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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공군 여중사 헌정곡 만든 오빠…"기억할게"

[취재파일] 공군 여중사 헌정곡 만든 오빠…"기억할게"

김혜영 기자 khy@sbs.co.kr

작성 2021.07.22 09:12 수정 2021.07.22 10:1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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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공군 여중사 헌정곡 만든 오빠…"기억할게"
"미오야, 뭐해? 하하, 얘가 물어."

군부대 내 성폭력 피해와 2차 가해로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A 중사. 그녀는 원래 반려묘들을 키우던 '집사'였습니다. 그녀의 일생에서 소중한 기억 중 하나는 반려묘들과 함께한 추억이었습니다. A 중사의 친오빠도, 자신의 여동생이 반려묘 '미오'와 함께 즐거워한 그때의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해 헌정곡에 담았습니다.

그녀의 행복한 목소리와 가족들의 절절한 그리움이, 친오빠의 노력으로 하나의 노래 '기억할게'가 되어 어제(21일)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딸에게 "천국에서 꼭 다시 보자"고 약속한 아버지와 "딸로 와줘서 너무 행복했다"는 어머니, "나중에 만나서 재밌게 놀자"며 애써 웃는 오빠, 그리고 "기억할게"라고 외치는 친구들의 목소리까지, 그녀를 향한 마지막 인사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먼 훗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그녀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공군 A중사를 위한 헌정곡 <기억할게>를 작사·작곡한 오빠 '보름(예명)'의 앨범 자켓
여동생을 위한 이 헌정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친오빠 '보름(예명)'과 어제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해군 군악대에서 베이스·기타병으로 복무를 마친 그는 2019년 6월부터 '보름'이라는 예명으로 베이스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망생으로 활동 중입니다. 아티스트로서의 삶과 함께, 방과 후 교사이자 베이스 입시 강사로, 또 아울렛과 치킨집을 오가는 알바생으로 1인 4역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도 부족해 보이는 그가 동생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힘들었을 그 시기에, 고통을 견뎌내며 곡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간명했습니다. "제가 동생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 동생이 세상에서 잊혀진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밝게 자란 제 동생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Q. 작곡하신 노래,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 감사합니다.

Q. 원래 음악을 전공하셨다면서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네. 해군 군악대에서 베이스·기타병으로 복무하다가 2019년 6월 제대한 직후부터 예명인 '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지난해 K-culture 페스티벌에서 가수 린 님과 벤 님의 무대에 세션으로 참여한 적 있는데요. 주로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해오긴 했지만, 작곡가 지망생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작곡한 곡은 여럿 있지만 음원을 발매한 적은 없었는데요. 원래는 동생이 이번 사건만 없었으면, 예정대로 결혼을 했다면 축가를 써주려 했는데…. 이번에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Q. 동생분을 위한 헌정곡, 작사·작곡을 다 하신 건가요?
A. 네. 작사, 작곡, 편곡, 그리고 베이스 연주를 했습니다. 노래는 제가 한 게 아니라 제 동생과 안면이 있었던 제 친구가 불렀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저랑 같이 음악을 해보자고 했던 친구고요. 제가 노래는 그렇게 엄청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웃음) 그래도 제 동생을 알고 있는 제 친구가 노래를 불러주면 좋을 것 같아서,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Q. 노래 앞 부분에 여성 목소리, 동생분의 목소리가 맞나요?
A. 예. 동생이 키우던 고양이 3마리 중에 '미오'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동생이 예전에 그 '미오'랑 같이 놀면서 영상을 찍었는데, 그 영상에 담긴 동생 목소리입니다. 동생이 고양이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행복했던 추억이니까, 그걸 맨 앞에 넣었어요.

Q. 이 곡을 쓰기로 결심한 건 언제쯤이었나요?
A.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였습니다. 제가 동생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많이 생각을 했어요. 근데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으니까…. 음악으로나마 제 동생을 조금 더 기억하게 해달라는, 그런 취지에서 곡을 쓰게 됐습니다. 그리고 완성하기까지는 일주일도 안 걸렸던 것 같습니다.

Q. 몸도 마음도 추스리기 어려운 시기였을 텐데, 슬픔이라는 감정에 더 몰입해야만 하는 곡 작업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A. 저는 동생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동생이 세상에서 잊혀지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동생이 사람들한테서 잊혀지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사실 어떤 사건이든, 언젠가는 잊혀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게 좀 무서웠고, 좀 더 오래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이라도 뭘 할 수 있을까…. 제가 지금 해야 할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지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부모님께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저도 많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좀 더 오래,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결심하게 됐습니다. 제 동생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 여동생으로서 A 중사는 어떤 분이었나요? 그리고 두 분이 남매로서 어떤 추억들을 공유했는지 궁금합니다.
A. 중학교 때는 흔히 말하는 '현실 남매'였어요. 막 싸우면 며칠 동안 얘기도 안 하는 남매였죠. 이후 동생이 고등학교 때부터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애틋한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생일이 오면 서로 용돈을 줬고, 동생이 중사로 진급했을 때는 제가 용돈을 주며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저랑 동생이 서로 낯간지럽게 "힘들지? 힘내" 이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서로 은근히 챙겨주는 오빠 동생 사이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동생을 되게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동생이 집에 왔다는 이야길 들으면, 동생이 좋아하는 치킨 무조건 한두 마리씩 사다가 가져갔었어요. 그 때 그 꽉 채워지는 분위기의 집이 너무 그리워지는데… 그 때의 그 기억이 남아있어요.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는 게 눈물이 나고, 슬프고 그렇네요.

