

그런데 얼마 전, 보호종료아동을 처음으로 '청년'으로 명명하는 지자체를 발견했습니다. 경기도에서 열린 한 정책 컨퍼런스에서였는데요. 청년의 고립을 주제로 은둔형 외톨이, 니트(구직 단념) 청년, 그리고 보호종료 '청년'이 주제였습니다. 사회자를 맡았던 저는 대본을 받아들고 담당자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공식 명칭이 보호종료아동이라면서요? 명칭 바꿔서 써도 돼요?" 답변은 이렇게 돌아오더군요. "바꿔 부르기 시작해야, 행정도 바뀌고 이 친구들의 삶도 조금씩 바뀌지 않겠어요? 어쨌든 청년인 건 맞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토론회에서 연단에 오른 스물두 살의 보호종료 '청년'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요즘 저희에게 관심이 많아지고 변화가 많아진 건 맞아요. 지원 금액도 많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필요한 건 사회적 관계망이에요. 제가 시설 밖으로 처음 나갔을 때, 휴대전화를 들여다봐도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거,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거. 저희를 위한 정책이 있다고는 하는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공공 후견인 제도가 생긴다고 하는데 더 필요한 건 정신적 유대거든요."


아동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지만 청년에게는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하다는 자명한 사실을 우리사회는 행정 체계라는 관념을 핑계로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비단 '사회적 관계망 구축'만 놓쳤을까요? 청년 아닌 아동으로 부르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아동 청소년'의 관점을 투영하며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을 살피지 못한 것이 참 많을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정부가 이제 곧 이들에 대한 호칭을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꾼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원금의 액수나 기간도 늘어난다고 하지요. 꼭 필요한, 의미 있는 한 걸음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청년으로 보고, 그에 맞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제공하기 위해서는 명칭 변경이나 지원액 상향을 넘어 '아동청소년'이 아닌 '청년'으로 담당 행정부서와 체계를 이관, 변경하는 '지속 가능한 행정 시스템 구축'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 아닐까요?
 

장재열 네임카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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