동생은 집에 오면 되게 애교가 많았어요. 저는 솔직히 부모님께 애교가 있는 편이 아니거든요. 동생이 오면 집이 따뜻해졌어요. 정말 즐거웠어요.

Q. 성폭력 피해, 그리고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와 관련해서 동생분께 직접 이야기를 들으신 적 있나요?
A. (지난 3월경) 상사가 이 문제를 덮자고 회유했다는 이야기를 동생이 전해 들었을 때, 그 때 제가 동생과 같이 있었어요. 동생 머리 쓰다듬으며 다독여준 기억이 납니다. 동생이 제게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동생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가서 어떻게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제가 개입해서 일이 틀어져 버릴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깊은 후회가 남습니다.

Q. 사건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A. 이렇게 평범한 가족에서 너무나도 평범하고 밝게 자랐던 한 가족의 딸이, 나쁜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망가지고 힘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은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남들이 느끼기에도 너무 평범한 가정의 딸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돼버렸으니까요. 오래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Q. '기억할게'라는 곡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쭤볼게요. 노래 후반부에 본인과 가족 분들의 목소리, 친구 분들의 목소리도 들리던데요. 녹음 과정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으셨나요?
A. 사실 쉽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대부분 휴대폰으로 녹음했기 때문에 장소의 제약 같은 건 없었지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녹음을 여러 번 보내셨어요. 처음 보내셨을 때는 많이 우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감정 잘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 우시면 그러니까 다시 마음 다잡고 보내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머니는 마음을 억누르고 보내주셨더라고요. 제 목소리는 작업실에서 녹음했고, 맨 마지막 '기억할게'라고 다 같이 외치는 부분은 동생의 친한 친구들과 제 친구들이 같이 녹음해줬습니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영현실에 안치된 故 A중사의 주검 앞에 영정과 반려묘들의 사진, 그리고 친구들의 선물이 놓여있다.
Q. 동생분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음성 편지로 곡에 담은 거네요.
A. 저희 가족이 동생과 약속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걸 약속하기 위해서 넣었어요. 가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조금 힘들더라도, 동생의 몫까지 부모님 잘 챙기면서 살 테니까 너는 편하게 쉬고 있어라, 나중에 만나서 재밌게 놀자,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약속을 담은 가사를 썼습니다.

Q. 혹시 음악 외에 다른 일도 병행하고 계신가요?
A. 여러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교 방과 후 수업 밴드부 중등 교사로도 나가고 있고요. 베이스·기타 입시생들 가르쳐주는 강사도 하고 있습니다. 개인 레슨도 하면서 학원도 출근 나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치킨집도 나가고 있고, 아울렛도 나가고 있습니다.

Q. 그러면 생업으로 하시는 일이 네 가지가 넘는 건가요?
A. 네. 지금 현재는 네 개입니다. 사실은 지금 일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된 것도 제 딴에는 동생을 위해서였습니다. 저희 집은 항상 중고차를 몰았거든요. 제 동생 결혼식 때는 우리 가족이 멋진 새 차로 식장에 갔으면 해서…. 그래서 조금 더 열심히 돈을 모아보자, 어차피 지금 내가 해야 될 것도 많지만, 그때까지는 더 고생해보자는 취지로 일을 많이 벌여놓긴 했습니다.

Q.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계시는군요.
A. 이렇게라도 안 하면 솔직히 너무 힘들고요. 제가 동생 일 이후로, 되게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요. 왜냐하면 친구를 만나든, 아니면 일을 하게 되든 갑자기 동생 생각이 날 때면 '아 내가 이렇게 친구들 만나고 있어도 되나',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거지? 동생은 이렇게 갔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그래서 멍하게 있을 때가 많은데,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곡 작업 마치신 뒤에 '동생도 위로를 받았겠다'라는 생각이 드시던가요?
A. 한편으로는 '위로가 됐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공허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 하나가 끝났으니까…. 나는 이제 또 어떻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되나, 이런 공허함이 드네요. 음원이 나오고 난 뒤에요. 어머니, 아버지는 노래를 듣고 오열하면서 많이 슬퍼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지금 정식 작곡가라기보다는 프로 작곡가 지망생입니다. 지금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모으면서 노래를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활동하려고 합니다. 제 음악을 하면서 부모님을 잘 모셔야죠. 동생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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